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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용인 곰 탈출 1주일…정부 책임 더 크다

등록 2021.07.13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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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정부 장려로 시작, 정책 40년만에 존립 기로

곰 재수출·웅담 약재 사용 등 이제 사육 필요성 사라져

사육농가, 곰 활용 수익증대 막아 시설 노후 등 악순환

곰 도축 가능한 국가 중국과 한국 뿐…제도 손질해야

환경단체 "불법 증식 철저한 관리, 사육곰 개체수 줄여야"

[용인=뉴시스]박종대 기자 = 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곰 사육농가에서 곰 2마리가 탈출한 가운데 해당 농가에서 키우고 있는 다른 곰들이 사육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2021.7.6. pjd@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용인=뉴시스]박종대 기자 = 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곰 사육농가에서 곰 2마리가 탈출한 가운데 해당 농가에서 키우고 있는 다른 곰들이 사육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2021.7.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용인=뉴시스] 박종대 기자 = 국내에서 사육곰 정책이 시작된 지 40년, 운영이 존립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 정부가 재수출 및 약용 채취 목적으로 곰 사육을 허용했지만 시간이 흘러 농가 수도 줄어들고 의학기술 발달로 좋은 신약이 나오면서 사육곰 농가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곰 탈출사건'이 터지면서 사육곰 농가의 열악한 환경이 조명돼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개선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24년 준공 예정인 사육곰 보호시설 건립을 앞당겨 관리기준을 어긴 농가에서 적발된 사육곰에 대해 몰수보전을 취해 재발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잇따른 사육곰 탈출...등산객 물렸던 적도

지난 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한 농장에서 3년생으로 추정되는 반달가슴곰 2마리가 탈출했다. 관할 지자체인 용인시는 최초 신고를 접수한 소방당국으로부터 곰 탈출 소식을 전달 받고, 즉각 포획팀을 꾸려 수색에 나서 신고 2시간여 만에 달아난 반달가슴곰 1마리를 사살했다.

나머지 1마리도 생포하기 위해 소위 '지리산 곰 전문가'로 불리는 국립공원공단 남부보전센터 소속 연구원과 수의사 등 5명이 현장에 지원을 나와 곰의 행방을 쫓고 있다.

농가에서 2㎞ 이내 반경에 무인트랩을 설치해 사육 환경에서 자라던 반달가슴곰이 좋아하는 단 종류 먹이와 사료를 넣어놓고 유인하는 방식을 썼지만, 탈출 일주일째 포획이 지연되고 있다.

시는 이 반달가슴곰이 농가에서 흔히 말하는 '사람 손'을 탄 사육곰인 만큼 멀리 이동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문제는 이 농가에서 이런 반달가슴곰 탈출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 9년 전인 2012년 7월에도 무게가 70㎏ 가량 되는 6년생 반달가슴곰 2마리가 인근 야산으로 탈출했다가 모두 사살된 적도 있다.
[용인=뉴시스]박종대 기자 = 8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일대에 '곰 탈출로 인한 입산 금지'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부착된 가운데 마을길을 지나다니는 주민이 보이지 않아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2021.7.8. pjd@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용인=뉴시스]박종대 기자 = 8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일대에 '곰 탈출로 인한 입산 금지'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부착된 가운데 마을길을 지나다니는 주민이 보이지 않아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2021.7.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 해 석 달 전인 4월에도 같은 농장에서 어린 반달가슴곰 1마리가 탈출해 50대 여성 등산객 1명을 물고 달아났다가 마찬가지로 사살됐다.

지난해 7월에는 이 농장주가 운영하는 여주 농가에서 생후 3개월 된 반달가슴곰이 탈출해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에 의해 포획돼 다시 농장주에게 되돌아가기도 했다.

이 농장주는 용인에서 19마리, 인근 여주시에 마련한 농장에서 82마리의 반달가슴곰을 사육하고 있는 것으로 시는 파악하고 있다.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전체 사육곰 농가 총 27곳에서 398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번에 곰이 탈출한 농장주가 전체 사육곰 농가의 4분의 1 가량을 보유한 셈이다.

인근 주민들은 사육곰과 함께 한동네에서 살면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언제 또 다시 곰이 탈출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에 곰이 탈출한 농가는 주민 10여 가구가 사는 전원마을에 위치해 있다. 이 마을은 사육곰 농가와 함께 행정구역상 이동읍 천15리에에 속하는데, 천15리에는 총 156가구에 주민 364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 원모(63)씨는 "야생 멧돼지처럼 먹이를 구하려고 곰이 민가로 내려왔다가 사람을 공격할 수 있지 않겠냐"며 "손주도 함께 사는데 해가 떨어지면 곰과 마주칠까 무서워서 동네를 돌아다닐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억울한 농가 "정부가 장려해 시작했는데..."

국내에서 반달가슴곰 사육이 시작된 것은 1981년부터다. 당시 정부가 재수출과 약용(웅담) 채취 목적으로 곰 사육을 허용하면서 1985년까지 총 493마리의 곰이 수입됐다. 주로 동남아와 히말라야 등지에서 들여온 반달가슴곰이다.

1985년 9월 정부 홍보물 영상으로 제작됐던 '대한뉴스 1557호-야생동물 사육' 편을 보면 곰 사육을 장려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뉴시스] 1985년 9월 정부가 곰 사육을 장려하며 제작한 '대한뉴스-야생동물 사육' 영상홍보물 자료. 당시 정부는 1981년부터 재수출과 약용(웅담) 채취 목적으로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사육을 장려했다. (사진=한국정책방송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뉴시스] 1985년 9월 정부가 곰 사육을 장려하며 제작한 '대한뉴스-야생동물 사육' 영상홍보물 자료. 당시 정부는 1981년부터 재수출과 약용(웅담) 채취 목적으로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사육을 장려했다. (사진=한국정책방송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곰 사육장에서 곰을 키우는 영상 자료와 함께 내레이션으로 "곰은 잡식성 동물로, 안전만 유의하면 질병 없이 쉽게 키울 수 있다"며 "곰에서 나오는 웅담과 피, 가죽 등은 국내 수요 뿐 아니라 수입 대체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사육 가능한 야생동물"이라고 홍보하는 영상물 기록이 존재한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곰 보호 여론이 높아지면서 1985년 7월 정부는 곰 수입을 전면 금지한 데 이어 1993년 멸종위기종 야생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을 제한하는 국제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곰의 수입과 수출이 전면 금지됐다.

과거에는 곰 쓸개인 웅담이 몸에 좋다는 인식이 높았던 시절도 있다. 이런 사정으로 1985년까지 국내에 수입된 곰은 493마리였는데 이후 번식을 통해 2000년대 중반에 1400여 마리로 늘어났다.

이후 곰에서 채취하는 웅담을 대체할 만한 신약 개발이 이뤄지고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시민사회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사육곰 농가들은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정부의 장려 아래 들어선 사육곰 농가들이 운영난을 겪자 환경부는 2005년 2월부터 현행 야생동식물보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정해 곰 처리기준을 완화했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수입한 곰은 종전처럼 24년~40년의 도축 처리기준을 적용하는 대신 그 곰으로부터 증식된 새끼곰은 처리기준을 10년으로 낮췄다.

일부 농가는 반달가슴곰의 웅지(곰기름)을 식·가공품 및 약용 재료로 사용하려고 행정관청에 용도변경을 신청했지만 이를 거부당하자 한강유역환경청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판결은 재판부가 한강유역환경청 손을 들어주며 곰을 활용한 농가 수익 증대를 위한 다른 판로는 차단됐다.
[용인=뉴시스] 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곰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곰 2마리 가운데 사살된 1마리가 바닥에 눕혀져 있다. 이 곰은 '렌더링' 방식으로 처리해 퇴비로 활용될 예정이다. 2021.7.6. (사진=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용인=뉴시스] 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곰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곰 2마리 가운데 사살된 1마리가 바닥에 눕혀져 있다. 이 곰은 '렌더링' 방식으로 처리해 퇴비로 활용될 예정이다. 2021.7.6. (사진=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육곰 농가는 한 때 정부가 곰 산업을 장려했다가 이제 와서 외면하는 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반달가슴곰이 탈출한 농장주는 취재진에게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을 막아놔 농가가 쓰러지고 있는데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무조건 농가로 떠넘기는 것은 아니"라며 "곰 지방으로 아토피 치료제, 발모 촉진제 등 이걸 다 학교와 연구해서 개발했는데 한강유역환경청에서 허가를 안 해줘 팔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구례 사육곰 보호시설, 불법 증식 해결책될까

국내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는 사육곰 문제가 불거지게 한 원인 제공자로 '정부'를 꼽는다. 곰은 국제적으로 종류에 상관 없이 멸종위기종에 속하는데 1980년 초반에 사육곰 장려 정책에 따라 약용 채취 목적으로 해외에서 수입하는 경우에 한해 도축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곰 도축이 가능한 나라는 중국과 우리나라 2곳이다. 2012년에는 세계동물보호협회(WSPA)가 제주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 개최를 맞아 한국 정부에 곰 사육 중단 및 담즙 관련 산업 철폐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는 우리나라가 개최국이었는데 '웅담 채취를 위한 곰사육 금지 결의안'이 통과됐고, 정부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해 예산 55억을 들여 국내 웅담채취용 사육곰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는 이런 대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불법 사육곰 증식을 강력하게 막는 동시에 철저한 관리·감독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길러지는 사육곰에 대해 중성화 시술을 실시하면서 농장주 자율 의사에 따라 사육곰을 전시관람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

이에 따라 웅담 채취를 위한 사육곰 91마리가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고 그 대신 전시관람용으로 전환됐다. 나머지 중성화한 사육곰은 2025년에 도축 가능한 10살 이상이 되기 때문에 정부는 사육곰 개채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전시관람용으로 전환한 사육곰을 농가에서 불법 증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려나가고, 이를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면서 폐사에 이르는 경우가 벌어지고 있다.
[대구=뉴시스] 반달가슴곰. 2018.08.25. (사진=대구지방환경청 제공) photo@newsis.com

[대구=뉴시스] 반달가슴곰. 2018.08.25. (사진=대구지방환경청 제공) [email protected]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지난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반달가슴곰이 탈출한 용인 농가는 2016년부터 5년간 사육곰 36마리를 불법 증식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2016년 5마리, 2017년 9마리, 2018년 9마리, 2019년 10마리, 2020년 3마리씩 불법 증식했다고 강 의원 측은 주장했다. 이 가운데 일부 사육곰은 불법 증식을 통해 태어난 것으로 확인돼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24년 전남 구례군에 건립 예정인 사육곰 및 반달가슴곰 보호시설 건립 시기를 앞당겨 불법 증식을 시행한 농가에 대해 법원에 사육곰 몰수보전을 신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육곰 농가를 관리하는 환경부 산하 각 지방환경청은 그동안 불법 증식으로 태어난 사육곰을 데려와도 마땅하게 보호할 만한 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아 농가에 대한 고발 및 행정처분 조치로 처벌이 끝났던 게 현실이다.

박은정 녹색연합 녹색생명팀 팀장은 "불법 증식을 해결하지 않으면 사육곰 산업을 종식되는 게 아니고 암시장 형성 등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장 점검을 나가 사후에 불법 종식이 확인되면 고발하는 조치에 그칠 게 아니라 이를 근절시킬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에 곰이 탈출한 농가는 시설 개선에 대해 오래 전부터 명령을 내렸지만 계속 이행하지 않아 고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이번에는 곰이 탈출해도 농가를 벗어날 수 없도록 울타리까지 설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강력하게 법적 처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2024년 구례에 준공할 사육곰 보호시설도 1년 정도 짓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관계 기관과 협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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