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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화가' 권영우, 작품 제목 '무제'인 이유

등록 2021.12.09 14:40:46수정 2021.12.09 18: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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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국제갤러리서 사후 세번째 개인전
파리시기 백색 한지부터
귀국 직후 색채 한지 작품까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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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권영우(1926-2013), 'Untitled', c.2000s, Korean paper on canvas, 117 x 91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무제'의 변은 이렇다.

"조물주는 만물을 만들었지만 이름은 붙이지 않았습니다. 자연 그 자체가 곧 추상인 셈이지요."

생전 권영우(1926~2013)화백은 자신의 작품에 이름 없이 'Untitled'(무제)인 것에 대해 "저는 단지 자연의 여러 현상들에서 발견하고 선택하고, 이를 다시 고치고 보탤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작품 제목 '무제'는 '열린 결말'처럼 무한한 상상력을 담보하지만, 어쩌면 작가의 궤변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고민고민하다가 결국은 '제목없음'을 뜻하는 무제를 달아놓고 '있어보이는 티'를 낸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하지만 '발견하고 선택하고 다시 고치고 보탤 뿐'이라는 권영우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무엇을 그리느냐'의 질문 대신, '어떻게 구성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가 화두로 작용한다. 방법론적 탐구와 평면에 대한 투철한 인식, 이러한 그의 작업 철학은 동양적 재료의 활용과 함께 그의 작품을 시대를 초월하는 현대적인 결과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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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권영우(1926~2013), Untitled, c.1980s, Color on Korean paper, 47 x 74 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단색화 작가 권영우 개인전...백색 한지~패널에 한지바른 기하학적 추상까지

9일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 권영우 개인전은 2015년, 2017년의 개인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세 번째로 열리는 전시다.

작가의 파리 시기(1978~1989)에 해당하는 백색 한지 작품뿐 아니라, 처음 선보이는 1989년 귀국 직후의 색채 한지 작품, 패널에 한지를 겹쳐 발라 기하학적 형상을 구현한 2000년대 이후의 작품으로 선보인다.

종이를 찢거나 뚫는 형식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이번 전시는 그를 왜 단색화가로 분류했는지를 알려준다.  특히 1989년 귀국 직후에 작업한 채색 작품은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처음 선보인다. 한지 위에 서양의 과슈(gouache)와 동양의 먹을 혼합해 사용함으로써 여전히 종이를 주된 매체로 하되 채색을 화면으로 회귀시킨 독창적인 작품이다.

화면을 찢고 뚫어 화면에 우연성을 가미하고자 했던 이전 시기의 작업과는 달리, 종이 위에 각각 다른 비율로 혼합한 과슈와 먹을 롤러로 민 듯한 평평하고 일률적인 검정색, 암갈색 혹은 노란색의 색면들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동양화가라는 사실에 머물지 않고 평생 부단한 실험 의지로 무장한 동양적인 정신이 낳은 작품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는 2022년 1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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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권영우(1926~2013), 'Untitled' 1982, Korean paper, 121 x 94 cm,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종이 화가' '백색 화가' 권영우...

1926년 함경남도 이원 출신으로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첫 입학생이 되어 동양화를 전공했다. 박노수(1927∼2013), 서세옥(1929~2020) 화백 등과 함께 서울대 미술대학이 개설된 이후 입학,  미술 교육을 받은 1세대다. 1957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부터 1978년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작품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후 10여 년 동안 체류했다.

동양화를 전공한 권영우는 전후 추상의 수용에 직면하여 전통의 현대화라는 맥락에서 당대의 시대적 과업에 응하고자 했다. 그는 일찌감치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건 의미 없다고 여겼다. 1960년대 동양화의 주요 재료인 수묵필 중 붓과 먹을 버리고 종이만 취한 그는 한지를 활용하는 동양화의 기조 위에서 출발하지만 방법 면에서는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나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e)’ 시리즈를 상기시키는 서구적인 조형방법, 즉 전후 추상미술과 궤를 같이 했다.

작업 초기 권영우는 한국화의 기본 재료인 수묵으로 필선이 강조된 구상적 추상의 표현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하다가, 1962년을 전후하여 한지를 주요 매체로 적극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나의 손가락이 가장 중요한 도구이며, 또 다른 여러 가지 물건들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도구로 동원된다”고 했다.  실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기본적인 행위를 배제한 대신 손톱이나 직접 제작한 도구를 이용하여 종이를 자르고, 찢고, 뚫고, 붙이는 등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 우연성이 개입된 작가의 반복적인 행위와 종이의 물질성과 촉각성을 작업의 중심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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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권영우 화백,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동·서양의 한계를 완전히 초극해 당도한 추상의 세계를 통해 권영우는 ‘인간 정신과 물질과의 만남’을 현실화하고, ‘동양 본래의 기원에로의 현대적 회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5년 대한민국 예술가들의 최고 영예인 예술원 회원이 됐다. 국전 문교부장관상(1958·59), 국전 초대작가상(1974), 대한민국 예술원상(1998), 은관문화훈장(2001), 허백련상(2003) 등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퐁피두 센터 등에 소장되어 있다. 생전 '종이 화가' '백색 화가'로 불렸던 그는 87세인 2013년 11월 노환으로 별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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