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부·김문기…사육신 제사불발, 금녕김씨와 격돌

사육신은 조선 세조 2년(1456)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처형된 이개(1417~1456), 하위지(1412~1456), 류성원(미상~1456), 성삼문(1418~1456), 유응부(미상~1456), 박팽년(1417~1456) 등 6명의 충신을 말한다.
3일 낮 12시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류성원(문화 류씨), 박팽년(순천 박씨), 성삼문(창녕 성씨), 유응부(천녕 유씨), 이개(한산 이씨), 하위지(진주 하씨)의 후손 300여명은 노량진의 사육신 사당인 의절사(義節祠)에 모여 조상들을 위한 봄제사인 춘향제(春享祭)를 준비했다.
그러나 이날 제사는 금녕 김씨 후손들이 의절사 입구에 인의 장막을 형성, 사육신 후손들의 진입을 막으면서 무산됐다. 양측의 대립은 약 1시간여 동안 이어지다가 사육신 후손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물러나면서 잠잠해졌다. 그러나 갈등의 근본 원인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사육신 논란은 1977년 기존의 사육신에 포함돼 있던 유응부를 김문기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이후 육신들과 금녕 김씨가는 팽팽히 맞서왔다. 육신들은 군사정권 실세였던 금녕 김씨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국사편찬위원들까지 권력으로 눌러 백촌을 추가로 끼워 넣었다고 주장한다. 백촌의 후손 금녕 금씨가는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서 명분을 새로 얻었다고 맞선다.
사육신의 후손들은 "남의 조상 제사까지 방해하는 금녕 김씨가의 행패가 치졸하다"면서 "권력과 재력으로 조상들의 치적까지 조작하고 남의 조상 제사까지 방해한다"고 비판했다.
금녕 김씨가 후손들은 "엄연히 한글날인 10월9일에는 국가 제사에 이은 지방자치단체 주관 사육신 제사가 있다"면서 "이 제사는 공적 제사가 아닌 집안들이 주도하는 임의단체 주관의 제사이므로 안 된다"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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