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일본의우리신불]장례불교, 신 모시는 오류

불교 신도의 측면에서 볼 때, 신불 가운데 ‘신’은 자기 스스로 불성의 확장으로 가능한 영역이지만, 서양에서 말하는 절대 신이나 유일신은 전혀 아니다.
특히 일본 속의 ‘신’은 조상신에서 발전된 귀신에 불과하다. 고등종교의 신과 비교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잡귀’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다만 그 조상이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 등 한반도에서 건너간 씨족 신이기에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인류학적으로 민속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인들은 역사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우리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도래인의 존재에 대해서 과거 한반도에서 넘어온 것이 아닌 중국에서 직접 넘어왔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한반도에서 넘어온 도래인이 아니라고 아무리 숨겨도 자신의 조상신 이름까지는 바꾸지 못했다.
이들의 조상신이 누군가를 분석해 보면,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를 쉽게 추적할 수 있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상으로 ‘신’이라는 개념에 집착해서 일본의 신불 가운데 ‘신’이 마치 불교의 부처님이나 기독교의 하나님 수준으로 여기면 안 되기에 지난 호에서 신불이란 무엇인가 장황하게 설명한 것이다.
일본에 다녀온 많은 인문학자나 문화재 관련자가 한마디씩 하는 공통된 얘기가 있다. 일본인들은 귀신들을 잘 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사는 것은 아닌가?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일본의 많은 신사에 모셔진 주요 신들이 높아야 소위 천황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왕일 뿐이다. 그들을 모시는 수많은 제사 행사인 마쓰리 역시 그렇다. 좀 오래된 옛길의 모퉁이마다 자리 잡은 돌로 된 지장보살상들은 영아 또는 유아사망자들을 위해 조성된 불교적이면서도 민속적인 상징물이다. 그만큼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일본에서는 죽은 영가를 위해서도 그렇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죽지 않게 잘 보살펴달라는 여러 염원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죽은 조상신을 즉, 귀신을 불단에 모시는 것임에 불과하다. 살아남은 가족들 주변에 죽은 영가의 유골을 모신다는 것은 이미 불교도 아니며 화장의 진정한 의미와 모순된다. 다만 살아 남은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어쭙잖은 생각에서 발단한 것으로 불교 본래의 뜻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장전에 49제에서 잠시 불단 주변에 죽은 이의 유골 등을 모시기도 한다. 사실 모시기보다는 불단 아래에 잠시 보관한다는 표현이 맞다. 최근에 일본과 비슷하게 봉안당 형식의 사찰 내 유골 안장 시설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죽은 이의 유골을 집에다 모시는 것은 거의 없다.
일본의 불교를 오죽하면 장례불교라고까지 말할까 생각해 보면, 최근의 우리의 모습도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좌선이나 염불 수행보다는 영가에 대한 기도를 통해 사찰이 물질적인 팽창을 하는 것은 불자로서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일본에서 불교 신자들이 죽으면 선대들의 묘지에 묻히게 되는데 불교 신자는 불상을 모시거나 탑의 형식을 띤 여러 가지 모습의 무덤에 합장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비록 진언종의 스님으로 출가했다고 해도 그 조상이 정토진종의 신자라면 이 스님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정토진종의 사찰에 납골이 된다. 살아서 진언종의 훌륭한 스님으로 그 성취한 수행력으로 이름을 날리더라도 죽으면 선대가 묻힌 정토진종의 한 사찰의 묘지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이 역시 조상을 잘 모시는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나무 곁에 유골을 뿌리거나 거두는 수목장이라면 몰라도 수행을 많이 한 큰 스님을 위한 납골시설인 부도보다도 커다란 일반신도들의 봉안묘는 불교의 근본사상에도 맞지 않는 듯싶다. 죽은 후에 어디에 묻히든 그게 불교적으로 왜 중요한지 잘 모르겠고 그러한 상황에서 왜 그러한 시설을 만드는데 우리 불교가 관심을 두는 것인지도 이해가 쉽지 않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로서 살아 있을 동안의 자비행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실천하는 대승적인 차원의 이타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언젠가부터 어느 정도의 돈이 있으면 실제는 아니더라도 현상적으로는 마치 불국토나 극락에 봉안된 것 같은 착각을 살 수 있게 된 듯하다. 실제로 자신의 부모 영가는 생전의 업으로 지옥을 헤매더라도 유골이 그냥 부처님의 불단이나 불상 아래에 납골이 된다. 이것만으로 마치 살아있는 가족들에게는 영가가 좋은 곳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해 단순한 안심만을 주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매우 허무하게도 돈으로 영가의 극락을 산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허영을 산 것에 불과하다. 살아있을 때 효를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죽은 이를 위해 좋은 안장 시설을 쓴다고 이게 효이고 또한 영가에 좋다는 생각은 그다지 적절하지 못한 듯하다. 이러한 행각은 부처님의 법에 합당할 리가 없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오사카부 사카이시(堺市)의 방위신사(方違神社 : 호치가이신사)를 잠시 들려보고자 한다. 신라계 도래신인 소잔오존(素盞嗚尊)과 백제의 왕인을 제신으로 받들고 있는 이 신사에는 섭사로서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이 받들던 신인 백수대명신(白鬚大明神)을 받드는 시라히게(白鬚神社) 신사도 함께 있다. 관서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이므로 시간 나면 들려볼 만한 곳이다. (여성불교)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http://www.facebook.com/hadogy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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