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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한학자 가정연합 총재, 어떻게 미국 사로잡았는가

등록 2016.06.05 13:53:35수정 2016.12.28 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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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시스】문선명 총재, 1976년 6월1일 뉴욕 양키스타디움

【뉴욕=뉴시스】문선명 총재, 1976년 6월1일 뉴욕 양키스타디움

【뉴욕=뉴시스】신동립 기자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45년 전 미국으로도 진출했다. 국내에서 기반을 다진 내외는 1971년 12월18일 워싱턴DC에 내렸다. 중심을 미국에 둔 세계섭리노정, 즉 국제선교의 출발선이다. 앞서 1959년 1월 일찌감치 김영운 선교사, 9월 김상철 선교사, 1965년 1월 박보희 선교사를 현지로 파견, 기초를 닦도록 했다.

 문선명 총재는 2004년 뉴욕 등 4대 도시 순회강연에서 “일찍이 뜻의 나라인 미국의 기독교를 각성시키고 타 종교들을 규합하여 세계 구원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시는 천명을 받들고 이 나라를 찾아왔던 것이 벌써 34년이 흘렀다. 벌써 하늘의 지시를 받고 조국복귀를 위해 한국으로 자리를 옮겨 하늘의 섭리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 가서 짧은 기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던 동기가 어디 있었다고 보십니까? 한국 사람이로되 미국 사람 이상으로 미국을 사랑한 데에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이 나라를 위해서 피땀을 흘려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숭고한 사상을 지닐 수 있도록 어떻게 만드느냐 하며 노력한 것밖에 없습니다. 위해서 먹고, 위해서 활동하고,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개인과 부딪치면 그 개인과 하나 되고, 단체와 부딪치면 단체와 화합하게 되는 것을 보아 왔던 것입니다.”

 김기훈 가정연합 북미대륙 회장은 “1972년 새해를 워싱턴교회에서 맞이한 문 총재는 ‘통일전선 수호’를 외쳤다.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1월8일 결성된 문 총재의 ‘통일십자군’(One World Crusade)이 특히 각 대학교에서 적극적인 전도활동에 나섰다. 이어 2월3일부터 3월6일까지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버클리 등 7대 도시 강연을 통해 자신과 가정연합의 존재를 미국 사회에 각인시켰다”고 회고했다.

 탄력을 받은 문 총재는 이후 21개 도시, 40개 도시를 돌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됐다. 뉴욕 매디슨스퀘어 가든 강연회 3만명,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로는 5만명이 몰려들었다. 1976년 워싱턴기념탑 광장에서는 신화를 썼다. 미국 종교 사상 최다인 30만명이 운집했다.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리는 이 자리에서 문 총재는 “하나님은 이 나라에 새로운 계시를 전하기 위해, 특별히 퇴폐적인 미국 청년들을 구해 주고 미래의 지도자가 될 젊은이들을 인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고 말했다. “미국을 중심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듭 강조했다. 신은 미국인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그들을 추어올리면서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척결해야 마땅하다”고 호소했다. 공산주의와의 전쟁은 사실상 “God or no God”(하나님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지목한 문 총재에게 미국인들은 환호했고, 실제로 공산주의는 몰락했다.

【뉴욕=뉴시스】세계평화가정연합 김기훈 북미대륙 회장

【뉴욕=뉴시스】세계평화가정연합 김기훈 북미대륙 회장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미국인 신도 수를 억지로 늘리려 하지 않았다. 개별 교단활동에 그치거나 특정 지도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여느 종교와 달리 가정연합은 세계평화와 인류구원이라는 큰 틀을 제시했고, 이 새로운 선교 모델은 결국 통했다.

 국제연합(UN)에도 적용된 논리다. 토머스 월시 천주평화연합 세계회장은 “문·한 총재는 ‘국가 이익을 대변하는 유엔으로는 세계평화를 달성하기 어렵다.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만 주력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두 총재가 만든 세계평화도서국가연합, 세계평화대륙국가연합, 세계평화반도국가연합, 몽골반점동족세계평화연합, 국제구호친선재단, 국제소수인종연맹, 그리고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이 지구촌 곳곳에서 유엔 대체재 노릇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정연합이 미국에 안착하는 데는 언론도 한몫을 했다. 영어신문 워싱턴타임스, 스페인어신문 노티시아스델문도, 통신사 UPI를 창간 또는 인수해 희망과 평화 그리고 바람직한 보수주의의 미덕을 끊임없이 전파했다.

 통일은 종교와 교파에서도 이뤄져야 한다는 믿음 또한 실행에 옮겼다. 각 종교 경전 중 서로 겹치는 내용이 80% 이상이라는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종파 이기주의를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 세계에큐메니컬연구협회, 하나님회의, 국제종교재단, 세계종교의회, 세계종교청년세미나를 속속 선보였다. 다양한 종교들의 핵심교리를 담은 ‘세계경전’도 편찬해냈다.

【뉴욕=뉴시스】천주평화연합(UPF) 토머스 월시 세계회장

【뉴욕=뉴시스】천주평화연합(UPF) 토머스 월시 세계회장 

 범위를 미국에 한정하면 미국성직자지도자회의가 있다. 이런저런 종교의 성직자들이 “가정을 바로 세우고, 지역사회를 재건하며, 나라와 세계를 새롭게 하자”는 미국성직자지도자회의의 깃발 아래 줄을 서기에 이르렀다. 가정연합의 매스웨딩(축복결혼식)에 오순절교회, 침례교회, 루터교회, 이슬람교 등 200여 교회의 성직자와 신자들이 참여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뉴욕 허드슨 강가 베리타운에 세운 통일신학대학원은 유대교, 개신교, 로마가톨릭, 그리스정교에서 교수들을 초빙했다. 가정연합의 뉴욕 교회는 물론 호텔(뉴요커), 문화공연장(맨해튼센터), 대학교(브리지포트), 합창단(국제새소망), 교향악단(뉴욕심포니오케스트라), 록밴드(선버스트), 무용단(국제민속), 관현악단(고월드브라스밴드), 남북미통일연합(CAUSA 인터내셔널) 등이 가정연합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힘을 싣고 있다. 카우사 교육과정을 이수한 미국의 목사만 7만명에 달한다.

 “1972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미국이 세계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1차 50개주 순회강연을 시작하면서 미국은 하나님이 안고 있는 세 가지의 큰 고민을 책임져야 한다고 설파했습니다. 그 첫째는 공산주의로부터의 위협이요, 둘째는 기독교의 몰락이요, 셋째는 윤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청소년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는 것이고, 그리하여 자유와 신앙 그리고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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