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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성' 방탄소년단 서울 콘서트, 수어는 가득했다

등록 2022.03.16 12: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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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 서울' 13일 공연

하이브, 청각장애인 2명 위해 수어통역사 2명 섭외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콘서트에서 수어통역사가 수어통역하는 모습. 2022.03.16. (사진 = 김이나 작사가 인스타그램 캡처)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콘서트에서 수어통역사가 수어통역하는 모습. 2022.03.16. (사진 = 김이나 작사가 인스타그램 캡처)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여운과 함께 각종 기록이 쏟아지고, 미담을 꼭 남긴다.

지난 10·12·1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펼쳐진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 서울(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SEOUL)' 역시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이 2년5개월 만에 서울에서 연 대면 공연.

오프라인과 온라인 스트리밍, 극장 '라이브 뷰잉' 등을 통해 세계에서 246만5000명이 봤다. 이 중 사흘 간 오프라인 관객수는 회당 1만5000명씩 총 4만5000명을 기록했다. 특히 마지막날인 13일 객석엔 특별한 관객 2명이 함께 했다. 청각장애인 2명이 콘서트를 함께 즐긴 것이다.

이들 앞에서 2명의 수어통역사 A씨와 김지얀(가명) 씨가 약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30분씩 번갈아가며 노랫말과 멤버들의 말을 전달했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가 2명의 청각장애인을 위해 섭외했다. 지난 2019년 10월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방탄소년단 콘서트에도 6명의 청각장애인과 2명의 수어통역사가 함께 했었다.

해당 사실은 콘서트를 관람한 작사가 김이나가 소셜미디어에 후기를 남기면서 더 많이 알려졌다.

김 작사가는 "함성을 내지 못하는 BTS 콘서트라니. 너무 희귀해서 오히려 좋아. 많은 이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행복해하는 현장에 있는 건 언제나 벅찬 체험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공연 내내 한 분이 춤을 춰가며 수어로 가사 통역을 하고 있던 모습"이라고 썼다.

"아마도 그 앞자리가 청각장애인석이었던 것 같은데 앙코르로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가 나올 때는 유난히 감동적이어서 담아봤다"라며 수어통역사들이 통역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게재했다.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7월 발표한 디지털 영어 싱글 '퍼미션 투 댄스'는 멤버들의 수어 동작이 안무로 포함돼 크게 화제가 됐다. '춤추다' '즐겁다' '평화' 등을 뜻하는 동작이 자연스럽게 삽입됐다. 해당 곡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한 데다, 같은 해 9월 방탄소년단이 유엔(UN) 본부를 누비는 모습을 영상에 담을 때도 이 곡을 불러 영향력이 크다.

이렇게 '퍼미션 투 댄스'는 청각장애인이 음악을 즐기는데 장벽을 낮춘,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의 대표적인 대중음악이 됐다.

2019년 방탄소년단 서울 콘서트에 이어 이번에도 수어 통역사로 나선 김지얀 통역사는 15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이번 콘서트에 오신 청각장애인 두 분 중 한 분은 지난 번에도 오셨던 분"이라면서 "제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말씀 해주셔서 좋았다"고 웃었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_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SEOUL_단체(4). 2022.03.14. (사진 = 빅히트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_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SEOUL_단체(4). 2022.03.14. (사진 = 빅히트뮤직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실 노래 통역이 어려워요. 시적인 부분도 있고요. 전 (방탄소년단 팬덤인) 아미까지는 아니지만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거든요. 그래도 유튜브 등을 통해 뮤직비디오 해석된 내용 등을 공부하고 갔습니다."

A 통역사는 이번에 처음으로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함께 했다. 방탄소년단은 잘 알고 있었으나, 노래에 대해 세세히 알지 못했던 그는 약 2주 동안 세트리스트의 모든 노래를 숙지하고 멤버들 관련 공부를 했다.

"방탄소년단 노래에 시적인 표현이 많아 제가 먼저 곡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어요. 특히 세계적인 그룹이다 보니 영어 노랫말도 많아서 단순히 문자로 번역해 통역을 하는 것보다 의미 부분을 확실히 전달하는 게 중요했거든요. 랩 부분의 통역이 난이도가 특히 높아요. 박자와 리듬에 맞춰 열심히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A 통역사와 김지얀 통역사가 수어 통역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으로 뽑은 건 각각 '봄날'과 '라이프 고즈 온'.

A 통역사는 "'봄날'은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희망을 주는 메시지들이 담겼다"고 했다. 김지얀 통역사도 "'라이프 고즈 온'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상이 반복되고,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가 와 닿았다"고 했다.

이번 콘서트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함성이 없는 공연으로 진행됐다. 한국 콘서트의 진풍경으로 꼽히는 열정적인 떼창과 함성이 사라진 것이다. 특히 방탄소년단 같은 수퍼 글로벌 그룹 콘서트에선 환호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평상시 콘서트에선 함성이나 다른 소리 등으로 인해, 노래 가사나 가수의 말이 수어통역사에겐 안 들릴 때가 있다. 수어통역사가 노래를 확실히 들을 수 있게끔 인이어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이번에 뜻하지 않게 수어통역사들이 노랫말과 멤버들의 멘트를 더 수월하게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김지얀 통역사는 "농인(청각장애인) 분들이 더 잘 들렸겠다"며 응원을 해주셨다고 했다.

A 통역사는 "농인분들이 수어 통역도 보시지만 무엇보다 멤버들의 춤과 무대를 보며 콘서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_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SEOUL_단체(4). 2022.03.14. (사진 = 빅히트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_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SEOUL_단체(4). 2022.03.14. (사진 = 빅히트뮤직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연극 등을 비롯 순수문화로 분류되는 공연 장르엔 수어 통역이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경우를 제외하곤 콘서트 등 대중문화 공연에서는 수어 통역이 드물다.

김지얀 통역사는 "물론 통역이 있으면 좋은데, 자막도 있으면 좋겠어요. 미학적으로 청인(청각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 방해될 수 있겠지만 같은 돈을 지불하는 만큼 똑같이 문화생활을 할 권리를 농인분들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수어엔 '한국수어'가 따로 있다. '한국수화언어'의 준말이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처럼 독립된 언어다. 한국인의 대다수가 한국수어를 모르는 것처럼, 농인들이 모두 한국어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공식 언어는 한국어와 한국수어다. 지난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돼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공용어로서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

김지얀 통역사는 "사실 과거에 수어나 수어 통역이 필수가 아니었어요.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이후 공용어로 인정받게 된 뒤에야 많은 분들이 알게 됐죠. 그런데 문화생활을 할 때는 여전히 농인 관객분들이 관계사 측에 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농인이 요구하기전에 콘서트 업체에서 수어통역사를 미리 섭외하고 자막도 추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번 방탄소년단 콘서트 같은 경우는 하이브가 적극 수용해주신 결과예요. 사실 산술적으로 따지면 농인이 두 명인데, 두 명의 통역사가 배치(집중력과 원활한 소통 등을 위해 30분 이상 되는 프로그램에는 두 명 이상의 수어 통역사가 배치되는 게 일반적)되는 건 비효율적이거든요. 하지만 농인분들이 문화를 누릴 권리를 보장하는데 효율을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똑같이 공연료를 지불하니까요."

김지얀 통역사는 방탄소년단의 콘서트에 수어 통역사 배치를 요구한 농인의 예를 들며 "의견을 내면 '변화될 수 있다'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바뀌면 대중의 인식도 바뀌게 될 겁니다. 방탄소년단 같은 유명한 가수 덕분에 수어가 이슈가 됐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게 됐죠. 방탄소년단과 하이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A 통역사도 "방탄소년단의 '퍼미션 투 댄스'는 수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가 됐다"면서 "청인이 수어를 안다면, 농인들이 삶에서 불편을 겪지 않을 거예요. 방탄소년단이 수어를 선보인 것처럼 많은 곳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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