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그렇게 만만합니까"…밈으로 부활한 '헤어질 결심'
기대 이하 흥행 '헤어질 결심' 밈으로 주목
각본집 예약 판매에 '밈 댓글' 백여개 달려
"그 각본집은 제 책장에 버려요" 등 놀이로
문어체로 생경하고 정곡 찌르는 대사 주목
박해일 주연한 '한산'과 결합해 밈 확장 중
"조선이 그렇게 만만합니까" 등 SNS 등장
'타짜' 등 영화 대사 밈 되면 생명력 길어져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헤어질 결심'은 20일까지 134만명이 봤다. 이 작품은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크게 관심받았다. 그러나 국내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탑건:매버릭'에 눌렸고, '토르:러브 앤 썬더'에 치였다. 심지어 '명탐정 코난:할로윈의 신부'보다 관객이 적게 든 날도 있었다. 전 세계 192개국에 판매되면서 한참 낮아진 손익분기점인 100만명을 겨우 넘겼다. 그렇게 '헤어질 결심'은 유명하지만 본 사람은 별로 없는 영화로 남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영화, 밈(meme·인터넷 유행어)으로 부활했다.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대사를 변형해 소셜미디어에 글을 쓰거나 댓글을 남기는 게 유행이 된 것이다.
지난 18일 영화 '헤어질 결심' 각본집이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이 각본집이 하루만에 6000부 이상 예약 판매되며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른 게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것 못지 않게 관심받은 게 온라인 서점 내 '헤어질 결심' 각본집 페이지에 달린 댓글이었다. "그 각본집은 제 책장에 버려요, 깊은 데 빠트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슬픔이 파도처럼 덮쳐오는 각본집이 있고, 잉크가 물에 퍼지듯 서서히 물드는 각본집도 있지" "사는구나, 마침내" "한국에서는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각본 보기를 중단합니까" 등 '헤어질 결심' 속 대사를 활용한 댓글이 백여개가 달리며 소셜미디어로 퍼져나갔다.
'헤어질 결심'이 밈이 된 건 말 그대로 밈이 될 만한 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수치가 말해주듯 관객이 많이 든 영화는 아니지만, 일단 보고 나면 오래 여운이 남는다는 게 일관된 평가를 받는다. '헤어질 결심'이 잔상을 오래 남기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꼽히는 게 한 번만 들어도 기억에 오래 남는 대사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함께 쓴 이 영화의 대사들은 구어체보다는 문어체에 가깝게 쓰여 생경한 느낌을 준다. 낯설긴 하지만 평범한 구어 대사보다 각인된다. 박 감독과 정 작가는 특유의 정교함으로 스토리와 캐릭터는 물론이고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에 딱 들어맞는 대사를 매 장면 배치해놨다는 점도 유독 '헤어질 결심'의 대사가 강하고 오래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저 형사의 심장을 내게 가져다줘요"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마침내"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한국에서는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그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곳에 빠트려서 아무도 못찾게 해요" 등 영화 속 수많은 대사가 이른바 '명대사'로 꼽힌다. '헤어질 결심'을 인상깊게 본 영화 팬들은 이런 대사들을 영화 밖으로 끄집어내 '헤결 밈'으로 공유하며 온라인 공간에 빠르게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헤결 밈'은 다른 영화로도 퍼져나가고 있다. 이 밈의 연결고리는 배우 박해일이다. 박해일은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 '해준'을 연기한 데 이어 영화 '한산:용의 출현'에선 주인공 '이순신'을 맡았다. 두 영화가 한 달 차를 두고 개봉하게 되자 해준이 이순신이 됐다며 '헤결 밈'으로 '한산:용의 출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하나의 놀이가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조선이 그렇게 만만합니까" "왜가 그렇게 나쁩니까" "저 왜군의 심장을 내게 가져다줘요" "왜군은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그 왜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곳에 빠트려서 아무도 못찾게 해요" 등이다. 국내 영화 홍보업체 관계자는 "밈과 흥행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수치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온라인상에서 자주 회자된다는 건 어떤 방향으로 봐도 영화에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밈은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장난이다. 때로는 부정적인 현상 등과 얽히기도 한다. 하지만 잘만 결합되면 밈의 대상이 된 콘텐츠의 생명력이 길게 유지되는 사례가 제법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영화 '타짜'다. '타짜' 역시 명대사로 유명한 작품이다. 2006년에 나온 이 영화는 각종 명대사로 개봉한지 1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밈으로 쓰이고 있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동작 그만, 밑장 뺴기냐" "손은 눈보다 빠르다" 등은 밈 베스트셀러다. 최근에는 '타짜' 속 캐릭터 '곽철용'이 느닷없이 밈으로 소환되면서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묻고 더블로 가"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등 그의 대사가 밈이 됐다. 그렇게 '타짜'는 오래 살아남은 콘텐츠가 됐다. 배우 마동석이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 각종 영화에서 보여준 유사한 캐릭터를 모두 한 명의 마동석으로 보는 식의 밈이라든가, '범죄도시'의 "니 내 누군지 아니" 같은 대사, 영화 '엑시트'의 "따따따 따 따 따 따따따" 같은 것들도 영화가 밈이 된 최근 사례 중 하나다.
'헤결 밈' 역시 물론 장난이고 놀이다. 다만 업계 일부 관계자들은 '헤어질 결심'이 단순히 놀이로만 소비되는 영화가 아니라 완성도 면에서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밈으로 인해 더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될 거라고 보기도 한다. 국내 제작사 관계자는 "특정 영화가 유행어를 만들어낸다는 건 그만큼 파급력 있는 콘텐츠라는 의미"라며 "물론 '헤결 밈'은 영화 팬 사이에서 주로 통용되는 밈이기는 해도 '헤어질 결심'이 얼마나 잘 만들어진 영화인지 새삼 알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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