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문화연구소 "장생 탄광 유해·유족 찾기 진력하겠다"
2026년 6월 6개국 잠수부 2차 발굴 성과 기대
![[울산=뉴시스] 당시 강제징용자 숙소 2000년도에는 많은 숙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도 없고 사진만 15~16장 소장 중이다. 당시 강제징용자들이 사용했던 물품 중 술병 등 여러가지 소유품은 김문길 교수가 수집해 연구후 강제동원역사사료관에 기증했다. (사진=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제공) 2025.12.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2/04/NISI20251204_0002009967_web.jpg?rnd=20251204103539)
[울산=뉴시스] 당시 강제징용자 숙소 2000년도에는 많은 숙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도 없고 사진만 15~16장 소장 중이다. 당시 강제징용자들이 사용했던 물품 중 술병 등 여러가지 소유품은 김문길 교수가 수집해 연구후 강제동원역사사료관에 기증했다. (사진=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제공) 2025.12.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조현철 기자 = 한일문화연구소(소장 김문길 부산외대 명예교수)는 4일 최근 일본 장생 탄광(長生炭鑛·조세이 탄광) 수몰 조선 노동자 유해 발굴과 관련 의견문을 내어 "장생 탄광 수몰 사고 유해를 2구 발굴하고 앞으로 지속 발굴하려는 양국 장생 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에 감사한다"면서 "2000년부터 연구 발굴 및 유해 유족 찿기를 해온 만큼 유족 찿기에 더 진력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200만여명의 조선 노동자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됐으나 수십만명의 사고로 숨진 분들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 못찿고 있는 데다 징용자 명부마저 거의 없고 유족도 못 찾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장생 탄광은 강제 징용자 명부가 있고 주소마저 명확하다고 한다.
장생 탄광에서 강제 노역한 일본인과 한국인 노동자 183명 중 한국인 노동자는 136명이다. 출신 지역별로 보면 경북이 70여명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은 울산·경남 출신이다.
장생 탄광 수몰자 추모회(기자무회) 야마구치 다케노부(山口武信)씨와 시마(島)씨가 생존해 있을 때 김 소장과 함께 유족 찿기에 나선 수년 후 명부가 완성됐다.
조선인 노동자 136명 중 8명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을 확인했다. 부산시 거주 후손이 호적을 보내 줘 알게 됐다. 부친은 경북 경주에서 장생 탄광으로 끌려갔다가 수몰 사고로 숨진 사실을 알게 됐다.
구 호적을 보면 1942년 2월3일 오전 8시께 장생 탄광 내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조선 노동자와 일본 노동자 183명이 수몰됐다. 이들 중 한 사람이라고 기록돼 있다.
김 소장은 "당시 사고에 대해 영덕에서 왔던 한 노동자는 살아생전 필자와 자주 만났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도망을 갔기 때문이다. 사고 전날 작업 때 바다에 배가 지나가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는 그 소리 듣고는 아찔한 마음이 들어 광에 들어가기 싫었다"며 "2월 탄을 캐낸 작업장은 제3구로, 그곳 굴 천장에 탄이 많아 천장에 붙은 탄을 캐니까 바다에 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탄광에 들어가지 않고 도망을 쳤다"고 전했다.
탄광 작업을 감독한 이노우에 마사도(井上正人)씨는 "수몰 자가 많은 것은 실적을 높이라는 명령에 따라 무작정 탄이 있는 곳을 파고 들어간 탓"이라고 증언했다. 조선 징용자 한 사람의 생명은 전쟁 물자 석탄 한 통만도 못한 셈이다. 영덕에서 온 징용자는 죽음을 각오하고 도망치기로 마음을 먹은 바람에 살아 남았다.
제2차 유해 발굴 작업은 내년 2월6일부터 6개국 잠수부가 동원돼 발굴함에 따라 큰 성과가 기대된다. 발굴 작업을 위해 일본에서 모금한 결과 100만엔을 모금했다.
김 소장은 "이제 양국 정부가 찾은 유해 DNA를 조사해 83년간 기다렸던 자식들의 품에 안겨줘야 한다. 남은 8명 중 한 사람 더 찾았으니 7명 남았다"며 "'우리 아버지 찾아 주세요' 하는 편지가 오고 있다. 호적에 장생 탄광에서 돌아가셨다는 기록이 있어야 한다. 하루빨리 유족들이 다 찾았으면 한다"고 바랐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소재 해저 탄광인 장생 탄광에서 1942년 2월3일 해저 갱도가 수몰되면서 조선인 강제 동원 노동자 136명을 포함해 183명이 사망했다.
일본 시민단체인 '장생 탄광의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지난해 8월 갱도 입구를 찾았다. 올해 8월 잠수사들이 바닷속 환기구(피야)를 통해 들어가 희생자 두 분의 유골를 발견했다. 한일 양국은 유골에 대한 DNA 검사를 빨리 진행해야 한다. 공동 조사도 자주 이뤄져야 한다.
한일의원연맹은 11월16일 일본 장생 탄광 유골 발굴 및 DNA 정보를 공유(신원확인)키로 하는 등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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