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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는 빼기가 안 돼요”…오용길 화백, ‘봄의 기운’

등록 2026.03.03 14:47:14수정 2026.03.03 18: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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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작화랑서 벚꽃 만개한 30번째 개인전

한 붓으로 완성한 수묵 채색화 20여 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내년 대작만 모은 전시 추진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3일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에서 개인전을 연 오용길 화백이 경남 산청 용원정의 봄을 그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6.03..03.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3일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에서 개인전을 연 오용길 화백이 경남 산청 용원정의 봄을 그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6.03..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벚꽃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분홍빛은 화사하지만 화면은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화가 오용길(79· 이화여대 명예교수) 화백의 산수는 계절의 정취보다 붓의 태도를 먼저 드러낸다. 작은 차이를 축적해 온 필선, 우연을 허용하되 구조를 놓지 않는 계산이 화면을 지탱한다.

그는 장르 구분에 선을 긋는다. “동양화냐 서양화냐, 그건 나한텐 의미가 없어요.”

지필묵을 기반으로 하지만 공간 개념과 조형 감각은 서양화의 시각을 끌어온다. 여백을 비워두기보다 화면을 밀도 있게 채운다. 유채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수채화처럼 보인다는 반응도 있지만, 그는 차이를 ‘필선’과 ‘종이’에서 찾는다.

“유화는 더하고 빼고가 다 되는데, 한국화는 빼기가 안 되는 거예요. 더하기는 돼도 빼기가 안 돼.”

먹과 물이 한지에 스며들면 다시 걷어낼 수 없다. 그래서 한 번의 선택이 곧 결과가 된다.

그는 작품을 거의 한 붓으로 완성한다. 세필을 여러 번 쓴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번의 붓질 안에서 농담과 속도를 조절한다. 붓을 떼지 않고 힘을 누르고 풀며 화면의 밀도를 만든다.

그래서 그는 반드시 밑그림을 그린다.

“안 그러면 100전 100패죠.”

3일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에서 만난 그는 누구보다 먼저 봄을 화폭에 옮긴 사람처럼 환한 표정이었다. 55년째 수묵채색화의 한길을 걷고 있는 그는 “아직 건강하다”며 “늘 그리는 게 내 일”이라고 했다.

전시장에는 20여 점이 걸렸다. 화면은 빛을 머금은 인상파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벚꽃은 화사하게 번지고 색채는 유연하게 겹쳐진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먹의 선이 단단히 구조를 잡고 있다. 분홍빛의 부드러움 아래 계산된 필선이 놓여 있다.

“너무 조심스러우면 안 돼요. 위축되면 안 되고.”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청작화랑에서 오용길 30호 개인전이 18일까지 열린다.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청작화랑에서 오용길 30호 개인전이 18일까지 열린다.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풍경은 실경이면서도 구성이다.

“자연을 그대로 그리면 그림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하고 조정을 해야 돼요.”

경남 산청 용원정 등 이번 전시에 등장한 벚꽃 풍경 역시 가을에 본 장면을 바탕으로 완성됐다. 봄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축적된 벚꽃의 기억을 재구성한 결과다.

“봄을 보고 그린 게 아니에요. 제 머릿속에 있는 벚꽃은 수도 없이 그렸으니까… 안 보고도 만들 수 있죠.”

한지와 화선지의 물성에 대한 그의 설명은 단호하다.

“내가 화낸다고 재료가 따라오진 않아요. 내가 거기에 맞춰줘야지.”

우연을 허용하되 방치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그의 화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는 그의 30번째 개인전이다.

“벌써 30회라니,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뜻이겠지요.”

웃으며 말했지만 화면에는 시간의 두께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는 지난해 화가로서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됐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안 해줘요.”

한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라 여겼지만, “나도 한번 대접받고 싶더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오용길 봄의 기운 '고택' *재판매 및 DB 금지

오용길 봄의 기운 '고택' *재판매 및 DB 금지



55년. 한지와 먹, 붓을 붙들고 보낸 시간이다. 그는 매년 꽃도, 나무도 다르다고 했다. “감동을 주려면 화폭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그의 작업 태도를 요약한다.

묵묵하고 담담한 그의 태도는 기운생동의 수묵 필치로 번져, 꽃향기처럼 은은하게 시선을 붙든다.

오용길이 말하는 ‘성공한 그림’은 관람자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화면이다.

“사람이 지나가다가 ‘야 멋있어’ 하면 가까이 가서 보고 싶잖아요. 그림도 그래요. 쓱 보고 패스하면 감동이 없는 거예요.”

그는 관람자의 감각 역시 열려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감성이 메말라 있으면 아무리 잘해도 감동을 못 준다”는 말은, 결국 그림과 관람자가 맺는 관계의 문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3일 청작화랑에서 개인전을 연 오용길 화백.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3일 청작화랑에서 개인전을 연 오용길 화백. *재판매 및 DB 금지



익숙한 벚꽃과 한옥, 산수라는 소재는 관람자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화면을 붙드는 것은 화려한 색이 아니라 필선의 밀도다. 벚꽃은 흩날리지만 화면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산수는 ‘옛날 그림 같다’는 인상을 넘어, 성실하게 쌓아온 작업의 태도에서 기운생동한다. 여든의 나이지만 그 태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우리 그림의 계보를 겸재 정선에서 잇는다. 전통의 후예라는 자부심 역시 분명하다.
“수묵화가 점점 잊혀가는 시대지만, 우리 그림을 끝까지 제가 담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9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을 포함해 우리 산천을 담은 대작 전시를 준비 중이다.

전시는 18일까지.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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