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문화硏 "가미카제 해군 비행장, 강제징용 조선인 동원 조성"
등록 2026.07.29 16:18:09
일본 정부 시인…일본 시민단체, 문화재 지정 산교육장 여론
![[울산=뉴시스] 가미카제특공대 해군 비행장 조선인 위안부소 약도. (사진=한일문화연구소 제공) 2026.07.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7/29/NISI20260729_0002199031_web.jpg?rnd=20260729142755)
[울산=뉴시스] 가미카제특공대 해군 비행장 조선인 위안부소 약도. (사진=한일문화연구소 제공) 2026.07.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조현철 기자 =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가미카제(神風 特攻隊) 발생지인 일본 나라현(奈良 縣) 덴리시(天理 市) 야나기 모도 초(柳本町) 냐가기 모도 해군 비행장을 강제노역 당한 조선인들이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일본 정부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군 비행장에 설치된 조선인 위안부 소가 허물어질 위기에 있는 등 장기간 방치되면서 이 역사 현장을 문화재로 지정·보존하자는 일본 시민단체의 운동이 일고 있다.
29일 한일문화연구소에 따르면 가미카제 해군 비행장 방공호에 대해 '나라현 역사 바르게 알기'라는 일본 사회단체는 조선인 위안부 소도 나라현에서 문화재로 지정해 과거 아픈 역사의 현장을 후손들이 산교육장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나기 모도 해군 비행장은 백제인들이 동해를 건너가 야마토국을 세웠던 곳이다.
나라 역에서 JR 벚꽃 선을 타고 15분 거리에 야나기모도역이 있다. 역 5분 거리에 있는 넓은 논밭 300만㎡에 해군 비행장이 조성됐다. 패전 이후 비행장은 없어졌으나 1943년 건설 당시 강제로 끌고 간 조선 노동자 500여 명이 밤낮 없이 험하고 높은 야산을 파내어 활주로를 만들고 지하 방공호를 구축했다.
강제노역 도망자가 많다 보니 비행장 내 감옥이 별도 있었다. 강제 노역 중 맞아 죽은 자와 병사자의 화장터도 있었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부산외대 명예교수)는 "경남 하동에서 붙잡혀와 구사일생으로 살아 해방을 맞이한 강모 씨(나라현 생존 조선인)는 그때 아픔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울면서 털어놓은 적이 있다"며 "야나기 모도 비행장에 붙잡혀온 조선인은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일본 정부도 시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제 강제노역 제도는 1937년 제정됐다. 1938년부터 조선 노동자들이 일본(자유도항)에 들어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인력이 부족한 1942년께부터는 관계 당국이 책임지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인원(관 알선)을 보충했다. 관 알선으로 노동자를 동원한 지역은 사도 광산과 군함도((軍艦島)도 포함됐다. 그래도 부족할 때는 1943년부터 관할 경찰국이 분배받은 노동자를 강제라도 동원하라는 법을 만들었다.
일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군함도와 사도 광산 조선인 노동자는 강제 징용자가 아닌 1943년 전 관 알선 때 왔으므로 강제로 온 것은 아니라고 내세운다.
김 소장에 따르면 가미카제 해군 비행장 조선 노동자 500여명은 강제로 데리고 간 시기에 해당한다.
![[울산=뉴시스] 가미카제특공대 해군 비행장 방공호와 조선인 위안부소. (사진=한일문화연구소 제공) 2026.07.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7/29/NISI20260729_0002199038_web.jpg?rnd=20260729142951)
[울산=뉴시스] 가미카제특공대 해군 비행장 방공호와 조선인 위안부소. (사진=한일문화연구소 제공) 2026.07.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뿐만 아니라 1943년 강제로 끌고 간 간 조선 여성 위안부도 40명이나 된다. 1992년 일본군 조선 위안부 문제를 최초 알린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야나기 모도 해군 비행장을 찾아 위안소에 감금된 위안부 40여명은 영남 일대 처녀들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진주 출신 강모 씨는 "고향에서 밭농사 짓고 있을 때 일본군이 와서 끌고 가 관부연락선을 타고 왔다. 1년 6개월 만에 해방을 맞아 풀려났다. 진주 고향 사람 집에서 2개월 살다가 귀국했다"고 증언했다.
야나기 모도 해군 비행장은 현재 땅 소유주가 있는 논밭으로 변해 있다. 방공호는 나라시가 지방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땅 주인과 협의 중이다.
그러나 조선인 위안부 소는 땅 주인 있어도 건물은 국가가 지었다. 이에 따라 건물이 허물어져도 땅 주인이 재산권 행사를 못 한다.
김 소장은 "지난 6월 조사 차 야나기 모도 해군항공대 위안소에 갔다. 81년간 방치돼 허물어져 있었다. 이웃 사람에게 물어보니 땅 소유주가 수년간 법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땅 주인이 이긴다면 조선인 위안부 소는 헐리고 말 것이라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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