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수호 '웅치전투' 순국선열 기린다…진안군 추모제
등록 2026.08.14 14:39:08
![[진안=뉴시스] 전북 진안군은 14일 부귀면 창렬사에서 '임란 웅치전적지 순국선열 추모제'를 거행했다. (사진=진안군 제공) 2026.08.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14/NISI20260814_0002212976_web.jpg?rnd=20260814143412)
[진안=뉴시스] 전북 진안군은 14일 부귀면 창렬사에서 '임란 웅치전적지 순국선열 추모제'를 거행했다. (사진=진안군 제공) 2026.08.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진안=뉴시스]최정규 기자 = "여기서 물러서면 전주성과 전라좌수영 아니 전라도는 끝이여."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의병장 황박 역(役)의 대사 중 하나다. 당시 영화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을 다뤘지만 전라도 방어의 또 다른 중요한 전투로 웅치전투를 내세웠다.
웅치전투는 1592년 음력 7월8일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현 '곰티제'라 불리는 웅치에서 벌어진 전투다. 웅치는 산세가 높고 험했다. 한양을 점령한 후 전라도 점령을 위해 전주성 공략을 하던 고바야카와 다케카게(소조천륭경)의 제6번대와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웅치에서 격돌했다.
조선군은 곰티재의 지형을 이용해 곳곳에 목책을 세워 방어태세를 갖췄다. 조선군은 웅치에서 3겹의 방어선을 치고 결사항전했다. 1군과 2군이 결사적으로 그들을 막아 물리쳤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총격을 감행한 일본군은 결사항전했지만 장수 4명과 조선군 2000명이 전사하는 등 끝내 패배했다. 패배한 전투였지만 웅치 전투로 타격이 컸던 일본군은 그 기세가 꺾여 결국 전주성을 포기하고 후퇴했다.
웅치 전투는 그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22년 12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웅치 전투를 기리기 위해 전북 진안군은 14일 부귀면 창렬사에서 '임란 웅치전적지 순국선열 추모제'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개식 통고를 시작으로 관복을 갖춰 입은 제관들의 제례 봉행, 단체 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제례에는 전춘성 진안군수가 초헌관을, 김명갑 진안군의회 의장이 아헌관을, 이재수 진안·무주대대장이 종헌관을 맡아 웅치전투 호국영령들에게 헌작하고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전춘성 진안군수는 "웅치전투는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켜내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발판이 된 위대한 역사"라며 "앞으로도 웅치전적지의 역사적 의의를 널리 알리고 순국선열들의 호국정신을 후대에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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