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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동북아 복합 갈등의 등장과 불안정한 미래

등록 2019.10.04 13:00:00수정 2019.10.11 09: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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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유재광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유재광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 얼마 전 모 기업의 총수가 최근의 비즈니스 환경을 두고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이라고 말해 지금 한국이 처한 위기의 복잡성을 참담한 심경으로 토로한 바 있다. 한 기업의 총수가 아니더라도 우리 국민 누구라도 현재의 한국이 동북아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동의할 것이다.

일본과는 수출 제재 문제로 최악의 양자 관계를 경험하고 있으며 중국과는 사드(THAAD) 보복의 여파로 중국진출을 포기한 기업의 속출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미국과 북한 간의 협상이 전형적인 교착상태(stalemate)에 빠져 있으며 이에 더해 미국과 중국의 무역 및 환율 그리고 기술 전면전으로 인해 한국의 개별 경제주체가 떠안고 있는 불확실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러한 동북아의 복잡한 갈등들의 원인은 무엇이며 앞으로 이것들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현재 동북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합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 있다. 형식상 미·중 패권경쟁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이익 우선(America First)정책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중국의 급격한 성장이 자국을 상대로 한 기술 침해와 무역적자에 편승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미국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길들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모양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한 보복관세는 물론 화웨이(Huawei) 제재 그리고 이제는 환율 조작국 지정을 통해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면적 패권경쟁은 동북아에 두 가지 잠재적 갈등 요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첫 번째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교착이다. 미국은 여전히 북·미 핵 협상 타결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對)중국 강공책은 미국 내에서 북핵 해결이라는 아젠다가 외교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결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북한을 대(對)중국 견제용으로 사용할 유인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 경우 당연히 미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과 북한 간의 갈등 가능성은 증가한다.

두 번째로 미-중 갈등은 한일 갈등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무역분쟁에 뛰어들면서 이론적으론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을 시도하고 있다. 즉 미국이 투사하고 있는 군사적 자원을 스스로가 부담하는 일종의 관리자 역할을 체계적으로 포기하고 지역의 국가들 스스로가 안보를 책임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일본으로 하여금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으며 아울러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일본을 소외시켜 아베 정부의 대(對)한반도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적극적 안보정책은 이러한 환경을 배경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것이 좀 더 구체화 될 경우이며 한국과 일본 북한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갈등의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동북아의 주요국가들(북한 제외)이 이해 충돌의 과정에서 과거와 구별되는 새로운 복합 갈등(complex conflict)의 양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이해관계의 충돌 시 국가들은 군사력 사용이나 군사력 사용을 암시하는 강요성 외교(coercive diplomacy)로 자신의 국익을 극대화하려 해왔다.

다만 수천 개의 핵으로 무장한 현대 국제정치 특히 북한마저 핵을 보유한 동북아에서 핵 사용을 포함한 군사력 사용은 그 효용성이 거의 없다. 이러한 핵 억지의 동학은 동북아 국가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비(非)군사적 수단을 자신의 국익 추구에 동원하게끔 만들고 있다.

우리가 불과 몇 년 전 겪었던 중국의 사드(THAAD) 보복, 일본의 경제보복, 이에 대한 한국의 맞대응과 후쿠시마 오염수 카드를 사용하려는 양상들은 이런 비군사적 수단에 의한 국익실현 수단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존재한다.

전선을 확장하면 기술, 문화, 환경 분야도 국가 간 이해관계 충돌 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비군사적 국익실현 수단이다.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에 중립적으로 보이는 과학 기술도 현재 미·중 간 첨예한 사이버 안보 전에 동원되고 있으며 화웨이(Huawei) 사건에서 보듯이 기술소유권 문제 역시 비군사적 국익 추구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다.

문화 역시 사드(THAAD) 사태 관련 한(寒)한령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의 전략적 목표를 수행하는 도구가 되고 있으며 심지어 환경 분야도 미국의 파리 기후협약 탈퇴 및 일본 주변국들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분쟁화가 보여주듯이 국익 추구의 한 방편이 되고 있다. 복합 갈등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복합분쟁의 가장 큰 위험은 이해관계를 국가들이 분쟁의 횟수와 수단을 확장해 나가면서도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시각'과 '능력'을 상실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과거에는 화해되지 않은 역사와 안보갈등 그중에서도 영토(도서)분쟁만 해결하면 되었다. 하지만 복합분쟁의 시대에는 경제분쟁, 문화분쟁 그리고 환경분쟁이 전부 연결되어 하나의 실타래처럼 얽히게 된다. 동북아 국가들은 그 풀기 어려운 실타래를 막 짜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급증하는 동북아의 불안정은 "오래된 앙금에 대한 새로운 정책 수단을 통한 대결"이라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대외 정책 능력도 다변화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국익실현 수단은 청와대-국방부-외교부의 주도하에 소위 외교·안보 정책이 핵심에 위치해 왔다. 하지만 이제 경제, 문화, 환경 등 전 영역이 국익 추구의 수단이 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이상 한국 정부도 대외 경제정책 및 문화정책 심지어 환경정책 분야에서도 전략적 사고(strategic thinking)를 내재화하여야 한다.

사드(THAAD) 배치 결정 후 중국의 경제제재, 관광 및 문화 제재는 솔직히 누구도 심각하게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도 가능성만 언급되었을 뿐이지 누구도 실체적으로 대비하지 못했다. 복합분쟁의 시대로 접어드는 동북아에서 한국 정부의 다차원적 대외 전략 마련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유재광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국제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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