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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우리는 고용사회를 넘어설 수 있을까

등록 2020.05.14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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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 정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고용보험을 핵심으로 하는 소득보장시스템의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용보험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서 강제 적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근로자가 아닌 사람, 즉 자영업자도 근로자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5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주는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으면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20년 3월 기준으로 자영업자는 약 554만명이고 고용보험에 임의가입한 자영업자의 수는 2만4731명에 지나지 않는다. 무급가족종사자는 약 102만명이다. 근로자와 사용자는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나 고용유지지원금을 통해서 급한 불이라도 꺼보려고 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마찬가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의 일부 참모진과 여당 일각에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을 꺼내들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노동계와 학계에서 주로 제기한 이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3주년 연설에서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약속하였다.

대통령의 연설에서 보면 그 기초란 첫째로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조속히 추진하는 것, 둘째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하는 것, 셋째로는 자영업자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에 있는 듯하다.

그런데 지난 5월11일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가결된 '고용보험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가결된 개정 법률안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강제 적용과 플랫폼 사업주의 책임은 빠지고 예술인의 강제 적용만 담고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제1야당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그 유형이 다양하고 자영업자와 경계가 불분명하여 실업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보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고용보험 의무 가입에 반대했다.

사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 고용보험 강제 적용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의 하나로서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면밀하게 준비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실직과 은퇴에 대비한 일자리 안전망 강화를 위하여 "모든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고용보험을 확대·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고용노동부 산하의 고용보험위원회에서는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예술인과 특수고용형태근로종사자 등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방안을 논의하였고 2018년 7월에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를 반영하는 법률 개정안이 바로 2018년 11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용보험법 일부개정 법률안'이다. 이 법률안의 가장 큰 특징은 종래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개념을 획기적으로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 법률안에서는 "근로자가 아니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 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는 사람으로서 이 법에 따른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라고 고용보험의 강제 적용 대상자로 하고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용어는 이미 2007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개정에 의해서 도입된 법적 개념이지만 범위가 상당히 좁기 때문에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특수고용형태종사자를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아니하여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자(이하 이 조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 한다)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 첫째는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이고 둘째는 "노무를 제공함에 있어서 타인을 사용하지 아니할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특수고용형태종사자도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 즉 보수를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특수고용형태종사자는 경제적으로 어떤 하나의 사업에 경제적으로 의존하여 생활하는 사람이다. 높은 수준의 경제적 의존관계, 즉 경제적 종속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주로 하나의 사업"과 "상시적으로"이라고 하는 전속성 요건을 부가한 것이다.

이러한 전속성으로 인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특수고용형태종사자에 대해서 보험 관계에 관한 각종 신고를 하고 보험료를 부담·납부하는 책임을 지는 사업주는 복수로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노무 제공에서 플랫폼이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이러한 전속성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의 확대에 중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수고용형태종사자라는 용어대신 '노무 제공자'와 같은 개념의 도입이 절실했다.

만약 노무 제공자 개념을 담은 개정 법률안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가결되어 본회의를 통과하였다면 대통령이 공언한 바와 같이 '전 국민 고용보험시대'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21대 국회에서 여당은 180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21대 국회에서 이러한 범위 확대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에 대한 기대를 접을 필요는 없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회적 합의 수준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가입 범위를 넓혀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계적이고 기술적인 접근방식으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의 실현으로 가기 위한 난관이 매우 크다. 특히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의무 가입 단계에 이르게 되면 기술적 차원에서는 대응할 수 없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자영업자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내용은 바로 이 패러다임 전환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근본적으로 취업의 다양한 형태를 통합하여 일하는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사회보장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보장시스템에는 보편적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도 포함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는 고용보험뿐만 아니라 산재보험, 그리고 건강보험과 연금보험에서도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에서는 건강보험과 연금보험에서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를 나누는 것은 더 이상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을 넘어서는 노동을 사고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양한 취업 형태 사이에 그리고 취업과 비취업 사이에서 직업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로막는 법 제도적·관행적·의식적 장애물을 없애고, 이를 촉진하는 법 제도와 관행을 구축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고용이라는 취업 형태를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보다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다양한 고용 형태 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확보하고 차별을 없애고자 노력하였지만 그다지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2003년에 지역의료보험조합, 공무원·의료보험공단, 직장의료보험을 하나의 재정으로 통합하여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만들었지만 그 이후 현재까지도 보험부담의 형평성과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과 기준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는 전 국민 건강보험을 실현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 해결에서 주목되는 것은 2018년 프랑스의 고용보험법 개정이다. 2018년 법 개정의 핵심적 내용은 자영업자와 자발적 퇴직자에 대해서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그 재원을 전적으로 조세와 특별부담금으로 충당하도록 하는 한편 고용보험의 보험료에서 근로자 부담분도 폐지하였다. 사회보험이 근로자보험을 넘어서 보편적인 사회보장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할 때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한 범위의 특수형태근로자에 대해서 고용보험을 적용한다고 해서 전 국민 고용보험의 기초가 깔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 노동사회의 규범과 구성원의 노동의식이 고용을 넘어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정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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