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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 '귀대면' 아세요?…젊은 극작가들이 사는 법

등록 2021.04.10 07:00:00수정 2021.04.10 19: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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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상에 공개하는 '듣는 희곡'

희곡 메일링 서비스 '계간(季刊) 괄호' 눈길

[서울=뉴시스] '듣는 희곡' 포스터. 2021.04.09. (사진 = 극작가 동인 괄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듣는 희곡' 포스터. 2021.04.09. (사진 = 극작가 동인 괄호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비대면 시대 '귀대면'으로 주목 받는 젊은 연극인들이 있다. 지난 2019년 결성된 극작가 동인 '괄호'다.

자신들이 쓴 희곡을 오디오드라마의 형태로 제작해 웹상에 공개하는 프로젝트 '듣는 희곡: 괄호에 귀대면', 국내에선 이례적인 희곡 메일링 서비스 '계간(季刊) 괄호' 등 90년대생답게 코로나19 시대에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이디어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괄호'는 10일 서면 인터뷰에서 "괄호가 극작가들끼리 모인 동인인만큼, 극작가가 모여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라는 고민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듣는 희곡: 괄호에 귀대면'은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온라인미디어 예술활동 지원 사업 성과공유회'에서 '아트 체인지업상'을 받을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이 프로젝트는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과 맞물려 극장 공연이 어려웠던 작년 하반기에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창단 당시부터 괄호는 무대를 경유하는 방식 이외에도 자신들이 쓴 희곡을 독자·관객·청취자에게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에 대해 고민해왔는데 그 중 하나였다. "'듣는 희곡: 괄호에 귀대면'은 청각매체를 통한 소통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계기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귀대면'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비록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드라마에 귀기울이고 있는 순간만큼은 대면 상황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반영한 제목이다.

괄호는 "괄호의 모양이 소라 껍데기처럼 생겼잖아요?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기울여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비대면의 '비'를 '귀'로 슬쩍 바꿔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코로나 시국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가까이 있으면 대면, 멀리 있으면 비대면이라는 식으로 무자르듯 나눌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가까워질수 있을까, 그 감각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의 문제가 더 중요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희곡 메일링 서비스 '계간(季刊) 괄호'는 극작가만이 할 수 있는 장기적 프로젝트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문학계에서 이미 에세이, 소설, 시 등의 메일링 서비스는 활발하다. 하지만 희곡 메일링 서비스는 이례적이다. 매 계절마다 2달동안 메일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작가마다 한 주씩 담당하고 드라마터그는 이에 대한 통합리뷰를 보낸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는 공연을 올렸을 때와 다르게 희곡이 탄생하자마자 꽤 빠른 시간 내로 독자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괄호는 "올해는 기본 콘셉트가 각자 다른 줄거리의 10분 희곡, 주차마다 이어지는 콘셉트의 릴레이 희곡 형태를 계속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계간괄호 여름이 지나면 저희가 계간괄호를 시작한 지 1년이 돼 가는데, 2년차 계간괄호 때는 또 다른 콘셉트나 방식으로 진행해보려 한다"고 전했다.

괄호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극원 안에서 수업을 들으며 '건너 건너 아는 사이'였던 이소연·신효진·김진희·도은 등 네 명의 여성 작가가 뭉쳤다. 이소연 작가가 이전에 함께 작업한 김민조 드라마터그를 섭외하면서 지금의 괄호가 구성됐다.

팀 명 '괄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대외적인 의미로는, 희곡에서 소지문을 쓸 때 괄호 안에 넣어서 쓰는데 괄호 안에 들어간 극작가의 언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극을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그 소지문들은 실제 공연 시에 쉽게 생략되기도 하기에 "극작가들이 뭉쳐 우리의 존재가 생략되지 말자"란 의미가 담겨 있다. 또 하나로는 "'괄호'를 발음하면 '과로'가 되는데, 희곡을 쓰며 '과로'하는 극작가들이란 의미도 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창단 공연 포스터. 2021.04.09. (사진 = 극작가 동인 괄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창단 공연 포스터. 2021.04.09. (사진 = 극작가 동인 괄호 제공) [email protected]

팀원들은 모두 연극계에서 급부상하는 이들이다. 김진희 작가는 '한낮의 유령'(2021), 도은 작가는 '아무튼 살아남기: 여캐가 맞이하는 엔딩에 대하여'(2019), 이소연 작가는 '마트료시카'(2018)와 '희곡상을 위한 희곡쓰기'(2020), 신효진 작가는 '디디의 우산'(2019)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2020)를 썼다. 김민조 드라마터그는 공연을 앞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2021)에 참여했다.

극작가들은 글을 쓰다 보면, 홀로 고립되기 쉽다. 희곡이 완성돼 테이블 작업을 거쳐 극작가의 손을 떠나고 나면 이후에는 연출과 배우의 몫이기 때문에, 연습실과 극장에서는 고립돼 있다는 감각이 있다. 

괄호는 "단지 공연을 위한 대본을 쓰는 사람이 아닌, 함께하고 있다는 그 감각을 찾고 싶었다"면서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극작가와 다른 극작가가 만날 수 있는 지점도 없다고 생각했다. 희곡을 쓰는 험난한 과정에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을 찾았고, 그 결과 각자의 섬에서 외로이 희곡을 쓰고 있던 극작가들이 만나게 된 셈"이라고 소개했다. "괄호는 극작가가 소외되지 않는 프로덕션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는 16~18일에는 화랑로 쌀(SSAL)에서 배우 집단 '운수대통'과 협업해서 낭독 공연 '호시탐탐'도 선보인다.

희곡은 중요한 장르임에도 국내 연극계, 특히 관객들 사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괄호는 "저희는 희곡이 가진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알고 있고, 잊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저희의 행보를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 또한 그 매력을 기대해주신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계속 희곡을 쓴다"고 전했다.

괄호의 궁극적인 목표는 "극화되지 않은 희곡 텍스트 자체의 가치를 찾아내고 더불어 연극화의 과정 속에서 동등하게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작업환경을 구성하는 것"이다.

매체가 다변화되고 볼거리가 많아지는 시대, 연극은 소외당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시국으로 접어들면서 젊은 연극인들에겐 기회조차 주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안정적으로 경력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대체로 20대를 졸업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괄호의 동인들은 "코로나 이전에도 경력이나 실적이 부족한 젊은 창작자들이 설 자리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고, 코로나 이후에는 네가 얼마나 가난하고 불쌍한지를 증명해보라는 요구가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여겼다.

더구나 대면 예술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 소위 말해 '뉴노멀한 것'을 제시할 것은 젊은 세대에게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괄호는 "정말로 젊은 세대의 연극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장기적이고 비계측적인 지원 제도"라면서 "단기적으로 성과를 뽑아내고 증명해야 하는 식의 지원사업들만 즐비하게 닥쳐오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젊은 연극인들은 잠재적 경쟁의 관계 속에서 각자 고립될 수밖에 없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젊은 연극인들에게는 기성을 향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보다도 서로 만나고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지원 제도는 그 흐름을 촉진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고요. 일단 만나게 해놓고 이것저것 간섭하지 않으면, 뭐라도 좋은 게 나온다고 확신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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