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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로봇배우' 성수연 "AI시대, 인간다움은 무엇일까요?"

등록 2021.04.29 08: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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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 SF연극 '액트리스 원'

국립극단 소극장 판서 공연

[서울=뉴시스] 성수연. 2021.04.29. (사진 =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성수연. 2021.04.29.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로봇과 달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연기는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을 했어요. 인간 배우가 실수를 하더라도 (작품을 망치는) 결정적인 실수가 아니라면, 당사자와 관객 모두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그런데 '로봇배우'에게 의도적으로 그 실수마저 입력을 할 수 있다면요?"

지난 16일부터 25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한 '액트리스 원: 국민로봇배우 1호'는 SF연극을 표방한다.

2029년 국립극단 배우 오디션에 참여한 '간병로봇'이 주인공. 생전 국민배우로 군림한 '성수연'이 그의 주인이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간병로봇에게 자신이 집대성해온 연기의 모든 것을 입력했다.

연극은 배우 성수연이 간병로봇, 성수연의 손녀이자 연기에 재능이 없어 간병로봇을 부러워하고 질시하는 '성수지' 등을 모두 연기하는 1인극이다. 극 중 국민배우 성수연은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다. 로봇 청소기와 로봇 라디오가 그녀의 연기를 돕는다. 

최근 국립극단에서 만난 성수연은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아온 방식을 자신의 몸에 새기는데 로봇이 무대 위에 오를 때 어떤 삶의 무늬가 보일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액트리스 원: 국민로봇배우 1호'는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토마스 멜레와 똑같이 생긴 로봇이 연극을 이끌어가는 리미니 프로토콜의 '언캐니 밸리' 등과 같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하루가 다르게 인공지능(AI)이 일상화되며 급속히 진보하는 기술사회 속에서 과연 '인간다움'과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지 묻는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대사를 패러디한 "켜느냐 끄느냐, 그것이 문제로다."(Power on or power off, that is the question.)가 문제 의식이다.

[서울=뉴시스] 연극 '액트리스 원_국민로봇배우 1호'. 2021.04.29. (사진 =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액트리스 원_국민로봇배우 1호'. 2021.04.29.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성수연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처음엔 '발목을 360도로 돌리면 어떨까'처럼, 겉으로 로봇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집중했다"면서 "하지만, 인물이 여러가지 내면을 갖고 있는 것처럼, 로봇의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전했다. "인간의 학습을 인공지능(AI)의 딥러닝(학습 기술)으로 치환하면 어떨까에 대해 상상을 한 거죠."

지난 2018년 작가 겸 연출가 정진새가 쓴 짧은 SF 소설이 모티브가 됐다. 2019년 신촌극장에서 초연했다. 성수연은 같은 해 18년 만에 부활한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에서 이 작품으로 젊은연극상을 받았다. 이미 '제8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연기상'(2015), '제52회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자상'(2016) 등을 거머쥔 촉망 받는 배우였다. 

이번에 국립극단이 젊고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마련한 기획전 '셋업(SETUP) 202'를 통해 다시 공연하게 됐다. 미래의 국립극단을 배경으로 한 이 공연이 진짜 국립극단에서 공연한다는 것만으로 새로운 맥락이 만들어졌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로봇배우를 뽑은 뒤 정비·관리 부서를 신설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에게 연락을 하는 등 나름의 현실감도 있다.

오는 5월 1~10일 같은 장소에서는 시리즈 연작 중 하나인 '액트리스 투: 악역전문배우'도 공연한다. 이 작품은 작년 6월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초연했다.

[서울=뉴시스] 연극 '액트리스 원_국민로봇배우 1호'. 2021.04.29. (사진 =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액트리스 원_국민로봇배우 1호'. 2021.04.29.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로봇을 혐오하는 이야기인데, 악역이나 악에 대해 연구나 공부를 하게 되면, 무섭고 힘들어지는 지점이 있어요. 끝도 없이 어두운 길로 들어서는 경우도 있는데 작가님과 깊이 이야기를 그 길로 빠지지 않게 노력했다"

성수연은 10대 때 '록 음악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미국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와 영국 밴드 '퀸'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밴드부가 없어서 연극부에 들어갔다. 이후 연극에 재미를 붙였고, 자연스레 중앙대 연극학과에 입학했다. 어린 시절 대학로 학전에서 본 김민기 연출의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록 음악과 뮤지컬의 재미를 동시에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그간 쉽지 않은 작품들에 출연해왔다. 광화문 거리를 무대로 벌인 연극 '도시이동 연구 혹은 연극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에서 '괴물여성'이 됐고, 연극 '그녀를 말해요'에선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다. 젠더프리 극 '묵적지수'에선 초나라의 궁녀 '장질', 이분법적 사회에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 '우리는 농담이(아니)야'에선 퀴어 'C', '로테르담'에선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앨리스'를 연기했다.

성수연은 연기한다기보다 감각하는 방식으로 무대에 오른다. '그녀를 말해요'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걸려 있는 그들의 영정 사진을 한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함께 연대하고 얼굴들을 아는 얼굴들로 만들어야 '진짜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성수연은 1인 창작 작업도 병행하고 있지만, 좀 더 배우로서 집중하기 위한 방편이다. "어떻게 해야 오랜 시간 배우로서 중심을 잡고, 계속 작업을 해나갈 수 있을 지에 대해 절실히 고민 중이에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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