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출산율 목표'로 저출산 대책 실패…삶의질·성평등이 해법
저출산·고령사회委 재구조화 자문 전문가 진단 공개
전문가들 "사회보장제도 확대하고 성차별 해소해야"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17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유엔인구기금(UNFPA)과 함께 발간한 '2017 세계인구현황보고서' 한국어판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성장률은 0.4%로 전년보다 0.1%p 하락했으며 여성 1인당 출산율은 1.3명으로 전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은 18일 오전 서울 중구 제일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2017.10.18. [email protected]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 재구조화를 위해 사회복지학·경제학 교수 등 전문가들로 꾸린 '재구조화 비전팀'은 25일 이런 내용의 자료집을 공개했다.
비전팀은 "저출산 정책이 실시된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출산율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최근에는 역대 최저 출산율이 나타나고 있다"며 "출산율 제고를 목표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정책 실패"라고 평가했다. 3차 기본계획도 '2020년 합계출산율 1.5명'을 목표치로 제시했다.
5년 단위로 목표 출산율을 설정하면 정부 부처는 단기적 실현이 가능한 복지 지원 정책에 집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책효과와 무관하거나 연관성이 낮은 사업들까지 기본계획에 포함됐다. 첫 기본계획 발표 이후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간 126조4720억원이 투입됐지만 '백화점식 나열'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다.
비전팀은 "정책 리스트가 확대되고 저출산 예산 규모가 인위적으로 과장되면서 '수조원을 쓰고도 효과가 없다'는 불필요한 비판을 자초했다"며 "저출산 정책 무용론,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중적 피로감, 저출산 정책에 대한 대중적 반감에 편승한 정책 음모론 등이 등장해 오히려 정책환경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단기목표 설정 과정에서 젠더 의제는 실종됐다.
비전팀은 "단기목표 설정 및 정책실현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젠더의 의제는 무시되고 여성의 출산 및 양육 환경이 개선되고 있지 않으면서 저출산의 위기가 강조되면서 ‘여성의 출산도구화’라는 정책 반대 의식을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저출산 대응 대책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전문가들이 제시한 건 '삶의 질'과 '성평등'이다.
삶의 질 악화는 객관적인 각종 지표상으로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10년간 실업률은 4% 이하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청년실업률은 10%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12.2%를 기록해 65만5000명의 청년실업자를 양산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경제위기 이후에 가장 근접한 수준이다. 지난해 실업률은 3.7%, 청년실업률은 9.8%였으며 청년실업자 수도 42만6000명이다.
비전팀은 "청년세대가 경험하는 만성적 고용 불안정과 주거 불안은 출산의 전제조건으로서 결혼이 사회적 규범이기도 한 한국사회에서 비자발적 요인에 따른 비혼 증가 현상을 가져오는 경향이 있다"며 "결혼을 원하지만 할 수 없는 집단 대상 결혼지원정책 확대의 정책적 근거"라고 말했다.
저출산 예산이 과다하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다.
2014년 현재 공공사회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수준이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벨기에, 핀란드 등은 25%이며 프랑스는 31.5%에 달한다.
30대 임신·출산·돌봄기 발생하는 경력단절 후 40대 재취업해 'M자형 곡선'을 그리는 여성의 경제참여 수준도 여성의 출산기피를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프랑스는 여성 고용률이 60%를 넘어가면서 합계출산율이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영국은 65%, 스웨덴은 60% 전후 떨어졌던 출산율이 올라가는 현상을 보였다. 반면 한국은 2001년 이후 1.3명 이하 수준 출산율을 유지하는 가운데 여성 고용률은 50%대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 격차지수(GGI)와 합계출산율간 상관관계에도 주목했다. 인구대체 출산율 2.1에 가까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이 순위 20위권 안에 있다. 13위인데도 합계출산율이 1.5명인 독일의 경우에도 2000년대 들어 순위가 상승하면서 1990년대 1.3명에서 상승하는 추세이며 2016년엔 1.6명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초저출산 국가로 꼽히는 한국과 일본은 이 순위에서 100위권 밖에 머물러 있다.
비전팀은 "안정된 취업활동과 주거 상황, 돌봄부담 및 교육비용을 분담해주는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를 통한 객관적 삶의 조건 향상과 성차별 해소에 따른 사회적 상황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행복) 수준이 높을 때 저출산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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