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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년이 온다' 제사장 삼은 연극적 장례...'휴먼 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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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1-17 12: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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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남산예술센터 '휴먼푸가'. 2019.11.06 (사진 = 이승희 제공)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휴먼 푸가'는 퍼즐과 같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2014·창비)가 원작.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배요섭 연출이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이 작품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무대 어법에 맞게 고민한 결과다. 

1장에서 2인칭 '너'로 지칭되는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에 둔 소설은 일곱 장별로 시점, 화자를 달리한다. 이런 태도는 희생자들을 감히 위로하거나 함부로 판단하는 우에서 벗어난다. 조각 같은 장면들을 결국 퍼즐처럼 결합해 거대한 아픔을 형상화한다.
 
배 연출은 소설 텍스트는 그대로 가져온다. 대신 여러 상징으로 해석되는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 극을 퍼즐화했다. 유리병, 카세트테이프, 의자, 밀가루 등 사물뿐 아니다. 극의 서사를 담당하는 배우로서가 아닌 퍼포머로 무대에 오른 이들의 신체와 행위, 그리고 음악마저 오브제처럼 사용된다.

이 오브제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단편적으로 해석되기보다 관객의 경험과 사유, 그리고 극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다. 
 
보통 관객이 생각하는 전통적인 연극에서 벗어난 '휴먼 푸가'에서 이 오브제들은 독특한 불길함과 악몽 같은 긴장감, 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을 선사한다. 특히 밀가루가 공중에 흩뿌려질 때의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마치 유골처럼 느껴지는데, 수많은 은유와 상징을 압축한 사진 작품같은 감동의 전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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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푸가'는 연극으로만 한정하기에는 아깝다. 죽은 자와 살아남았지만 아픔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일종의 제의 같다. 공병준, 김도완, 김재훈, 박선희, 배소현, 양종욱, 최수진, 황혜란 등 얼굴이 허옇게 된 퍼포머들은 제사장처럼 움직인다.

남산예술센터 객석을 텅 비웠다. 대신 무대 위에 또 다른 런웨이 무대를 만들고 그 양쪽에 객석을 깔았다. 관객이 물리적, 심정적으로 극에 더 근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작품은 지금 우리의 삶도 제의적으로 만든다. 소설은 다양한 층위로 나눠지는 것이 핵심이다.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 싸운 이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 받는 내면이 여러 개로 갈라진다.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생겨난 고통이 여러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변주되고 반복되고 있는 소설의 구조를 염두에 두고, 배 연출은 시간차를 두고 반복하는 음악적 형식인 푸가(fuga)를 제목과 극의 형식에 적용했다. 그래서 '휴먼 푸가'다. 

이처럼 아픔과 고통의 기억은 시간 차를 두고 반복된다. '휴먼푸가'는 여전히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한 역사적 아픔에 대한 연극적 장례다. 소설을 제사장 삼아 인간적 예의를 최대한 차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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