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윤소희의 음악과 여행-파라오의 숨결과 나일강을 따라

그런데 얼마 전 중동에 연주를 다녀온 친구들이 하는 말이, 그 곳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고는 연주를 할 수 없어 시커먼 수건을 덮어쓰고 연주하느라 죽을 뻔 했다나 뭐라나. 끝없는 사막에서 별을 따라 낙타를 몰고 수만리 길을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 천일야화의 신비로 가득 찬 이미지와 달리 요즘은 테러 분자들이 먼저 떠오른지라 궁금증으로 머릿속이 뒤범벅이 된 채 이집트행 비행기를 탔다.
아랍에미리트 비행기에 탑승해 히잡을 연상시키는 하얀 스카프를 드리운 스튜디어스를 본 순간 아라비아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잔뜩 설렜다. ‘두둥’하고 구름 위를 떠서 얼마나 날았을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삐걱대는 소리가 좀 있었던 때라 갖은 불안을 안고 내려 선 카이로공항. 수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그만데다 면세점도 슈퍼마켓 정도라 구경할 것도 없이 밖으로 나오니 바짝 마른 공기가 숨을 앗아갈 듯하다. 와우, 클레오파트라가 이렇게 더운 동네에 살았나?
바로 그때 스피커에서 ‘웽~’하는 사이렌이 울리자 여기저기서 돗자리를 꺼내 절을 하는 사람들로 모든 일상은 중지돼 버렸다. “파라오의 신들은 다 어디가고 알라신이 이 땅을 휩쓸고 있나?” 사람들의 복색과 생활이 온통 이슬람 방식이라 아라비아의 신비로움과는 멀었다. 카이로 시내에 들어서니 북적이는 차량·횡단보도가 아닌데도 수시로 길을 건너는 사람들·사방으로 늘어선 거리의 상점들이 아라비아에 대한 신비감을 일순간에 앗아가 버렸다.
내리쬐는 햇볕보다 더 따가운 이곳 정치 현실도 신비감을 없애는 데 한몫 했다. 그럴싸한 병원이며 아파트는 모두 군인전용이고 변두리 저만치에는 정치범을 가둔 감옥이 공포탄처럼 위용을 드러냈다.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감옥에,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두바이며 서방 외지로 떠나버린 터라 남은 사람들은 헐값으로 살 수 있는 빵과 대중교통 정도에 만족하는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을 여실히 보았기에 최근 이집트에서 들려오는 반정부 시위 소식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옛 이름은 ‘헬리오 폴리스’. ‘태양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고왕국 시대부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현재 카이로에는 중왕국, 제12왕조(기원전 2000~1780)의 파라오인 세소스트리스 3세가 세운 오벨리스크 이외에는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집트 후기에 이곳을 점령한 이슬람군과 로마군이 유적들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인 아랍인들은 헬리오폴리스 신전을 파괴해 자신들의 사원 건축용 석재로 활용했고, 우상숭배를 배격하는 기독교 로마군이 사원과 석상들을 파괴했다고 하니 이 지구상의 진리란 ‘힘 있는 자의 것’ 임이 틀림없다. 카이로 동부 지역의 헬리오폴리스도 1905년 벨기에의 부호가 세운 신시가지로 고대 도시 헬리오폴리스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이집트 후기로 접어들면서 파라오들의 권력투쟁으로 국력이 쇄약해지면서 외국인 파라오까지 등장했고 초기 기독교인 굽트교와 이슬람의 점령에 이르기까지 후기 역사는 그야말로 길고 긴 혼란기였다. 지금의 이집트는 이슬람의 엄한 율법으로 내국인들에게는 술을 팔지 않을 정도로 유흥문화가 없다보니 해가 지면 온 도시가 깜깜해졌다. 버스를 타고 가며 보니, 허름한 아파트에 위성 안테나가 없는 집이 없다. 알고 보니 술집도 없는 곳이라서 남자들이 일찌감치 집으로 와서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란다.
귀국하고 얼마 뒤 드라마를 수입해 가기 위해 한국에 온 이집트의 모 방송국 PD를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히잡을 쓰고 현대화된 전통복장을 갖춘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세련돼 보였다. 그녀에게 근년에 본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이야기로 옮겨가게 됐다. 몇 마디 얘기가 오가던 중 외국에 출장을 올 정도의 여성이라면 어쩌면 군부 지도자의 딸이나 가족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화제를 돌려 “당신네 나라는 정말 훌륭한 나라인데 앞으로 과거 피라미드를 지을 때만큼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눈치 빠른 그녀가 씩 웃었다. 그나저나 이곳 이집트 피라미드 속에는 어떤 음악이 있을지 다음호부터 얘기를 풀어 보자.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61호(1월23~30일자 설 합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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