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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현역 가수' 쟈니 리, 날 것의 회고록…'뜨거운 안녕'

등록 2026.04.20 14: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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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마지막까지 뜨겁게 노래하는 것"

22일 오후 5시 용산아트홀 소극장서 회고록 출판 기념 공연도

[서울=뉴시스] 쟈니리 회고록 '뜨거운 안녕' 표지. (사진 = 쟈니리 회고록 출판준비위원회 제공) 2026.04.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쟈니리 회고록 '뜨거운 안녕' 표지. (사진 = 쟈니리 회고록 출판준비위원회 제공) 2026.04.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어떤 이에게 음악은 시대를 장식하는 배경음악에 불과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가혹한 운명을 버텨내게 한 유일한 생존의 언어이자 종교다. 1966년 '뜨거운 안녕'으로 시대의 마음을 훔쳤던 '현역 최고령' 가수 쟈니 리(88·이영길)가 자신을 관통해 온 80여 년의 질곡을 활자로 빚어냈다.

20일 출간되는 회고록 '뜨거운 안녕'(도서출판 혜민기획)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웅크리고 있던 한 인간의 시린 고독과, 실패마저 끌어안은 묵직한 회고록이다.

쟈니리의 생은 시작부터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맞닿아 있었다. 1938년 중국 길림성 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정확한 생년월일조차 알지 못한다. 중국인 연극배우였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평양 기생학교 출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멀리서 바라본 무대 위 실루엣 단 한 장면뿐이었다.

생계를 위해 어머니가 떠나고, 열세 살 어린 나이에 마주한 6·25 전쟁. "너라도 남쪽으로 가라"는 외할머니의 비장한 당부를 품고 홀로 미군 수송선에 올라탄 소년의 종착지는 부산이었다. 피난민 수용소와 고아원을 전전하고, 폭력을 피해 도망친 마구간에서 썩은 메주국으로 연명하던 짐승 같은 시간들. 그러나 진흙탕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듯, 미군 장교 '딘'과의 만남은 소년의 삶을 음악이라는 구원의 무대로 이끌었다. 글을 깨우치기도 전, 악보의 음표 대신 귀로 익힌 노래는 그에게 선택이 아닌 '생존' 그 자체였다.

1958년 쇼 단체 '쇼보트'에서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무대를 누비던 그는, 당시 정형화된 한국 가요계에 균열을 내며 새로운 질서를 예고했다. 1966년 영화 '황야의 무법자' 테마에 우리말 가사를 붙인 '방랑의 휘파람', 그리고 김응천 감독의 영화 '청춘 대학'에 삽입곡을 부르며 대중 앞에 섰다.

그리고 마침내 터져 나온 '뜨거운 안녕(1966)'과 '내일은 해가 뜬다(사노라면·1966)'의 공전의 히트. 하루에만 극장 네 곳을 돌며 집 한 채 값의 출연료를 거머쥐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 "인기는 영원하지 않았고, 마음은 비어갔다"는 그의 술회처럼, 네 번의 결혼과 이별,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쓰레기통을 비우고 요리 보조를 하며 견뎌야 했던 방황의 시간은 대중의 환호성에 가려진 인간 쟈니리의 민낯이었다.

가수에게 목소리를 앗아가는 병은 곧 사형선고와 같다. 2000년대 초반, 그에게 찾아온 식도암 말기 판정과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차가운 선고. 그러나 벼랑 끝에서 그를 살려낸 것은 아내 윤삼숙 씨의 헌신과, 무대를 향한 지독한 갈망이었다. 기적처럼 병마를 이겨낸 그는 고백한다. "자유보다 책임을, 과거보다 오늘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죽음의 문턱을 돌아온 자의 목소리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깃든다. 2021년 83세의 나이에 MBC TV '복면가왕'에 '빈대떡 신사'로 올라 3연속 가왕의 자리를 차지한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신곡 '바보 사랑'(2021)을 잇달아 발표하며 후배들에게 남긴 것은,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뎌낸 굳건한 예술가의 초상이었다.

문태성 작가가 엮고 쟈니리가 직접 구술한 이 책은 스스로를 미화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삶의 과오와 상처들을 낱낱이 드러내며 "인생은 저물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뜨겁게 노래하는 것"이라는 묵직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진다. 남진, 임희숙, 태진아, 조항조 등 동료 가수들이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이야기를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아 헌사를 바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는 22일 오후 5시 서울 용산아트홀 소극장 가람홀에선 이번 쟈니리 회고록 출판을 기념하는 공연도 열린다. 그룹 사운드 '25시' 리더 겸 드러머 조갑출이 사회를 보고 가수 태진아, 임희숙, 이철식, 조문철, 우린 등이 나온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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