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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유적과 기억]당시 시간을 품은 또 다른 기록…교육 통해 기억으로

등록 2026.07.26 08:30:00

도내 유적 580여곳 확인…중요한 현장 사료

디지털 복원·문화유산 지정 통해 세대 전승

유해 발굴·신원 확인 지속…미래 준비 단계로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 2026.07.20. 0jeoni@newsis.com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 2026.07.20. [email protected]


제주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4·3은 지역의 아픈 역사를 넘어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평화와 인권의 역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당시 사건의 현장인 유적지는 훼손과 개발 등으로 보존과 활용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뉴시스는 잃어버린 마을과 주둔지, 집단묘역, 은신처 등 유적지의 의미와 보존 가치를 조명하고 디지털 복원,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평화·인권 교육,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아카이브 구축 등 미래 세대에 계승하는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지난 20일 찾은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위령광장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겨 우측에 조성된 제주4·3행방불명인묘역에 다다르자 행방불명인 표석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평범한 삶을 살았던 수많은 사람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곳에 표석으로만 남겨졌다.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행불인 묘역에는 모두 4138기의 표석이 세워져 있다. 위령광장 안쪽 위패봉안실에는 1만5126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2023년 이후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매해 3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표석과 위패 앞에 선 유족들은 말없이 가족의 이름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관광객들은 발걸음을 멈춘 채 한참 동안 비석을 바라보며 추모한다.

하지만 비석은 이름만을 기억할 뿐이다. 70여년 전 제주를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던 마을과 토벌을 피해 숨어야 했던 동굴, 군과 경찰이 주둔했던 곳의 상황 등은 제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4·3의 공간들이 품고 있다.

4·3을 품은 또 다른 기록…도내 유적 580여곳

4·3의 진실은 긴 시간 묻혀 있었고, 희생자와 유족들은 '빨갱이'라는 낙인 속에 입을 닫아야 하는 등 오랫동안 침묵의 역사였다.

하지만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와 공식 사과, 희생자 결정과 명예 회복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그 의미는 한층 확장됐다. 지역의 비극을 넘어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평화와 인권의 역사라는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얻은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은 기록물만큼 우리가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공간이 제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이다.

누군가의 삶이 이어졌던 마을과 밭, 가족이 함께 살던 집터, 피신했던 동굴, 토벌대가 주둔했던 오름과 진지, 이름 없이 묻힌 공동묘역까지 모두가 당시의 시간을 품고 있는 또 다른 기록이다.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 2026.07.20. 0jeoni@newsis.com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 2026.07.20. [email protected]

실제로 '4·3유적지 종합관리계획(2024)'에 따르면 제주시 335개소, 서귀포시 247개소 등 도내 580여곳의 4·3 유적이 확인됐다. 잃어버린 마을, 소개령과 초토화 작전의 흔적, 학살터, 은신처, 주둔지, 수형인 관련 시설, 추모 공간 등 유형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안내판조차 없는 곳도 있고, 사유지에 포함돼 접근이 쉽지 않은 곳도 있다. 개발과 자연 훼손으로 원형이 점차 사라지는 유적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공간이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현장 사료'라는 점을 강조한다. 문헌은 사건을 설명하지만, 공간은 당시 사람들의 삶과 선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김창후 제주4·3연구소장은 "4·3 유적은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과 국가폭력의 흔적을 동시에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 자료"라며 "현장 사료로써 미래 세대에 역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복원·문화유산 지정…평화·인권 교육으로

최근에는 4·3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그 기억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제주4·3평화공원을 찾는 학생들의 현장체험학습이 늘어나고, 4·3길을 걸으며 역사를 배우는 탐방 프로그램도 확대되고 있다. 사라진 마을을 3차원(3D)과 가상현실(VR) 기술로 복원하려는 시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해외에서도 역사적 비극의 현장은 교육과 성찰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독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캄보디아 킬링필드 등은 아픈 역사를 지우지 않고 남겨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최근 도와 제주4·3평화재단을 중심으로 유적을 평화·인권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현장을 직접 찾아 역사를 배우고, 국내외 방문객이 제주4·3을 통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탐방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일부 유적에선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해 당시 모습을 복원하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진 공간을 새로운 기술로 되살려 기억을 이어가려는 것이다.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 2026.07.20. 0jeoni@newsis.com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 2026.07.20. [email protected]

도가 추진하고 있는 다랑쉬굴 등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추진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은신처는 단순한 동굴이 아니라 국가폭력 속에서 생존을 위해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처절했던 삶을 보여주는 역사·교육 현장이라는 점에서 문화유산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김재현 제주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장은 "4·3의 전국화와 세계화, 세대 전승이 중요한 과제인데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게 평화·인권 교육"이라며 "청소년과 젊은 층을 대상으로 교육을 꾸준히 이어 나가 역사를 공유해 나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해 발굴·신원 확인·아카이브기록관 건립 추진도

4·3은 70여년 전의 사건이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도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이 계속되고 있으며 유족들의 DNA 채혈 역시 이어지고 있다.

희생자의 이름을 되찾는 일은 단순히 개인 한 사람을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다. 국가폭력으로 끊어진 공동체의 시간을 다시 잇는 과정이며 4·3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과제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4·3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연구·교육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아카이브 기록관 건립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기록과 공간, 사람을 하나로 연결하는 새로운 기억의 플랫폼을 만들자는 취지다. 4·3이 과거를 기록하는 단계에서 이제는 미래를 준비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강희경 제주도 4·3지원과장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세계가 기억해야 할 가치 있는 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알릴 수 있도록 4·3 유족, 관련 단체, 전문가 등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4·3아카이브기록관 기본계획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을 철저히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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