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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이픈, 죄악의 끝서 길어 올린 해방의 낙원…美 '빌보드 200' 1위 유력

등록 2026.08.30 06:51:34

엔하이픈, 미니 8집 '더 신 : 블리스(THE SIN : BLISS)' 리뷰

6인 체제로 첫 앨범…서사 단절 아닌 밀도 심화

[서울=뉴시스] 엔하이픈. (사진 = 빌리프랩(하이브) 제공) 2026.08.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엔하이픈. (사진 = 빌리프랩(하이브) 제공) 2026.08.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타락(墮落)의 역설은 언제나 추락의 끝에서만 비로소 완전한 비상을 꿈꿀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금기를 범한 자에게 주어지는 형벌이 추방과 고립이라면, 그 고립 속에서 오직 서로만을 응시하는 두 존재에게 세상의 징벌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그룹 '엔하이픈(ENHYPEN)'의 미니 8집 '더 신 : 블리스(THE SIN : BLISS)'는 죄의식의 가장 깊은 밑바닥을 딛고 역설적으로 찬란한 해방을 선언하는, 한 편의 처절하고도 황홀한 낭만주의 서사시다.

그간 엔하이픈은 존재의 당위성을 끝없이 자문하던 '햄릿형 뱀파이어'였다. '주어진 것인가, 쟁취한 것인가'라는 기로에서 피의 운명에 짓눌린 채 사느냐 죽느냐를 번민하던 소년들은, 마침내 회의(懷疑)의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이제 이들은 가문의 원한과 세상의 섭리를 등지고 기꺼이 독약을 삼켰던 로미오처럼, 파국 속으로 제 발로 뛰어드는 능동적인 낭만주의의 주체로 변모했다. 도피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공포가 아닌 해방감이며, 닥쳐올 파멸마저 너와 함께라면 축복(Bliss)이라는 결단이다.

이러한 서사적 도약에 결정적인 당위성을 부여하는 음악적 엔진은 바로 브라질리언 펑크(Brazilian Phonk/Funk)다. 타이틀곡 '블러디 파라다이스(Bloody Paradise)'에서 엔하이픈은 그동안 지켜왔던 '정제되고 서늘한 다크함'의 외피를 과감히 찢어낸다. 킥 드럼에 의도적으로 실린 거친 파열음과 일렉트릭 기타의 일그러진 질감, 심장을 직격하는 원초적인 리듬은 도망자의 가쁜 숨결을 그대로 무대 위에 쏟아붓는다. 추격대의 칼날이 턱밑까지 다가온 핏빛(Bloody) 위기 속에서 오히려 서로를 품에 안고 낙원(Paradise)을 완성하는 이 역설적인 카타르시스는, 날것의 거친 에너지를 지닌 브라질리언 펑크의 야성성을 통해서 온전히 설득력을 얻는다.

줄리아 루이스(JULiA LEWiS)의 감각적인 프로듀싱과 다이나믹 듀오 개코의 유려한 노랫말은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뱀파이어의 사랑을 지극히 관능적이고 구체적인 온도로 끌어올린다. 브라질 싱어송라이터 루이자 손자(Luísa Sonza)와의 협업 버전이나 거친 스텝과 골반의 텐션을 강조한 퍼포먼스 역시 이 원초적인 생명력에 숨을 불어넣는 장치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그룹 엔하이픈(왼쪽부터 니키, 제이크, 성훈, 정원, 선우, 제이)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서울에서 열린 여덟 번째 미니앨범 '더 신 : 블리스'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8.20. jini@newsis.com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그룹 엔하이픈(왼쪽부터 니키, 제이크, 성훈, 정원, 선우, 제이)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서울에서 열린 여덟 번째 미니앨범 '더 신 : 블리스'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8.20. [email protected]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트랙 배치는 하나의 정교한 심리극에 가깝다. 세상의 불안을 등진 채 맹목적인 도피를 시작하는 '투 풀스(Two Fools)'의 질주하는 록 사운드부터, 도피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괴로워하는 '스턱(Stuck)'의 얼터너티브 힙합, 서운함과 애틋함이 교차하는 '배드 포 유(Bad For You)'의 서정적인 팝 발라드로 이어지는 흐름은 감정의 파동을 촘촘히 포착한다. 이어 타이틀곡의 폭발을 지나 세상을 향해 결연히 반격을 선언하는 테크노 기반의 '체크메이트(Checkmate)', 그리고 지나온 모든 상처를 우리만의 눈부신 순간으로 명명하는 '하이라이트(Highlight)'에 이르면, 이들의 사랑은 비로소 구원의 서사로 완성된다.

주목할 점은 이 서사의 완결성이 팀의 현실적 변화와 맞물려 더 단단해졌다는 사실이다. 6인 체제 재편이라는 불가피한 성장통과 물리적 결핍을 엔하이픈은 서사의 단절이 아닌 밀도의 심화로 치환했다. 파트와 동선의 재조정 과정에서 생긴 틈은 멤버들 사이의 한층 끈끈한 결속과 무대 위 절박한 진심으로 채워졌다.

여기에 뱀파이어라는 가상의 IP('다크문')를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SDCC 2026)의 담론으로 확장하고, 세계보건기구(WHO) 및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현실의 헌혈 캠페인으로 승화시킨 행보는 콘셉트가 현실의 윤리적 실천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전형이다. 가상의 피를 노래하던 소년들이 현실 세계의 생명을 잇는 연대의 매개자가 된 것이다.
[서울=뉴시스] 엔하이픈. (사진 = 빌리프랩 제공) 2026.08.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엔하이픈. (사진 = 빌리프랩 제공) 2026.08.2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상실을 동력 삼아 결핍의 계곡을 건너온 이들의 낭만주의는 전 세계 리스너들의 감정적 공명으로 번지고 있다. 발매 첫 주 209만 장을 돌파하며 다섯 번째 더블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데 이어, 중남미 스타디움 매진 열기를 딛고 9월5일 자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 등극이 유력시되고 있다. 예상대로 1위에 오르면, 이들의 첫 '빌보드 200' 첫 정상이다.

불안과 죄의식을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껴안아 기어이 축복으로 바꾸어 낸 자들. 상처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상처 위에서 가장 뜨거운 춤을 추는 엔하이픈의 이번 앨범은, K-팝 콘셉트 앨범이 도달할 수 있는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해방의 순간을 증명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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