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언니, 살아만 있길"…이산가족에 추석은 '더 슬픈 시간'

등록 2026.09.26 09:00:00수정 2026.09.26 09:10:26

79세 최달자씨 "헤어진 언니, 살아 있기만 바라"

이산가족 생존자 3만2948명…33% 90세 이상

전문가 "민간 교류부터 시작해 단초 만들어야"

[서울=뉴시스]김용중 수습 기자 =
[서울=뉴시스] 김용중 수습 기자 = 김숙경(84)씨가 어릴 때 찍은 가족사진. 김씨와 네 명의 언니. 부모님과 고모가 찍혀있다. (사진=김숙경씨 제공) 2026.09.21 kimyj1423@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용중 수습 기자 = 김숙경(84)씨가 어릴 때 찍은 가족사진. 김씨와 네 명의 언니. 부모님과 고모가 찍혀있다. (사진=김숙경씨 제공) 2026.09.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추석 때만 되면 언니 생각이 평소보다 많이 나요. 살아 있기를 바라죠."


추석을 앞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 이산가족 1세대 최달자(가명·79)씨는 75년 전 헤어진 작은 언니 이야기를 꺼내며 눈시울을 붉혔다.

1951년 1·4 후퇴 당시 평안남도 개천군을 떠나던 최씨 가족은 피란길에서 작은 언니를 잃었다. 가족들은 언니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끝내 찾지 못한 채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은 이산가족들에게 오히려 만나지 못한 가족의 빈자리를 더 크게 느끼게 하는 날이다.

남북 간 이산가족 교류가 사실상 끊긴 가운데 생존자 대부분이 80~90대에 접어들면서 이들에게 남은 시간도 빠르게 줄고 있다.

75년 지나도 선명한 고향과 가족

최씨가 북한을 떠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고향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최씨는 "양옥집 같은 데 살았는데 마루 앞 창문이 통유리로 돼 있어 햇빛이 탁 들어오던 기억이 난다"며 "아버지는 무역 일을 하셨고 일본 말을 일본인보다 잘하셨다"고 회상했다.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만난 이산가족 1세대 김숙경(84)씨 역시 다섯 살 때 떠난 고향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평안북도 강계가 고향인 김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 큰언니, 작은언니와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다. 결혼한 셋째 언니와 아버지는 북에 남았다.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판에 모래를 담아서 거기에 '하늘 천, 따 지'를 쓰면서 알려주셨다"며 "'검을 현, 누를 황'도 쓰곤 했다. 지금도 고향집을 그리라고 하면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이어가던 김씨는 목이 멘 듯 몇 차례 말을 멈췄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김용중 수습 기자 =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이산가족 1세대 김숙경(84)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9.21. kimyj1423@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용중 수습 기자 =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이산가족 1세대 김숙경(84)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9.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만나지 못하니 사진만"…명절마다 커지는 빈자리

오는 25일은 추석이다. 남한에 정착한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더라도 북에 남겨둔 가족과는 함께할 수 없는 이산가족들에게 추석은 그리움이 더욱 커지는 시간이다.

김씨는 "만나지 못하니 사진만 본다"며 "작은 언니가 쓴 노트도 언니 글씨가 남아 있으니 버릴 수 없어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2세대 황모(62)씨에게도 명절은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리는 시간이다.

황씨는 "아버지가 6·25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오셨는데 친척들을 북에 두고 온 것을 평생 그리워하셨다"며 "명절이면 북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판문각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남북 간 이산가족 교류는 장기간 멈춰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당국 간 교류는 2018년을 마지막으로 재개되지 않고 있다. 민간 차원의 교류도 사실상 끊겼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교류는 생사 확인 1건에 그쳤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12월 정면 돌파전 선포, 2023년 적대적 두 국가론 등 일련의 과정들이 한국과는 전혀 교류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생존자 3명 중 1명 90세 이상…'이제 시간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최씨는 "부모님과 오빠 세 명, 큰언니까지 모두 돌아가셨다"며 "(이제) 나와 동생 둘, 세 자매만 살아 있다"고 말했다.

김씨도 "작은 언니와 나 둘이 남아 있었는데 작은 언니가 5~6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8월 31일 기준 이산가족 신청자 13만4843명 가운데 생존자는 3만2948명에 불과하다. 생존자의 66.6%는 80세 이상이다. 90세 이상도 전체 생존자의 33.4%에 달한다.

이산가족 1세대 대부분이 고령에 접어들면서 상봉이나 생사 확인을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장만순 1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은 "행사에 오셨던 이산가족분이 돌아가셔서 다음 행사에는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일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오랜 기다림 속에 상봉에 대한 기대감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장 위원장은 "고령 이산가족들은 이제 생사 확인이나 서신 교환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며 "가장 바라는 것은 죽기 전에 고향 땅을 한 번 밟아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닫힌 남북 대화…"민간 교류가 대화의 단초 될 수도"

남북 간 대화가 장기간 중단된 가운데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당국 차원의 교류 재개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별개로 민간 차원의 인도적 교류부터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범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원장은 "민간 교류 추진 방향도 더 활성화되고 확대돼야 한다"며 "현 정부는 민간 교류 활성화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고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며칠 전 통일부에서는 민간 차원에서 대북 접촉 신고 방식도 신고하면 무조건 받는 것으로 바꿨다"며 "대북 접촉은 이제 완전히 허용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9조의2 제3항을 삭제하는 국회 개정안에 대해 수용하기로 했다.

해당 조항은 북한주민과의 접촉이 남북교류·협력이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 통일부 장관이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간 교류가 향후 남북 간 공식 대화를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 위원장은 "국제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한 교류까지 막는다면 국제적인 지탄을 받을 수 있다"며 "북한 역시 (민간 교류는)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것들이 선행되고 북한에서도 거부를 안 하면 결국 그것은 남북 교류를 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김용중 수습 기자 = 김숙경씨의 작은 언니가 김씨를 생각하면서 적은 글. 김씨를 위해 기도한 내용이다. (사진=김숙경씨 제공) 2026.09.21 kimyj1423@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용중 수습 기자 = 김숙경씨의 작은 언니가 김씨를 생각하면서 적은 글. 김씨를 위해 기도한 내용이다. (사진=김숙경씨 제공) 2026.09.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