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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이 불러낸 육영수 여사 피살, 역사적 사실은…

등록 2026.09.29 06:05:00수정 2026.09.29 06:34:39

대통령 암살 기도…재일교포 문세광 사형

풀리지 않은 의문 남아…자작극 의혹 제기

피격 계기 전환 노렸지만 민주화운동으로

[서울=뉴시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속 고(故) 육영수 여사 좌상 2026.09.28.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속 고(故) 육영수 여사 좌상 2026.09.28.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육영수 여사 암살 사건을 다룬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추석 연휴 140만명이 관람하는 등 흥행 가도를 달리는 가운데 '역사 왜곡'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화제의 중심에 섰다.

29일 역사학계에 따르면 1974년 8월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는 제29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참석했다. 박 전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던 중 객석에 있던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박 전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미제 38구경 권총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문세광이 박 전 대통령 암살을 위해 실탄을 여러 발 발사했고, 박 전 대통령이 연단 뒤로 피한 후 경호원들이 대응 사격했다. 이 과정에서 육 여사와 성동여자실업고 재학생 장봉화씨가 사망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이상호 상주농업전문대학 교수 글에 따르면 당시 정부 당국은 사건 배후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과 조선총련 산하 한국청년동맹이 있다고 봤다.

사건 발생 9일 뒤인 8월 24일 문세광은 반공법, 국가보안법, 내란목적살인, 일반살인, 살인미수, 출입국관리법, 총포화약단속법, 여권법, 문서위조 등 13가지 혐의로 서울지검에 구속 송치됐다.

서울형사지법 합의8부는 1974년 10월 19일 오전 내란목적살인,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등 문세광이 받는 6가지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서울고법 제2형사부는 1974년 11월 20일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그해 12월 17일 상고 기각까지 거친 후 사흘 뒤인 12월 20일 오전 7시30분 사건 발생 127일 후 문세광은 서울구치소에서 사형됐다.

 *재판매 및 DB 금지


남은 의혹에 엇갈리는 시선들

이 교수는 '8·15저격사건'으로 인해 한일 관계가 냉각됐다고 설명했다. 또 반공이데올로기가 강해졌고, 유신체제 공고화가 가능해진 반면, 진상규명은 철저히 되지 못했다고 짚었다.

육 여사가 맞은 총은 누가 쏜 것인지, 문세광의 총에서 몇 발이 발사됐는지, 또 다른 저격수가 있었는지, 입장 비표 없이 어떻게 들어간 것인지, 일본과 한국의 수사 결과는 왜 차이가 나는지, 권총은 어디서 입수했는지 등 관련 의혹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이유다.

영화 '암살자(들)'는 육 여사 사망에 관해 경호원 총에 맞았을 가능성과,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이 이를 기획했을지도 모른다고 암시한다.

암살 배후에 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에서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역사를 왜곡한다고 보는 지점이다.

실제 당시 일본 측은 사형 집행 5일 후 문세광이 '김대중 납치사건'에 분개해 박 전 대통령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단독으로 사건을 저질렀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북한 배후에 관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고 했으며, 정치적 수세에 몰린 박 전 대통령이 자작극을 펼쳤다는 의심도 담겼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경제상 조치로 대응하겠다고 맞섰고, 광복회원으로 구성된 시위대는 주한일본대사관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며 양국 간 대립이 거세졌다.

[전남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4일 오후 전남광주 북구 운암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제임스.T.홍 작가의 작품 '사과'를 감상하고 있다. 작품은 전 세계 정치인들의 사과영상을 모아 반성과 책임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를 주제로 오는 5일부터 11월15일까지 72일간 열린다. 2026.09.04. leeyj2578@newsis.com

[전남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4일 오후 전남광주 북구 운암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제임스.T.홍 작가의 작품 '사과'를 감상하고 있다. 작품은 전 세계 정치인들의 사과영상을 모아 반성과 책임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를 주제로 오는 5일부터 11월15일까지 72일간 열린다. 2026.09.04. [email protected]


저격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8·15저격사건'이 있기 1년 전인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당시 야당 지도자로 해외에서 반유신 활동을 펼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괴한들에 의해 납치됐다. 일본이 문세광의 피격 배후로 언급한 '김대중 납치사건'이다.

당시 일본 경찰청은 호텔에서 발견된 지문과 납치 현장에서 도주한 차량의 소유주를 근거로 한국 중앙정보부가 관련이 있다고 봤지만, 당시 한국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협조를 거부했다.

일본은 물론 김 전 대통령의 안전을 원하고 모든 테러리즘에 대해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미국과의 외교 문제로 번지며 유신체제가 흔들리게 됐다.

박정희 정권은 국력을 조직화하고 능률을 극대화한다는 명분 아래 1972년 유신헌법을 공포한다.

민주화운동사전은 1969년 닉스독트린 발표와 1971년 중국의 국제연합(UN) 가입 등 동북아 정세가 변화와 1971년 7대 대통령선거와 8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신민당의 선전에 따른 위기감을 유신체제 등장 배경으로 설명한다.

유신헌법 발효 이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자, 박 전 대통령은 1974년 잇따라 긴급조치 1~4호를 선포한다.

이 때는 1971년 의문의 교통사고 후 일본으로 망명한 김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선포에 맞서 투쟁을 벌이며 미국과 일본의 동조를 얻고 있던 상황이었다.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7년 10월 24일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 납치를 사전 지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최소한 묵시적 승인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지시 아래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김 전 대통령을 납치하고 중앙정보부가 진상을 은폐했다는 내용이다. '김대중 납치사건'이 '8·15저격사건'으로 이어졌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일련의 사건들은 유신체제 몰락에 기여하게 된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27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45년 전 5·18 당시 촬영된 미공개 영상 시사회가 열리고 있다. 5분 40초 길이 영상에는 계엄군의 대시민 집단 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21일 오전 발포 직전 상황이 담겼다. 영상 속 광주시민들이 차륜형 장갑차를 몰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2025.05.27. leeyj2578@newsis.com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27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45년 전 5·18 당시 촬영된 미공개 영상 시사회가 열리고 있다. 5분 40초 길이 영상에는 계엄군의 대시민 집단 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21일 오전 발포 직전 상황이 담겼다. 영상 속 광주시민들이 차륜형 장갑차를 몰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2025.05.27. [email protected]


총성 이후 유신정권의 몰락까지

'8·15저격사건' 이후 박 전 대통령은 '국민총화가 굳건히 다져졌다'며 긴급조치 1·4호 해제를 내용으로 하는 긴급조치 5호를 선포한다.

민주화운동사전은 육영수 피격사태를 계기로 국민총화 분위기를 주도하려던 의도와 달리 다시 사회 곳곳에서 유신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서술한다. 이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05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주한미국대사관 생산 비밀문서 51개 문서철 약 1200건을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공개 문서에는 1974년 긴급조치 1·2호 발령, 사회 각계의 민주화 요구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 김 전 대통령 재판, 민청학련 사건 등과 함께 박 전 대통령 저격 시도 및 육 여사 서거 이후 한국 정부의 대응 등이 포함됐다.

자료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시선에서 당시 박 전 대통령 저격이 단순한 테러 사건을 넘어 한일 관계, 유신체제의 정치적 안정, 대중감정과 외교관계에 미친 파장을 종합적으로 다뤘다.

주한미국대사관이 1974년 8월 20일 본국 국무부에 타전한 외교전문(Telegram)에는 "우리는 박 전 대통령의 첫 반응이 저격 미수를 자신의 정책에 대한 정당화이자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증거로 해석하는 것이리라고 본다"고 적혀있다.

아울러 "우리는 박 전 대통령이 온건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오히려 그는 확고하고 강력한 조치가 국가의 안보와 자신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그 어느 때보다 확신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핸드 전 의전장과 함께 미국이 제공한 미 대통령전용기를 타고 방미하는 중 육영수 여사가 당시 신기술이던 위성전화를 통해 서울에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용기 내에서 통화하는 모습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2015.10.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핸드 전 의전장과 함께 미국이 제공한 미 대통령전용기를 타고 방미하는 중 육영수 여사가 당시 신기술이던 위성전화를 통해 서울에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용기 내에서 통화하는 모습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2015.10.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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