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로 수놓은 45년…"자수할 때 살아있는 기분이죠"[당신 옆 장애인]
등록 2026.10.03 12:08:01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이정희 자수장 인터뷰
2003년 장애인미술대전 '대상' 타고 이름 본격 알려
"예술, 그 자체로 봐주길…경제적 지원 확대해야"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03/NISI20261003_0002254963_web.jpg?rnd=20261003025707)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아침에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매일 바늘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몸이 불편하고 아파와도 묵묵히 바늘을 쥔 세월이 올해로 45년째다. 2022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무형문화재) 궁수 자수장으로 지정된 이정희(62) 자수장은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놓은 궁중자수만큼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전북 정읍에서 '전통자수 예다움'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장애인으로서 전국 최초의 자수장이다.
지난 2일 전화로 만난 이 자수장은 "무형문화재가 된 후 어깨가 더욱 무겁다"며 "더 좋은 작품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후대에 계승해야 하는 막중함이 크다"고 말했다.
17살에 친척 언니의 권유로 자수를 처음 접하게 된 그는 바늘과 색색의 실로 수를 놓는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이 길에 접어들었다. 세 살 무렵 찾아온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해진 딸 걱정에 어머니의 반대가 컸지만, 결국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의 작품. 금싸상학 흉배.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03/NISI20261003_0002254967_web.jpg?rnd=20261003031249)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의 작품. 금싸상학 흉배.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 몇 차례 일터를 옮기며 똑같은 도안을 반복하는 작업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자수에 발을 들인 지 10여년, 26살 무렵 고(故) 한상수 국가무형문화재의 전수관을 가게 되면서 '궁중 자수'를 처음 마주했다.
그는 "그곳에서 궁에서 쓰는 자수품들을 보는 순간 '아, 이거구나. 나도 이런 수를 놓아야겠다'고 결심했다"며 "텃세도 심했지만, 꿋꿋하게 버텼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수관 재건립으로 인해 2년여 만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고, 그때부터 홀로 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다른 사람이 그의 작품으로 공모전 수상을 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본격적으로 공모전에 뛰어들었다.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의 작품. 장애인미술대전 대상을 안긴 자수화관.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03/NISI20261003_0002254968_web.jpg?rnd=20261003031416)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의 작품. 장애인미술대전 대상을 안긴 자수화관.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건 2003년 장애인미술대전 '대상' 수상이다. 우연히 신문에서 공모전을 보게 됐는데, 마침 그날이 마감 당일이었다. 서둘러 접수했는데, 덜컥 대상을 받았다. 수상 소식에 처음엔 믿기지 않아 재차 확인했다. 그때 출품한 작품이 바로 '시집가는 날'이라는 제목의 전통자수 화관이다.
"그전까지는 장애인 대회가 있는 줄 몰랐어요. 비장애인 대회에만 꾸준히 출품했었죠. '시집가는 날'은 마침 완성 후 출품지를 정하지 못한 작품이었어요. 예쁘게 몸단장하고 화사한 옷을 입는 행복한 기분을 상상하며 만든 화관이었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장애예술계와 인연을 맺고 활동하며 제 이름을 알리게 됐어요."
30여년간 300회 이상 수상하고 국내외 전시를 해왔지만, 작품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다. 바늘땀이 고르고 입체감 있는 색채감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그는 이달부터 평생의 숙원이었던 '정조대왕 8일간의 행차도' 8폭 병풍 제작에 돌입한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기념이자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기 위해 8일간 떠난 행차를 담은 작품이다. 완성까지 꼬박 3년을 예상하는 대작이다.
열흘 남짓 남은 개인전으로도 분주하다. 새벽까지 작업을 이어가며 더 많은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이다. 오는 12일부터 18일까지 경남 창원 금샘펜션 갤러리에서 '바느질의 작은 숨'을 주제로 자수전을 연다. 당장 3일엔 고택에서 열리는 체험행사에 참석하는 등 지역의 여러 행사에 초청돼 자수를 알리는 역할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03/NISI20261003_0002254965_web.jpg?rnd=20261003030100)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신체적 제약을 안고 하루 10시간 넘게 자수에 몰두하다 보니 척추 측만증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어깨 통증은 물론 복대에 의지해 극심한 골반 통증을 견디고 있다. 과거 출산 후엔 골반이 아파 6개월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대로 못 일어나는가 싶어 절망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몸을 일으켜 자수를 다시 손에 잡았다.
"아무래도 비장애인보다 몇 배의 고통이 따르죠. 10년만 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더 많이 만들고 싶은데 나이 먹는 게 무서워요. 장애인은 하루하루가 달라지잖아요. 일 년 열두 달이 쏜살같아요."
장인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 역시 장애에 대한 숱한 사회적 편견을 겪어왔다. 현실의 벽도 높다. 그는 장애인이 예술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경제적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애예술인들이 많아요. 실력이 더 뛰어난 거죠. 이들이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도록 창작 지원금이 안정적으로 지원되면 좋겠어요. 저 역시 하고 싶은 작품이 많지만, 경제적 뒷받침이 어려워요. 자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작품이 완성되려면 병풍이나 장 같은 목공예품이 함께 필요해요.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엔 다른 지원금을 받으면 급여가 깎이는데, 예술 지원금은 그 성격이 다른 만큼 결부시키면 안 돼요. 예술 그 자체를 인정하고 독려해주는 지원 정책이 절실해요."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의 작품. 제작에만 약 3년이 걸린 '청룡백호도'. 청룡과 백호, 산과 물, 구름, 파도, 소나무가 한 화면 안에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03/NISI20261003_0002254966_web.jpg?rnd=20261003031118)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의 작품. 제작에만 약 3년이 걸린 '청룡백호도'. 청룡과 백호, 산과 물, 구름, 파도, 소나무가 한 화면 안에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전통 자수의 명맥이 끊길 위기도 큰 고민거리다. 코로나19 이후 실과 비단 등 재료비는 폭등했고 판매처도 줄어들었다. 고된 수작업을 견디며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 세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18살인 아들이 이 자수장의 곁을 지키며 자수를 배우고 있다. 내년 초엔 정읍에 세워진 무형유산 전수관에 입주하는데, 이를 계기로 전승자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장애가 예술의 장벽이 되진 못한다고 했다. 예술가를 꿈꾸는 장애인들에게 "도전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대신 끈기 있게 해야 발전할 수 있어요. 의지만 있다면 이 세상에 못 할 일은 없죠."
장애예술인을 '장애'라는 꼬리표 대신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만 바라봐 달라고도 당부했다. "장애예술인이라고 하면 실력이 없다는 시선으로 보기도 해요. 하지만 다르지 않아요. 예술, 그 자체로 봐주세요. 조금 느릴 뿐, 저희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치열하게 작업하는 예술인이죠."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이 오는 12일부터 18일까지 창원 금샘펜션 갤러리에서 자수전을 연다.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03/NISI20261003_0002254969_web.jpg?rnd=20261003031813)
[세종=뉴시스]이정희 전북 무형유산 궁수 자수장이 오는 12일부터 18일까지 창원 금샘펜션 갤러리에서 자수전을 연다. (사진=이정희 자수장 제공) 2026.10.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기사는 한국장애인개발원과 공동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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