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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따스한 아버지"…최불암 별세에 문화계·대중 애도

등록 2026.10.30 03:51:52수정 2026.10.30 05:28:53

[서울=뉴시스] 고(故) 최불암. (사진=최불암 측 제공) 2026.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고(故) 최불암. (사진=최불암 측 제공) 2026.10.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반세기 넘도록 한국인의 신산한 비애를 품어 안았던 '영원한 아버지'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87)이 세상을 떠나자, 문화예술계와 대중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평소 고인의 아내인 배우 김민자를 '이모'라 부르며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팝페라 테너 임형주(용산문화재단 이사장)는 30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임형주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최불암 이모부. 믿겨지지가 않는다. 그저 눈물만 흐른다"며 "몇 달 전 병문안에서의 인사가 영원한 작별 인사가 될 줄 몰랐다"고 적었다.

이어 "언제나 제 노래를 아껴주시고 늘 좋은 말씀으로 권면해주셔서 감사했다"며 "수많은 국민 여러분께 따스한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이제 주님 곁에서 편히 쉬시고, 하늘나라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달라"고 애도했다.

온라인에서도 고인을 기리는 물결이 밤새 일었다. 누리꾼들은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를 보며 자랐는데, 우리네 아버지를 잃은 것 같다", "곧 '한국인의 밥상'처럼 다시 나타나실 줄 알았는데 세월이 원망스럽다", "다정다감하고 묵직했던 한국적 아버지의 모습을 잊지 않겠다"며 황망한 마음을 나눴다.

1939년생(호적상 1940년생)인 고인은 요절한 부친을 닮지 말라며 큰아버지가 지어준 '부처 바위'(최불암)라는 이름처럼 묵묵히 시대를 지탱했다. 1950년대 명동에서 문인들의 사랑방 '은성'을 운영하며 가난한 예술가들의 자존심을 외상 장부의 별칭으로 보듬었던 어머니의 배려는 고인이 품은 온기의 원천이었다.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햄릿'으로 출발해 1967년 중앙방송(현 KBS) 특채 탤런트로 발탁된 그는, 스물일곱 나이에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를 연기하며 일찌감치 노역(老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MBC TV '수사반장'(1971~1989)의 박영한 반장으로 소외된 이들을 연민으로 안았고, '전원일기'(1980~2002)의 양촌리 김 회장을 통해 특유의 웃음 '파하~'와 함께 한국적 가장의 원형을 빚어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유머집 '최불암 시리즈'로 권위를 벗고 대중의 해학 속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줬다.

'영자의 전성시대'·'최후의 증인' 등 100여 편의 영화와 제14대 국회의원을 거쳤고, 14년간 '한국인의 밥상'으로 서민의 삶을 위무했다. 1981년 '전원일기' 속 금동이 입양 연기 후 "위선자가 된 것 같다"며 40여 년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으로 헌신했다. 2014년 이후에는 "현장에서 불편한 존재가 되기 싫다"며 은퇴 대신 '물러남'의 품격을 지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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