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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성, 한 꺼풀 벗겨낸 개성공단 사람들···연극 '러브스토리'

등록 2018.10.07 15:5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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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성 연출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개성공단은 한 장소 안에 두 체제가 섞여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감정과 정서, 미움과 정이 오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나 책과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하지만, 정서가 다가오지는 않았거든요."

'두산연강예술상' 공연 부문 수상자인 연극 연출가 이경성(35·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 대표)가 개성공단을 배경으로 남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러브스토리'를 선보인다. 두산아트센터와 크리에이티브 바키가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 11월 6~24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오른다.

이 연출은 "개성공단 안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서를 생동감과 입체감 있게 그려보고 싶었어요"라면서 "연극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 경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남북이 긴장 관계에 있던 2016년 2월 아무런 예고 없이 정부에 의해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함께 지내던 남과 북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이별하게 된다.

현재 남북 관계가 급격하게 평화 무드로 접어들었지만, 이 연출과 배우 나경민·성수연·우범진이 이 작품을 구상하고 두산아트센터가 기획할 때만 해도 취재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러브 스토리'는 지난해 11월 이 연출이 두산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워킹 홀리데이'를 작업하면서 떠올린 작품이다. '워킹 홀리데이'에는 지난해 5~9월 이 연출과 배우, 스태프들이 3차례에 걸쳐 비무장지대(DMZ) 일대 300㎞를 도보로 횡단하면서 겪은 경험과 단상들을 녹여냈다.

어느 순간 무감각한 존재가 돼 버린 땅을 인간의 본질적인 신체 활동인 걷기를 통해 읽어낸 동시에 분단의 풍경을 다양한 감각으로 경험하고 표현했다. 배우들이 걸으면서 여과 없이 툭툭 내뱉는 말들은 심적으로 움찔거리게 했다. "서울 근교의 살기에 아주 좋은 동네라고만 생각한 파주를 가보고 느낀 것은, '아, 이거 생각보다 북한이랑 되게 가깝구나.'"(신선우) 같은 대사 아닌 대사들 말이다.

이 연출은 "DMZ 일대를 걷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개성공단으로부터 남쪽으로 넘어오는 길을 쳐다봤어요"라면서 "불과 여기서 7㎞ 떨어진 장소이고, 많은 교류가 있던 곳인데 차단돼 있다는 것이 아쉬웠어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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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워킹 홀리데이'

이 연출과 배우들은 2004년 개성공단 운영 시작부터 전면 폐쇄까지 일련의 과정을 북한 전문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남북출입사무소 직원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해 톺아봤다.

특히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김요안 두산아트센터 수석 PD 등의 도움으로 개성공단 설립 초창기 통일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공무원,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아쉬운 점은 있었다. 이 연출은 "북측 근로자를 만날 수가 없었다는 점, 남측 근로자 중 여성분들을 만나기 힘들었던 점"을 꼽았다.

그런데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측과 북측의 젠더 감수성이 달라 ‘음담패설’을 놓고 벌어진 이야기, 실제 사랑에 빠진 남북한 남녀 이야기 등이다.

"실제 남북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공단 전체가 뒤흔들리는 일이죠. 꽤 골치가 아픈 일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힘들다고 하셨어요. 주로 남측 남성과 북측 여성의 만남이었는데, 좋게 끝난 경우는 없다고 했어요. 실제 이 문제 때문에 남측 근로자가 개성 시내에 끌려가기도 했죠. 개성 고려 유물이 관련돼 있었다고 했어요. 개성 공단 초기에는 남북이 같이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하고 했는데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급격히 줄었다고 합니다."

배우들은 한정된 정보로 각자 인물들을 창조해나가고 있다. 이 연출과 바키는 삶의 터전인 서울에 대한 이야기인 ‘서울연습-모델, 하우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비포 애프터' 등을 통해 동시대 사회적 이슈를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도입해 탐구해왔다.

이번에도 실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논픽션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한정된 정보로 인해 배우들이 워크숍 등을 통해 각자 상상하며 쓴 소설 등을 통해 상황과 인물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소설이 사실 기반은 아니나 더 생동감 있는 풍경처럼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현실에 바탕을 둔 픽션을 정서와 감정의 구체적인 교류 장치로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현재 인물을 창조해나가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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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나경민, 성수연, 우범진

대학로의 핫한 연출가인 이 연출은 '제3대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등 연극을 통한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부터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교수로 임용, 강단에도 오르고 있다.

그런 그는 점차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되는 젊은 남북 연극인 교류에 대해 "북한이 아직 타자라 연극으로 담는 데 조심스럽고 막막한 지점이 분명 있어요"라면서 "통상 영화 등에서 북한 캐릭터가 그려지는 것이 아직 정형화돼 있는데 편견들을 걷어내고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고 봤다. "단순히 재현이 아닌, 일정 부분 거리를 두면서도 생동감 있는 인물을 만들어야 하죠"라는 얘기다.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는 그렇지만 남북의 각자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저희는 조금 더 돈을 벌기 위해서 움직인다면, 북측 사람들은 민족 번영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에요. 동력이 다른 거예요. 근데 북측 사람들의 속은 어떨까 궁금했어요. '민족 번영을 위해 일하러 왔다'지만 마냥 '민족적 자부심으로 행복할까?' 등 생각한 것이죠. 북측 근로자의 손재주가 좋다고 하는데 그런 재주를 익히려면 북측 근로자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등의 고민이죠."

이 연출은 남북 연극인 앞으로 교류하는 것과 관련 "성급하기보다 서로 공연들을 보면서 천천히 알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라고 봤다. "해외 극단과 교류할 때도 3, 4년 시간을 두고 서로 언어를 알아가면서 작품을 만들어 가거든요. 성급하면 오히려 오해가 생길 수도 있어요. 워크숍 등을 하면서 서로 연기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죠. 북한에서는 체호프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같이 체호프를 공부하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죠."

이 연출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분단사 아픔을 짊어진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체재와 개인의 상관관계를 계속 고민하다 보니 비전향 장기수분들이 떠올랐어요. 얼마 안 있으면 이분들이 모두 돌아가신다고 하더라고요. 기록의 차원에서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남북 관계를 떠나 개인의 삶이 자연스럽게 보일 거 같아요. 그 삶에서 거대한 이야기 맥락도 보이고요. 인터뷰 등을 찾아보니 드라마틱하게 구성했는데 그런 걸 걷어내고 비전향 장기수분들의 삶을 담백하게 그리고 싶어요."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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