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지켜라"…엘리트 법관들 사욕이 사법농단 불렀다
최고위급 법관의 지시 따라 하위 법관 수행해
최대 특혜자로 양승태 등 지목…檢 수사 전개
일각에서는 "사법부 특성 이해 못한 것" 반론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8.06.01. [email protected]
사법부 위상 강화는 결국 조직 내 최고위급 법관들 이익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볼 때 업무를 빙자한 일련의 사법농단 행위들은 직권남용을 넘어 권력형 부패로 볼 수도 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18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임종헌(59·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 하면서 재판 거래 등 범죄 행위를 차례로 기재했다.
검찰은 30개가 넘는 임 전 차장의 범죄혐의를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사법행정 비판 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 보호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 등 4개의 범주로 나눴다. 또 임 전 차장의 공범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을 지목했다.
핵심은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부분이다. 해당 범주는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편의를 기대하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견제하는 등의 방안이 재판 개입 및 법률 검토 등을 통해 이뤄졌다.
상고법원 및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시각에 대한 탄압도 중요 혐의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판사 소모임 와해 시도, 긴급조치 국가배상 인용 등 당시 행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린 법관 등에 대한 징계 검토 및 사찰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아울러 변호사단체 등 법원 외부의 지적에 대한 압박 방안을 검토한 혐의도 적용됐다.
'부산 스폰서 판사' 사건과 '정운호 리스트' 등에 관련된 판사들의 비위를 축소하거나 은폐하고,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장 정보를 유출하려 한 혐의도 있다. 이를 통해 법원이 부당·위법한 방법으로 사법부 조직의 위신을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공보관실 운영비를 불법으로 편성·집행했다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고 등 손실) 혐의의 경우에도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달하는 중범죄다.
검찰은 이 같은 다양한 범주의 범행이 하나의 '업무'로써 이뤄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처장과 차장 등 고위 법관들의 지시가 있었기에 하위 법관들은 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10월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을 밀어내고 있다. 2018.10.16. [email protected]
검찰은 사법행정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위급 법관들의 이익 도모를 위해 하위 법관들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하위 법관들로선 인사상 불이익, 부장판사 승진 누락 등 유·무형의 불이익에 대한 부담감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은 법원의 위상 강화 등과 같은 범죄 범주의 최대 특혜자는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최고위급 법관이라고 보고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 이들이 조직적으로는 사법부 위상 강화, 개인적으로는 고위 법관 승진 및 조직 내 영향력을 도모하기 위해 이 같은 사법 농단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핵심은 당시 고위 법관들이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사법 권한을 악용했다는 것"이라며 "이런 행위에 대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항변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검찰의 이 같은 시각에 대한 반론도 있다. 검찰이 사법부 조직의 특이성과 법원행정처 업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면의 모습만을 부각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법 농단'이라 거론되는 범행은 법리상 범죄로서 인정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통상의 기업 비리 사건과 같은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 행정처만의 업무 행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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