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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교도소 모함' 입증한 교수…"엎질러진 내 명예는?"

등록 2020.09.09 01:01:00수정 2020.09.09 08: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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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정호 교수, 'n번방 자료 요구했다'는 모함 받아

"진짜 교도소 수감되는 것과 똑같은 고통 겪어"

디지털교도소, 지난 6월 채 교수 신상정보 게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진 것만 해도 다행"

환자가 '하늘이 무너져' 문자…"제일 가슴 아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생명 잃게 하면 안된다"

[서울=뉴시스]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0.09.08. (사진=채 교수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0.09.08. (사진=채 교수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민기 천민아 기자 = "제가 정신건강 전문가인데도 너무 힘들었고,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진짜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과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성범죄자 등 흉악범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디지털교도소'의 잘못으로 아무런 죄 없이 개인정보가 공개됐던 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8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서 디지털교도소는 지난 6월26일 채 교수가 성착취 텔레그램 채팅방인 'n번방'의 자료를 요구했다며 그의 사진, 이름,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사이트에 게시했다.

본인의 신상이 엉뚱하게 공개되면서 채 교수에게는 하루아침에 '성 관련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채 교수는 디지털교도소 측에 관련 내용이 사실무근임을 밝혔으나, 디지털교도소 측은 "인증받은 내용"이라며 신상정보를 내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채 교수는 "디지털교도소 측에 연락을 했는데, 제가 문제를 제기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시비조의 답변밖에 없었다"며 "자기가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정보를 내릴 수 없다고 하는데, '일부러 이러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였다"고 말했다.

디지털교도소 측이 자신의 신상정보를 내리지 않자, 채 교수는 이 사이트의 운영자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채 교수는 자신의 휴대폰을 스스로 경찰에 제출해 포렌식을 받았다.

채 교수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하면서 계정 8개와 메시지 9만9962건, 브라우저 기록 5만3979건, 멀티미디어 8720건을 살펴본 대구경찰청은 최근 "디지털교도소에 정보가 공개됐던 텔레그램 채팅을 한 인물은 채 교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와 함께 경찰은 채 교수의 맞춤법이나 말줄임 등 문자 작성 습관, 디지털교도소에 올라온 채팅을 비교한 결과 서로 다른 인물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뉴시스]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 2020.09.05. (사진=디지털 교도소 사이트 갈무리)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 2020.09.05. (사진=디지털 교도소 사이트 갈무리) [email protected]


채 교수는 "명예 회복은 바라지도 않는다. 디지털교도소가 공개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친한 사람들과는 당시 상황과 제 입장을 말할 수 있지만, 진짜 문제는 디지털교도소가 인터넷 공간을 통해 허위사실을 무차별적으로 전파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같은 경우도 SNS 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생산 됐고, 어디에 있는 누구한테까지 전달됐는지는 저도 모르는 것 아니냐"며 "실제로 저를 잘 알고 친한 사람들은 제 말을 믿어주겠지만,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만큼 완전한 회복은 힘들다"고 덧붙였다.

디지털교도소가 자신에게 성 관련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채 교수는 직장에서도 피해를 입어야 했다. 신상정보가 디지털교도소에 올라간 이후 수많은 전화를 받았지만,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자신이 치료했던 한 환자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다.

채 교수는 "저한테 치료를 받고 회복한 환자가 '디지털교도소 내용을 보고 놀라서 하늘이 무너진다. 교수님만 믿고 회복돼서 살고 있는데, 잘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문자를 보냈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설득했지만 환자가 '너무 마음이 상하고 힘들다'고 해서 저도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채 교수는 "우울증 환자 같은 경우는 특히 한 번 (마음이) 무너지면 회복이 힘든데, 이 분처럼 실제로 저한테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조차 하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로 안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며 "그런 분들한테는 제가 어떻게 설명을 못하니까 더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채 교수는 최근 디지털교도소에 개인정보가 공개된 뒤 억울함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려대 재학생 A(21)씨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채 교수는 "저도 직접 겪어보니 너무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젊은 사람에게는 더 쉽지 않았을 것 같다"며 "(디지털교도소가) 좋은 일을 한다고 신상정보를 공개하는데, 이로 인해 한 생명까지 잃게 되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도 운영자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면 안 된다"며 "본인이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법치국가에는 엄연한 사법체계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신상정보를 공개하면 복수를 위해 조폭을 불러서 때리게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며 "형을 확실하게 살고 유죄 판결이 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등 방법을 찾아야지, 이런 식으로 무고한 피해자들을 계속 나와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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