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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소설가 정유정 "불행·결핍도 인정해야 '완전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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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6-19 06:00:00  |  수정 2021-06-28 09:20:45
'욕망 3부작' 첫 단추…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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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소설가 정유정 (사진 = 은행나무 출판사) 2021.6.1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현주 기자 =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에서 불행한 요소를 다 제거해 완전한 행복을 만들려고 하죠.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 불행, 결핍, 불운은 삶의 요소 중 하나예요. 그걸 인정해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죠."

한국 스릴러 소설의 한 획을 그은 정유정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으로 돌아왔다. 기존 베스트셀러 '종의 기원', '7년의 밤' 역주행에 이어 신작 역시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리며 '역시 정유정'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난 정 작가는 "날씨가 더운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완전한 행복'은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는 당연해 보이는 명제에서 출발하면서도 '나'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과 부딪치는 순간 발생하는 잡음에 주목한다. 행복한 순간을 지속시키기 위해 방해가 되는 것들을 가차 없이 제거해나가는 방식을 보며 행복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품게 한다.

"전작 '진이, 지니'를 마치고 다음 소설을 생각할 때쯤 우리 사회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위험한 셀카 사진 등 과도하게 자기 자신을 내보이는 자기애와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읽혔어요. 우리가 너무 행복을 과시, 전시하는 시대에 사는 게 아닐까. 이게 정말 행복일까. 자기애와 행복강박증을 엮어서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자기애의 늪에 빠진 극단적 나르시시스트인 주인공은 '고유정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모티브를 얻은 건 맞다. '진이, 지니' 이후 터진 그 사건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하지만 극히 일부일 뿐이다. 선입견 없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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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유정 소설 '완전한 행복' (사진 = 은행나무 출판사) 2021.6.16. photo@newsis.com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사실상 드러나있지만 끝까지 몰입해 책을 읽게 하는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정 작가는 "난 원래 미스터리 작가는 아니다. 스릴러 작가"라며 "범인이 누군지 미리 알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주인공이 살아남느냐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범인을 미리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남느냐의 문제죠. 작가의 입장에서 보게 되는 추리 소설과는 달라요. 등장인물들에 몰입해서 작품을 보다 보니 감정 이입이 깊죠."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라는 주인공의 말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정 작가는 "유나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악성 나르시시스트"라며 "사이코패스는 정신질환이 아니지만 나르시시스트는 병이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성장 과정에서 생긴 후천적 정신병"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은 성장과정에서 건강한 좌절을 경험해야 해요. 어릴 때 장난감을 사달라 조를 때 부모가 슬기로운 방법으로 넘길 수 있다면 성공적인 육아죠. 유나는 그럴 부모가 없었어요. 거기에 언니가 자신의 것을 다 빼앗았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앙심이 커졌죠. 결국 주변 사람 모두를 도구로 생각하는 극단적인 나르시시스트로 자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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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소설가 정유정 (사진 = 은행나무 출판사) 2021.6.16. photo@newsis.com
주인공은 자신의 딸 지유와 남편 차은호에 대해 교묘한 '가스라이팅'을 실행, 그들을 정신적으로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든다.

"유나는 자아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방에게 매혹적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영원한 세계를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고, 필요없어지면 제거하죠. 남편, 딸 모두 도구에 불과해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하고. 그래도 지유는 정상적인 이모, 할머니 덕에 건강하고 강인하게 자랐죠."

지유 이야기를 쓰면서는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는 "지유가 이모를 구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며 "어린 아이인데 너무 큰일을 당하지 않나. 지유의 심리를 표현해야 하는데 아이의 말로 하면 자칫 유치해질 수도 있고, 많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사이코패스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화제가 됐던 '종의 기원'과 달리 이번엔 유나가 아닌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제일 불안하기도 했던 부분"이라며 "종의 기원이 주인공의 속을 다 뒤집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이번엔 주인공이 하는 짓에 의해 타인의 삶이 파괴되고 황폐화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유, 차은호, 재인 세 사람을 집중조명시키고 유나를 신비로운 커텐 뒤에 숨겨놨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이 무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야 했죠. 책을 처음 내놓으면서는 주인공이 존재감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소설을 쓸 때 인물에 몰입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그는 "착한 소설이면 후유증이 좀 덜한데 이런 나쁜 소설은 힘들다"며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며 몸을 혹사시켰다. 7박8일 동안 하루에 25~30㎞를 걸었는데 발도 부르트고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 개운하게 벗어났다"고 웃었다.

 서울에 돌아오니 5000부 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이, 지니' 때는 4~5일 동안 3000부를 사인해서 할만했는데, 이번엔 2박3일 동안 5000부를 해야 하더라구요. 호텔방에 갇혀서 잠도 한숨 못자고 했어요. 1500부가 남았을 땐 엄지가 움직이지 않더라구요. 강행군이었어요. 덕분에 후유증에서는 완전히 빠져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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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소설가 정유정 (사진 = 은행나무 출판사) 2021.6.16. photo@newsis.com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6년 동안 11번 떨어지면서 정말 패배주의에 젖어있었다"며 "12번째에 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고 회고했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전업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아직도 꿈같다. 지금도 누가 '작가님' 부르면 '내가 작가인가' 실감이 안난다"며 얼떨떨하다고 웃었다.  

가족, 특히 남편이 큰 힘이 됐다. "남편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럽다"면서도 "남편이 고시생 뒷바라지 하듯 많이 도와줬다.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되면서 자기 혼자 힘들었을텐데, 오히려 떨어져서 낙담해 있는 나를 많이 격려해줬다"고 남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가 집에서 글을 쓰는데 주변에 누가 있으면 잘 못써요. 남편이 아침을 차려주고 나가서 사무실에 있다 밤 9시가 되면 돌아오죠. 심부름도 해주고, 청소도 하고, 장도 보고 오고. 인세 관리도 남편이 해요. 저는 돈 개념이 없어서 이게 더 좋아요."

심리학 공부를 하게 된 건 1994년 사이코패스 박항선 사건이 계기가 됐다.

정 작가는 "저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와 딸이 나오는 장면만 봐도 눈물이 나는데 너무 이해가 안 갔다. 간호사를 하며 중환자실에서 정말 많은 환자를 봤는데도 그랬다"며 "인간에 대해 알기 위해 정신분석학, 심리학, 범죄심리학 등을 차근차근 공부했다. 하다보니 작가가 되면 이런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장르물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예전에는 장르물이 완전 비주류였어요. 그래서 성장소설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등단한 뒤 제가 쓰고 싶었던 류인 '7년의 밤'을 썼죠. 솔직히 모험이었는데, 운이 잘 맞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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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소설가 정유정 (사진 = 은행나무 출판사) 2021.6.16. photo@newsis.com
최근 예능 출연으로 화제가 됐다. 그는 "사실 예능에 나가서 말하는 게 무섭다. 이번에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과거 거절했던 적도 있고, 이번에 책도 나오고 해서 나갔는데 논란이 됐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논란이 되는 게 익숙하진 않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코로나19 시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는 "덕분에 작품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원래 외국에 나가는 일정이 빽빽하게 잡혀 있었어요. 하지만 코로나로 다 취소되고, 덕분에 저는 작품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었죠. 보통 신작 출간에 3년 정도 걸리는데 이번엔 2년 만에 나왔네요."

'욕망 3부작'의 첫 단추인 '완전한 행복'에 이어 두 번째 소설도 준비 중이다. 그는 "다음 소설은 소유에 대한 욕망을 다룰 것 같다"며 "무언가를 갖는다는 게 꼭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불멸, 건강, 아름다움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어떤 세계가 도래하는지, 그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사람은 가장 잘하는 걸 해야해요. 제가 잘하는 건 이야기죠. 외국에서는 '이야기꾼' 하면 '스토리텔러'라고 하던데 저는 저잣거리에 서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담꾼이 되고 싶네요. 독자들이 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면, 그러면서도 거기에 담긴 의미를 알아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lovelypsych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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