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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 가이아나영토 요구 국민투표서 "승리".. 투표율은 "시들"

등록 2023.12.05 07:03:58수정 2023.12.05 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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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인 홍보와 "애국심"호소에도 투표율은 절반

가이아나 유전지대를 자국 영토로 반환요구 계획

[카라카스=AP/뉴시스] 3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한 투표소에서 군인들이 가이아나와의 영토 분쟁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웃 가이아나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광대한 석유·광물 보존지역인 에세퀴보 지역의 영유권 주장에 대해 국민의 찬성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시행했다. 이날 투표는 일반인의 참가가 저조해 투표소에는 주로 군인들이 투표하는 모습이 보였다. 2023.12.05.

[카라카스=AP/뉴시스] 3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한 투표소에서 군인들이  가이아나와의 영토 분쟁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웃 가이아나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광대한 석유·광물 보존지역인 에세퀴보 지역의 영유권 주장에 대해 국민의 찬성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시행했다. 이날 투표는 일반인의 참가가 저조해 투표소에는 주로 군인들이 투표하는 모습이 보였다. 2023.12.05.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AP/뉴시스] 차미례 기자 =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3일 실시한 이웃 가이아나의 분쟁지역 반환을 요구할 것인지를 묻는 국민투표의 결과 가까스로 "승리"를 얻어냈지만 투표율은 과반을 가까스로 넘겼다. 이처럼 시들한 열기는 마두로 정부의 영향력 쇠퇴와 국민의 요구에 귀를 닫은 정부라는 점을 입증했다.

베네수엘라 국가선거위원회는 4일 국민투표 결과를 발표,  총 1050만명이 투표에 참가해 유권자 전체인 2060만명의 절반이 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숫자와는 달리 실제 투표소들은 평소 선거에서 보였던 장사진 대기줄은 없었고 베네수엘라 선거사상 초유의 텅빈 투표소도 많았다.
 
마두로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번 국민 투표에 참가해 가이아나 영토의 3분의 2에 해당되는 에세퀴보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야 한다고 몇 달전부터 대대적인 홍보와 갖가지 행사를 벌이며 투표를 독려했다.

단결된 국민투표의 힘으로 애국심을 보이라면서 에스퀴보에 관한 각종 공연과 문화행사, 심지어 거리 벽화와 레게 뮤직 페스티벌까지 동원했고,  투표 당일에는 참가율이 저조하자 마감시간을 두시간이나 연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3일 전국의 투표소에는 평소 정치인 선거에 흔히 보였던 투표를 대기하는 유권자들의 긴 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도 카라카스에서도 동원된 듯한 군 장병들의 긴 행렬만이 보였다.  일부 투표소들은 아예 사람이 없이 썰렁했다.

베네수엘라는 문제의 지역이 약 100년 전에 국경선을 그릴 때 상대국에게 도둑맞은 영토라고 주장해왔다.

가이아나는 이번 국민 투표가 베네수엘라가 자국 영토인 에세퀴보 지역을 합병하려는 시도의 첫 단계라고 간주하고 모든 국민이 불안해 하고 있다. 
 
마두로 정부는 아직도 국민투표 결과를 가지고 가이아나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에세퀴보 지역의 면적은 그리스보다도 크고, 각종 광물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이 곳은 미국의 다국적 거대 석유기업 엑손 모빌이 2015년 경제성이 높은 석유매장지를 발견한 곳이어서 그 때 부터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부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가이아나는 이번 국민투표가 에세퀴보를 합병하기 위한 마두로 정부의 구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유엔최고재판소인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추가 제소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지난 1일 베네수엘라 정부에게 이 문제로 두 나라의 상반된 주장을 충분히 검토해 판결을 내릴 때까지 투표결과를 가지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이를 보류하라고 명령했다.  ICJ의 최종 판결까지는 보통 여러 해가 걸린다.

카라카스 시내 두 곳의 투표소 근처에 살고 있는 주민 호세 루이스 코바(45)는 투표 당일 이 두개의 투표소가 텅 비어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정부)이 말하는 건 전부 거짓말이다.  내가 여러 군데 투표소를 지나가며 보니까 모두가 거의 비어 있었다.  에세퀴보 병합에 찬성했다는 그 많은 유권자 수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AP기자에게 말했다.

베네수엘라 유권자들은 투표시 설문에서 에세퀴보에 새로운 주를 설립해서 현지 주민들에게 시민권을 주겠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유엔이 분쟁지역에 대한 불리한 판결을 내리더라도 이를 거부할 근거로 삼기 위해서다. 

마두로대통령은 4일 국민투표 결과를 두고 장장 50분 동안의 대국민 연설을 했다. 
[카라카스=AP/뉴시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한 남성이 에세퀴보가 영토로 표시된 베네수엘라 지도 벽화 앞을 걷고 있다.  마두로 정부는 3일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과반수가 영유권주장에 찬성했다고 발표했지만 저조한 실제 투표율은 민심의 이반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23.12.05.

[카라카스=AP/뉴시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한 남성이 에세퀴보가 영토로 표시된 베네수엘라 지도 벽화 앞을 걷고 있다.   마두로 정부는 3일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과반수가 영유권주장에 찬성했다고 발표했지만 저조한 실제 투표율은 민심의 이반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23.12.05.


AP통신 취재진이 투표 당일 카라카스 시내를 돌아본 결과 약 30명의 유권자가 보이는 곳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대기줄이 아예 없었다.

심지어 마두로의 전임자이자 멘토인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선거구에서도 유권자의 대개 줄은 없었다.  이전의 여러 선거에서 이 곳은 언제나 수백명이 투표소 밖에서 장사진을 치고 대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국의 싱크탱크 아틀랜틱 위원회의 베네수엘라 담당 전문가 제프 램지 연구원은 이 처럼 냉담한 투표율은 마두로 정권에게 아주 좋지 않은 징조라고 해석했다.

 "이런 모양새는 정부가 투표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없고 역사적으로 패배를 앞두고 있을 때의 징조이다.  이는 내년의 대선에서 결정적인 파국이 닥칠 것을 예고한다.  이건 마두로 정부의 연정 내부에서도 정치적인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증거다"라고 그는 말했다.

차베스의 추종자들은  마두로의 인기가 최악으로 시들었는데도 지난 몇 해 동안 투표때마다 유권자 동원 능력을 과시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두로와 야당은 2024년에 대선을 치르기로 합의했지만 램지 연구원은 지금쯤 마두로가 "열성적인 여당 당원조차도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 판에 대통령선거를 자유선거로 실시하는 건 너무 큰 모험이다"라고 딴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마두로는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 정부의 모든 여력을 투입해서 에세퀴보를 주제로 한 음악, 국영 TV를 통한 역사강좌,  군중 집회와 강연, 소셜 미디어에 올린 갖가지 컨텐츠를 통해 국민에 대한 홍보전을 펼쳤다.

에세퀴보 합병 문제는 마두로에게 정치범 석방과 내년 대선의 공정한 실시를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 등 다른 정치적 이슈로부터 국민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효과도 있어 마두로 정부가 전력투구를 해온 사안이다.

베네수엘라는 에세퀴보를 언제나 자국 영토로 여겨왔으며, 이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국경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899년 가이아나가 아직 영국 식민지에 속해 있을 때 지금의 국경이 그려진 것이 분쟁의 원인이 되어왔다.

당시 국경을 정한 것은 영국, 러시아, 미국의 세 나라였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영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이 위원회에서 베네수엘라를 대신해 참석했다.

베네수엘라는 당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자기들을 속이고 문제의 땅을 빼앗은 거라며 1966년 분쟁 해결을 위해 원래의 국경선을 무효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미에서 유일한 영어사용국가인 가이아나는 원래의 국경이 법적 효력을 갖는다고 주장하면서 2018년 국제사법재판소에 영유권 문제를 제소했지만 판결은 몇 년이 걸릴지 아득한 상황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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