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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임신부석 앉기 힘들어요" 출퇴근길 험난 [저출산 공포②]

등록 2024.02.10 14:00:00수정 2024.02.19 14: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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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보호법 위반, 4년 사이 8배 '급증'

임신·출산 관련 휴가 제한 문제 심각

만삭 임산부인데…배려 없는 시민들

"유연근무 확산 필수…약자 배려해야"

[서울=뉴시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한 등 모성보호 위반으로 적발된 기업이 4년 새 8배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산율을 제고하고 일하는 부모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법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법과 현장의 간극이 해가 갈수록 더 벌어지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한 등 모성보호 위반으로 적발된 기업이 4년 새 8배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산율을 제고하고 일하는 부모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법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법과 현장의 간극이 해가 갈수록 더 벌어지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장한지 기자 = #1. 지난 1월 여성 A씨는 육아휴직 신청서를 상사에게 서류로 제출했다. 상사는 처음에 '서류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다시 대표에게 직접 제출하자 면담 일정이 잡혔다. 그 자리에서 대표는 "1년간 육아휴직을 하면 연차가 발생하니 육아휴직을 받아줄 수 없다. 권고사직 처리를 하겠다"고 했다.

#2. 로펌에서 2년 넘게 근무하고 임신으로 육아휴직을 한 여성 변호사 A씨가 복직을 앞두고 대표변호사로부터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A씨는 "여성 변호사가 출산하면 법무법인을 그만두는 것이 업계 관행"이라고 주장한 대표변호사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한 등 모성보호 위반으로 적발된 기업이 4년 새 8배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산율을 제고하고 일하는 부모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법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법과 현장의 간극이 해가 갈수록 더 벌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매년 출산율 세계 꼴찌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이 육아휴직 장려와 남녀고용평등법상 보장된 유연근무제 등을 이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4년새 모성보호법 위반 적발 건수 8배 급증

1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9~2023년)간 모성보호법(남녀고용평등법·근로기준법 등) 위반 적발 건수는 총 4825건이었다.

위반 내용을 항목별로 보면 ▲배우자 출산휴가(152건) ▲육아휴직 및 육아기 단축근무(120건) ▲야간 및 휴일근로 제한(4044건) ▲시간 외 근로 제한(51건) ▲임신·출산 관련 위반(458건) 등이 있다. 모성보호법은 임신, 출산, 육아 등을 감당하는 근로자가 사업장에서 무리한 노동을 안 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고용노동부로 제출받은 최근 5년(2019~2023년)간 모성보호 위반 적발 건수. [사진=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재판매 및 DB 금지

고용노동부로 제출받은 최근 5년(2019~2023년)간 모성보호 위반 적발 건수. [사진=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재판매 및 DB 금지


모성보호법 위반 건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 잠시 주춤했다가 지난해에는 4년새 무려 8배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19년 1248건 ▲2020년 227건 ▲2021년 602건 ▲2022년 892건 ▲2023년 1856건 등이다.

특히 '임신·출산 관련 위반' 건수가 '야간·휴일근로 제한' 다음으로 적발 사실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근로기준법 74조는 임산부가 출산휴가 및 단축근로 등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임신 중인 근로자가 무리를 할 경우 몸 안의 생명에 지장이 가는데도 근로기준법상 규정된 출산휴가 및 단축근로를 제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현실이다.

권오현 변호사는 "임신, 육아 중인 노동자는 아이에게 악영향이 있을까 노동청 진정이나 고소를 본능적으로 꺼린다"며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 정말 어려운 결단으로 신고하는 것인데 고용노동부의 관련 통계는 절망적 수준"이라고 말했다.

배려없는 '임산부 배려석'…"형편없는 시민의식에 놀라"

아기를 뱃속에 품은 예비 엄마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퇴근길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인 '핑크카펫' 자리가 마련돼 있지만 정작 임산부가 앉기는 쉽지 않아서다.

임신 9개월차 만삭의 전모씨(33)는 지난달 출근길 지하철 3호선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할머니가 임산부 배려석인 핑크카펫을 차지하고를 비켜주지 않는 것이다. 전씨를 본 할머니는 갑자기 눈을 감고 실눈을 뜨며 힐끗힐끗 쳐다봤다. 퇴근길도 마찬가지였다.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핑크카펫에 앉아 배려해주지 않고 온라인 쇼핑을 했다는 것이다.

전씨는 "임산부 배려석이 당연한 내 자리라고는 않았지만, 당당히 앉아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 서럽다"며 "임산부 배지를 들이밀어도 비켜주지 않는 사람도 많다. 이게 우리나라 시민의식이구나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와 일반인 각각 1000명씩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년 임산부 배려 인식 및 실천 수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의 86.8%가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해 본 적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42.2%는 '이용이 쉽지 않았다'고 답했다.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임산부의 날인 10일 서울 도시철도 7호선 지하철 안에 비어있는 임산부 배려석과 승객이 앉은 임산부 배려석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2016.10.10.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임산부의 날인 10일 서울 도시철도 7호선 지하철 안에 비어있는 임산부 배려석과 승객이 앉은 임산부 배려석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2016.10.10.  myjs@newsis.com



전문가들은 워킹맘·워킹대디가 아이도 낳으면서 기존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업이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수적인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임산부와 어린아이에 대한 기피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고도 했다.

여성변회 이사인 이현주 변호사(법무법인 시선)는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에 대한 지원이 없다면 지속가능성이 부족하다"며 "재택근무는 인력난을 해소하면서 업무공간 축소 등 부대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절약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워킹맘, 워킹대디에 대한 일의 원활한 진행에 대한 측면만 생각해서 괴롭힘이 생길 수 있다"며 "육아휴직은 권리라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산부나 아이 등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에는 미래와 희망이 없다"며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기준으로만 정당성을 생각하는 경향이 자라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anz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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