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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57년 문정희 "하루도 시인 아닌 적 없었다" [문화人터뷰]

등록 2026.05.02 14:00:00수정 2026.05.02 14: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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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장 퇴임 후 첫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

"온몸을 부딪쳐 쓴 시…생명이 더 또렷하게 보여"

"유일하게 지속해서 재밌는 것은 시를 쓰는 것"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문정희 시인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작가는 최근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를 출간했다. 2026.05.02.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문정희 시인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작가는 최근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를 출간했다. 2026.05.0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시인 문정희(79)는 여전히 거침없다. 문장마다 생동이 꿈틀거리고, 뜨겁고 강렬하면서도 애절하다.

제2대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 2024~2026년 약 3년간 공직을 마친 그는 마치고 본업인 시인으로 돌아와 최근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민음사)를 펴냈다.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사옥에서 만난 문정희는 "관장으로 지낸 3년 3개월 동안에도 나름 치열하게 썼다"며 "하루도 시인이 아닌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시와 분리된 시간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는 이번 시집을 "온몸으로 부딪쳐 쓴 시들"이라고 했다. 시집에는 총 65편이 실렸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올해로 시력(詩歷) 57년. 몸과 여성, 가부장제 등 사회적 현실을 직시해온 그는 지금도 자신의 언어를 확장하고 있다. 세월을 거치며 살아 있음에 대한 감각이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고 했다.

"열정이 젊음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죽음의 씨앗'을 품고 있어 생명이 더 또렷하게 보이고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시집의 제목에 등장하는 '늑대'는 그에게 야성(野性)을 상징한다. 삶을 돌아보며 가장 쉽게 잃어버렸던 감각이기도 하다.

문정희는 지식 과잉 정보 시대, 언어를 무차별적으로 소모하는 작금의 상황에 회의를 느낀다고 했다.

"시대의 언어로 사회를 쓰는 것이 시인입니다. 언어 없이는 삶을 살아갈 수 없어요. 사회가 들끓는데 그것을 언어화하지 않고 흘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실제 시집에는 언어의 소모와 사회의 혼란을 직시하는 작품들이 다수 담겼다.

'성병 걸린 날', '눈물은 어디에 두나', '우리 속의 우리' 등에서는 정치적 양극화와 감정의 소진, 폭력적 언어 환경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드디어 내가 성병(聲炳)에 걸렸나 보다 (중략) 진종일 떠벌이는 라디오, TV, 유튜브, SN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비 새는 지붕 아래/병든 가축이 살처분되고/바다에서도 흙에서도 죽음의 피 냄새가 나는데/유명하지도 않은 주제에/성병 걸렸다고 스스로 냉소하다가도/휴대전화가 울리자마자/공터건 장터건 뛰어나간다" ('성병 걸린 날' 중)

"나는 울었다/그런데 눈물은 어디에 두나/좌파도 우파도 아닌 내 한쪽 눈/어디로 갔을까/내 눈물은 어디에 두나" ('눈물은 어디에 두나' 중)

"신문도 TV도 유튜버들도/일제히 정의와 진실의 이름으로/폭력을 만드는 데 민첩하다 (중략) 분노와 알리바이를 내세우는 동안/봄은 오다 가고 가을도 오다 간다" ('우리 속의 우리' 중)

문정희는 "지금은 문명 대전환기"라며 "정보와 소비의 과잉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 지치고 소모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오히려 생명의 순간이 더 선명하게 빛난다는 점을 시로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문정희 시인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작가는 최근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를 출간했다. 2026.05.02.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문정희 시인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작가는 최근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를 출간했다. 2026.05.02. [email protected]


획일화된 세계에 대한 반발은 '알 몸 시'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이 시대의 두려움에 맞서는 방식"이라며 "알몸이라는 상태를 통해 존재의 본질과 감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알몸을 좋아해/옷 벗고 또 옷을 벗고/한 알의 알이 될 때까지/불완전의 껍질 두려움과 조바심을 벗고/알몸이 될 때까지/나는 기다린다. 고로 존재한다?/끝내는 기다린다! 는 생각도 벗고/알 몸으로 너를 아니 나를 기다리는 밤" ('알 몸 시' 중)

시집 서문에 쓴 '광활한 폐허에 이르렀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황폐가 아니라 여전히 의미가 들끓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도중 그의 눈가에 잠시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시를 쓰겠다고 했다.

"이 땅에서 우리말로 몇 권을 더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 전신(全身)의 언어를 끄집어냈습니다. 이번 시집은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노래하려 했습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문정희 시인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작가는 최근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를 출간했다. 2026.05.02.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문정희 시인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작가는 최근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를 출간했다. 2026.05.02. [email protected]


 끝으로 시를 쓴다는 행위의 의미를 묻자, 잠시 침묵한 뒤 답했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 쉽게 지루해하고 실증도 냈지만, 유일하게 한 번도 재미없다고 느낀 적 없는 것이 시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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