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물<174>하도야, 서혜림의 넘버원

◇제35화 대물과 속물<174회>
거리에 뿌려지는 전단지의 문구처럼 아랫도리의 상징물이 고개를 들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하도야 검사는 ‘그래서 난 단숨에 달려 왔는데…’라고 소리칠 뻔 했다. 그는 하복부에서 솟구쳐 오르는 기운을 억제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한 겁니까? 월급쟁이 검사에게 창당자금을 대달라는 이야기는 아닐 거 같고.”
서혜림이 손가락으로 킬러 머니를 살짝 찔렀다.
“국모회가 몸통을 감추기 위해 과감히 꼬리를 잘랐어요. 이 이구아나도 가능한 일이지요?”
“본능적인 반응이겠지요.”
“할 수 없이 승부를 걸었어요. 대안은 이제 만들어야 하고요.”
“대안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겁니까? 설마?”
하도야는 약간 멍한 얼굴이 됐다.
“왜요? 걱정 됩니까?”
하도야는 믿지 않았다. 서혜림의 정치적 계산을 전혀 모르고 있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래를 보고 행동하는 정치대물이다. 어느 수준 낮은 정치인처럼 가능하지도 않은 공약을 떠벌이지도 않고, 소신 없는 정치 철새도 아니며, 국민을 무시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하류의 정치꾼이 아니다. 그녀는 정치가이다.
“아니요…믿습니다.”
서혜림이 기쁘게 웃었다.
“그건 동생 하고 똑같군요. 날 믿어 준다는 거…!”
“하류가 그랬나요?”
“네…하검사처럼 말했어요.”
하도야는 기분 나쁘게 웃지 않으며 말했다.
“그럼 취소하죠. 난 나를 믿겠습니다. 서혜림씨의 정치 역량을 인정하고 있는 나…를!”
서혜림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오회장을 만나셨죠?”
“네.”
“내가 하검사님을 방문한 건 2가지 목적 이에요. 오재봉 회장과 대국당 사무총장이신 서태후!”
“그들이 왜?”
서혜림은 이구아나 킬러 머니를 자신의 손바닥위로 선뜻 옮기고 있었다.
“하검사는 나의 넘버원이잖아요. 오회장과 서태후를 택일하게 해 주세요!”
이 순간에 하도야는 정치대물의 오묘한 변신을 전신으로 느끼며 내심 진저리를 쳤다. 마치 거대한 파충류가 인간의 허물을 벗어 던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도야의 충격만큼 서혜림의 대응 속도 역시 민첩했다.
“서혜림표 정치를 구사하기에는 대한민국의 풍토가 너무 척박해요. 부패권력이 살인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있는 현실 앞에서 사랑하지만 오염된 이 나라를 하루라도 빨리 치료해야 해요. 정치인으로 품위를 지켜가며 세월을 기약하기엔 너무 시간이 모자라요.”
서혜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도야는 금방 후회가 됐다. 자신의 반응이 그녀를 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치대물이 아닌 속물이 돼 간다고 손가락질 하는 거 알아요. 내가 혐오하는 길을 내가 선택해서 가야 한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래야 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든 결정이었는지 단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면 좋겠어요. 바로 당신이요!”
하도야는 그녀를 격정에 못 이겨서 와락 껴안았다.
“미안해요…내 생각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어요.”
서혜림의 목소리가 떨려 나오고 있었다.
“두 번 다시 내 울음을 볼 수는 없을 거에요. 난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할 신분이니까!”
하도야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정치대물 서혜림의 넘버원으로 하리다! 오재봉의 자금과 서태후의 조직을 택일하라고 내게 요구 했지만…난 그것 둘 다를 당신에게 보내겠소!”
서혜림은 하도야의 품 안에서 눈물지으며 또 웃는다. 그 미소는 섬뜩한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류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서초동 변호사 타운의 빌딩 하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입구는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신소연변호사님을 찾아왔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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