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장민호, 연극계 살아있는 전설 지다

지난해 2월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개관한 극장 이름에 연극배우 백성희(87)와 함께 장 옹의 이름을 넣어 '백성희장민호극장'으로 지은 것이 그의 위상을 증명한다. 당시 고인은 '레이디 퍼스트'를 이유로 백 여사에게 앞자리를 양보했다.
1924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장옹은 1947년 조선배우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중앙방송국에 배우로 입사해 성우로 활동했다. 1950년 10월 국립극장 전속극단 신협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극계에 발을 들였다.
1966년 한국성우협회 이사장을 거쳐 1967년 국립중앙극장 국립극단 단장으로 취임했다. 5년 임기를 마친 뒤 1980~1990년 다시 단장으로 재임, 총 15년 이상 연극계의 기반을 다졌다. 1968년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1970년 한국연극협회 이사를 맡기도 했다.
성극 '모세'(1947)를 시작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5), 연기생활 50주년 기념공연 '파우스트'(1997), '우리읍내'(2006), 명동예술극장 개관 기념공연 '맹진사댁 경사'(2009) 등 수작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
지난해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기념 공연 '3월의 눈'에서 백 여사와 노부부를 연기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올 초 재공연된 이 연극에는 건강 악화로 불참했으나 극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 등 작품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2007년에는 임권택(76)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에도 출연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대한민국 예술상, 국민훈장 목련장, 동랑연극상, 호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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