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잡기노트]찡그린 왕비 사진, 명성황후 맞나

명성황후 사진, 정확히는 명성황후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은 여럿이다. 그 중 122년 전 찍힌 사진의 주인공이 명성황후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1893년 발간된 프랑스 ‘피가로 일루스트레’ 10월호를 확보한 데 따른 것이다. 기사를 쓴 기자가 명성황후라고 명기한 여성의 사진이 실린 잡지다.
기자는 거빌(A B de Guerville·1869~1913)이다. 미국 시카고 박람회(1893)를 홍보하러 1892년 조선에 왔다. 거빌은 ‘마법의 등불’, 즉 환등기로 1878년 프랑스 파리 박람회 현장과 미국의 도시풍경을 관리들에게 보여줬다. 신문물의 존재가 조정에 소문이 났고, 거빌은 급기야 고종(1852~1919)과 민비(1851~1895)를 알현하기에 이르렀다.
기자의 상황 묘사는 구체적이다.
“얼마 후 우리가 왕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영사기가 설치돼 있는 또 다른 작은 곳으로 안내받아 갔다. 왕비나 왕자는 이 이례적인 영사 상영에 참석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병풍 뒤에 있었다. 외국인 남자는 왕비를 볼 수 없었고 지체가 높은 여자가 아니면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왕비를 볼 수만 있다면’하는 희망을 품어봤지만, 그런 예외는 헛되다고 생각하고 워싱턴의 백악관, 시카고의 20층 건물, 나이아가라 폭포, 빠른 철도, 그리고 박람회의 멋진 건물 등의 사진을 한국인들에게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이 이뤄졌다.

이처럼 세세한 글을 쓴 지면 한 가운데 민비의 사진을 실었다. 기사에 삽입된 사진 속 여성은 상식상 민비일 수밖에 없다. 이 사진을 뺀 나머지 사진들 가운데 허위 설명을 단 것이 없다는 점도 신뢰도를 높인다.
그러나 이 월간지 원본을 입수한 차길진 후암미래연구소 회장은 확언을 유보했다. 다만 “이 사진의 여인을 왕비라고 표기한 것은 ‘피가로 일루스트레’가 처음”이라고 특기할 뿐이다. 거빌에 대해서는 “그는 주로 왕실, 황제, 대통령, 교황 같은 특별한 인물들을 인터뷰한 기자다. 명성황후를 직접 만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사실 만으로도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사진”이라고 짚었다.
1920년대 ‘사외이문(史外異聞)’도 언급했다. “고종이 명성황후가 시해되기 전 궁중에서 사진 촬영을 한 사실을 기억하고 그 사진을 얻기 위해 수만 원의 현상금을 걸었다고 했으니 명성황후의 사진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문화부국장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