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대중가요가 선사하는 위로·풍자의 힘

19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 촛불 집회 사전 문화제에서 록밴드 '들국화'의 전인권이 '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르자 순식간에 수만명이 이 노래를 따라 열창했다.
현 시국에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절묘하게 대변하는 노랫말은 이 자리에 모인 시민들을 서로 위로하는데 더할 나위 없었다. '국민 위로송'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다. 시민들은 촛불을 든 채 몸을 좌우로 흔들며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라고 목소리 높여 노래했다.
전인권이 2004년 발매한 솔로 앨범 4집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 수록곡이다.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로도 인기를 누렸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노래는 '행진'이었다. 1985년 발매된 희대의 명반 들국화 1집 수록곡이다.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는 청와대로 향하는, 말 그대로 '위풍당당 행진곡'이 됐다. 전인권이 애국가와 이 노래를 번갈아 가며 노래하자 거룩함도 흘렀다.
'최순실 게이트'가 대중가요의 또 다른 감성을 불러내고 있다. 아이돌 위주의 음원차트라는 큰 바퀴로 인해 굴러가는 듯 보였던 대중음악 시장에서, 이 거대한 총체적 난국 이후 새로운 형태로 노래가 불려지고 소비되는 경향이 발견되고 있다. '상실된 시대'에 위로·분노·풍자의 노래로 불리고 있다.
◇위로

'최순실 게이트' 이후 나라에 배신을 당해 상실감이 큰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등장하고 있다.
가수 이승환이 대표적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자신의 소속사 드림팩토리 사옥에 세 번째로 '박근혜 하야하라'라는 현수막을 내건 그는 지난 11일 상처를 받은 국민을 위로하고자 한다며 이효리·전인권이 함께 부른 '길가에 버려지다'를 무료로 공개했다.
18일에는 장필순, 김광진, 한동준, 이승열, 윤도현 등 무려 가수 100명의 목소리가 더해진 '길가에 버려지다 파트 2'를 선보였다.
드림팩토리는 "국민들을 위해 봉사해야할 일부 위정자들, 그의 주변인들에 의해 상처받고 분노한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 용기를 전하기 위해 같은 뜻을 가진 음악인들이 모여 함께 부른 곡"이라며 "우리 사회에 냉철한 판단과 진심어린 행동을 보여준 우리 모두를 위한 노래"라고 설명했다.
시대를 향한 위로와 공감의 노래를 불러온 가수 안치환도 '최순실 게이트'로 상실된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곡을 내놓았다. '권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무료로 공개했다.

◇분노와 풍자
분노와 저항은 역시 포크의 몫이다. 홍대 신의 1세대 인디 펑크 밴드 '크라잉넛'은 지난 12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에서 히트곡 '말달리자'로 분노하고 풍자했다.
"원래 '말(馬)달리자'는 우리 노래였는데…. '우리가 이러려고 크라잉넛을 했나', 자괴감을 느낍니다"라며 '비설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때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고 말한 내용을 풍자했다.
이어 "말은 독일로 가는 게 아니다. 바로 청와대"라며 이화여대 입학 특혜 등을 받은 최씨 딸 정유라씨를 꼬집은 뒤 수십만명과 함께 '말달리자'를 합창했다. 후렴구의 "닥쳐"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저항에 빼놓을 수 없는 대중음악 장르가 힙합이다. 래퍼 조PD와 작곡가 윤일상이 협업한 '시대유감 2016'은 "(상실의 시대) 사기꾼이 다해먹는 세상 / 도둑 놈이 숨지 않고 떵떵거린 세상"이라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직접적으로 가한다.

발라드 풍자 곡도 눈길을 끈다. 발라드 가수 모세는 앞서 '곰탕' '프라다 구두' 등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한 노랫말을 붙인 발라드 'SS'를 발표했다.
◇10~20대에서 저항곡으로 소비되는 아이돌 음악
아이돌 노래들은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자난 세대가 자연스럽게 저항의 음악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특히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며 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열창하고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7월 말 본부 점거농성 기간 동안 총장 사퇴를 외치며 민중가요 대신 불러 화제가 됐던 곡이기도 하다.
앞서 그룹 'f(x)'의 '레드 라이트'는 '세월호 참사'를 비판한 곡으로 알려지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촛불 집회 한켠에는 소녀시대, f(x) 노래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 노래를 틀어놓고 곡에 맞춰 춤 등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건전한 시위 문화를 선보이는 10대들이 상당히 눈에 띄었다.
가요계 관계자는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밥 딜런은 불의에 저항해 자유를 외쳤고, 대중음악으로 세상의 변화를 꾀한 뮤지션"이라며 "안타까운 시국에 대중음악이 큰 위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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