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상륙작전처럼'…강동구 십자성마을 '태양의 마을'로 변신

동일본 대지진-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맞물려 친환경사업 참여
2012년 플러그뽑기·LED사업 등 시작…전기요금 10% 절감
작년 에너지자립률 46%까지 상승…외국서 벤치마킹하기도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서울 강동구의 십자성마을은 태양광 발전 명소로 불린다. 태양광 발전으로 마을에서 쓰는 에너지의 절반 가까이를 충당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자립마을로 주목받는 십자성마을은 어떤 곳일까.
지난 21일 오후 십자성마을을 찾았다. 최근 수일동안 이어진 추위가 한풀 꺾인 탓일까. 중천에 뜬 태양이 그 어느때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지하철 5호선 굽은다리역 1번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꺾으면 십자성마을 진입구쪽에 강동구민회관이 눈에 들어온다. 강동구민회관 옥상에는 대형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태양광 발전으로 유명한 곳답게 초입부터 집광판이 이정표 노릇을 한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십자성마을 마을회관이 눈에 들어왔다. 회관 입구 벽면에 '불을 끄고 별을 켜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인상적이다.
십자성마을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동네다. 마을의 시작이 그렇다. 월남전에 파병됐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온 해병대원 101명이 1971년 1인당 20만원씩을 출연해 재단법인 파월전상자 자립회를 설립했고 1974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십자성마을이라는 이름을 내려 받았다.
십자성이라는 이름도 해병대 전우 2000여명이 부산에서 함께 배를 타고 조국을 떠나 베트남 전장으로 가던중 밤하늘에서 봤다는 남십자성에서 따온 것이다.
1974년 단독주택 101동과 회관 1동을 짓고 입주한 해병대원 101명은 이후 국가유공자용사촌 복지공장을 지어 거즈와 붕대 등 위생용품을 국공립병원에 공급하며 수십년을 지내왔다. 십자성마을은 변화와는 무관한 채 천천히 낡아갔다.
마을회관 사무실에서 노성남(72, 사진)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월남전에서 다리 한쪽을 잃었다. 고령에도 아직도 눈빛만은 형형했다. 해병대 강동구 전우회 회장을 지낸 그는 서울시 에너지 시민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뭔가 조합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마을회관 2층 계단 벽면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해병대 복을 입은 남성이 꽃과 나무, 풀, 곤충, 새 등 자연물로 둘러싸인 지구와 연결된 케이블을 왼손에 든 채 오른손으로 전방을 살펴보는 모습이다.
십자성마을의 극적인 변화는 대한해협 건너편 일본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해 원전 공포가 전세계에 확산됐다. 같은해 우리나라에서 전국 순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원전에 대한 공포와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는 시기였다.

때마침 서울시는 박원순시장 취임 이래 원전하나줄이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강동구청은 이 사업에 십자성마을 구성원들이 참여할 것으로 권유했다.
십자성마을 사람들은 2012년부터 플러그 뽑기, LED 전등 교체, 문틈 막기 등 작지만 의미있는 생활속 에너지절약을 실천했다. 이를통해 전기요금을 10%나 절감했다.
자신감을 얻은 마을 사람들은 과감하게 태양광 발전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주민들은 시간당 3㎾짜리 태양광 발전기를 자기집 옥상에 설치했다. 사업 초기 자부담이 400만~500만원 정도 됐지만 개의치 않았다.
노 할아버지는 "손주들이 미래의 기후변화로 인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서 손익을 따지지 말고 참여하자는데 뜻을 모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 결과 십자성마을은 서울시내 에너지자립마을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태양광 마을로 변모했다. 총 130가구 가운데 52개 가구가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상태다. 국가유공자 31가구뿐아니라 이사 온 일반가구 21곳도 태양광 집광판을 달았다.
이에따라 십자성마을의 에너지 자립률은 2013년 26%에서 점차 상승해 지난해 46%까지 올랐다. 지난해 마을 전체가 한국전력으로부터 끌어 쓴 전력은 15만16㎾h, 태양광 발전으로 자체 생산한 전력은 12만7750㎾h다.
이같은 성과 덕에 십자성마을의 명성은 외국으로까지 퍼졌다. 에너지 전문가인 독일베를린 자유대학 미란다 슈로이어 교수, 이클레이(지속가능발전지방정부네트워크) 세계도시 환경총회 현장워크숍 참가자 13개국 25명이 2015년 십자성마을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봤다.
그간의 성과를 소개한 노 할아버지는 기자를 마을회관 옥상으로 데려갔다. 옥상에 올라서자 주변 건물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 여러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마을회관 옥상에도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돼 있었다. 260W 집광판 12개를 붙인 약 3㎾짜리 발전기가 비스듬히 세워져있었다. 3㎾짜리를 설치하면 1개 가구가 쓰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마을회관 건너편 연립주택에는 베란다 바깥쪽으로 이른바 베란다형 소형 태양광 발전기가 붙어 있다. 260W짜리가 앙증맞게 붙어있는데 이 정도면 대형냉장고 1대를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다고 했다.
옥상 한편에는 직류교류 변환기(인버터)가 달려있다. 태양광 발전기에서 생산된 직류를 교류로 전환해 한국전력에 보내주기 위한 장치다. 태양광 발전을 위해서는 이 장치가 필수적이라고 할아버지는 설명했다.
태양광 발전기는 여름철 실내온도를 떨어뜨리는 의외의 효과도 발휘한다. 노 할아버지는 "늘어선 집광판이 햇빛가리개 역할을 해서 집안이 시원해진다"고 설명했다. 태양광 발전기가 옥상 차열도료(쿨루프)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마을회관 밖으로 나와 동네를 거닐며 태양광 발전기를 둘러봤다. 집집마다 설치된 집광판에 햇볕이 반사되면서 반짝였다. 온동네가 번쩍인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이종윤(71) 할아버지는 자신을 '십자성마을에서 처음으로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는 "우리집 같은 경우 전기요금이 많이 나왔다. 계량기를 잘못 설치하는 바람에 1990년대 말에 전기요금이 30만원까지 나온 적이 있었다"며 "이후 계량기를 바꿔 달았지만 여름에는 4만원, 겨울에는 7만원까지 전기요금이 나왔다. 그런데 3㎾짜리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이후로는 요금이 1만원 이하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 할아버지 집에는 냉장고 2대, 김치냉장고 3대, 전기버너 1대, 텔레비전 2대, 비데 2대, 전기담요 3개, 컴퓨터 1대 등 전기제품이 있는데도 태양광 발전을 한 뒤부터는 전기요금이 1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하락에 고무된 그는 앞으로 태양광 발전 덕에 남아도는 전기를 난방에 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가스보일러를 돌리느라 겨울에는 가스비가 최고 15만원까지 나오는데 이를 전기를 활용한 난방으로 대체해 난방비를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이 할아버지는 "마음 같아서는 3㎾짜리를 하나 더 설치하고 싶다"며 "햇볕 드는 공간이 있고 여유가 된다면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할 것을 적극 권유한다"고 말했다.
현장점검중 만난 안승현 강동구청 맑은환경과 팀장 역시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구청내 태양광 발전 담당자인 안 팀장은 "주민들이 가장 만족을 표할 때는 전기요금 고지서에 0원이 찍혀 나올 때"라며 "비용 대비 효과가 눈에 보이니 입소문이 나서 점점 참가 주민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현재 십자성마을 안 7~8가구가 전기요금을 전혀 내지 않고 있다.
안 팀장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처음에는 3㎾짜리 설치 시 400만~500만원이 들었지만 지금은 200만~300만원이면 달 수 있다. 260W짜리 베란다형은 30만원이면 설치 가능하다. 가격 하락 추세 덕에 강동구에서는 한해 100가구가 추가로 태양광 발전기를 달고 있다.

'태양광 발전기는 고장이 잘 난다' '태양광 발전기에서 전자파가 발생한다' 등 소문이 돌았지만 안 팀장은 이를 모두 유언비어로 규정했다. 안 팀장은 "주민들 모임에 가서 태양광을 소개할 때도 이런 말들이 나와서 안타까웠다"고 털어놨다.
안 팀장은 "사실 태양광 업체들 중에 정식 인증을 못 받은 업체들이 몇개 있었다. 이들 업체들이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도 지원을 받는 것처럼 속이고 설치했다"며 "그런 사례에서 쌓인 불신이 있어서 그동안 태양광 보급이 어려운 측면이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십자성마을이 과감하게 태양광 발전에 참여하면서 롤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민들에게 들어보면 태양광 발전이 화력 발전과 원자력 발전에 비해 좋은 것은 아는데 더 비싼 것 아니냐는 인식이 있었다. 괜히 달았다가 손해보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있었다"며 "하지만 실제 설치하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 일단 설치하면 수명이 20년이다. 경제적 측면을 생각하면 당연히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조량이 많아 태양광 발전량이 크게 늘어나도 해당 가구에게는 이득이 없다는 주장 역시 오해다.
사용량을 넘어서는 전력을 생산하면 한전이 초과생산분만큼 다음달 요금을 깎아주기 때문이다. 안 팀장은 "일조량이 많지만 사용량은 비교적 적은 봄과 가을에 전기를 많이 만들면 에어컨을 켜는 여름과 전열기를 쓰는 겨울에 나오는 전기요금을 상쇄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십자성마을이 구도심의 낡은 주택가에서 에너지자립마을로 변신하기까지 걸린 물리적 시간은 불과 5년. 이 마을의 변화는 신속하고, 성공적이었다. 마치 대한민국 해병대의 상륙작전처럼.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