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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리뷰]서울예술단과 '금란방'은 당연히 올드하리라는 선입견

등록 2018.12.25 0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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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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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공연 팬들에게 올해는 슬픈 해였다. 연초부터 성폭력 고발운동 '미투'로 인한 공연계 민낯이 실망감을 안겼다. 하지만 인생사, 아니 공연사 새옹지마. 덕분에 무대 위에서 여성을 다루는 시각도 조심스럽고 신중해졌다.

서울예술단이 30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치는 신작 창작가무극(뮤지컬) '금란방'은 올해 여성 관련 화두를 정리하는 결정판이다. 코믹하고 발랄하며 약간은 도발적인 이야기·분위기 속에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부감 없이 녹여냈다.

배경은 18세기 조선 시대, 주요 소재는 금주령과 전기수. 연애소설 듣는 재미에 빠진 왕으로부터 소설을 제대로 못 읽는다고 혼난 사대부 '김유신'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기수가 직업인 '이자상'으로부터 연기를 배워나간다. 자신과 성별이 다른 여자는 물론 다른 사람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던 김유신은 남에게 깊게 공감하는 법도 깨달아간다.
 
그의 말괄량이 딸 '매화'는 사랑을 모르는 '윤구연'과 우연한 소동으로 얽혀 각자 운명을 선택하게 된다. 이자상이 읽어주는 괴이한 소설 '요세인연' 속 이야기는 극중극 형식으로, '금란방' 속 다양한 사랑 형태를 반영한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등을 통해 대학로에서 블루칩 극작가로 발돋움한 극작가 박해림은 신분·연령·성별의 차이와 제도의 속박을 뛰어넘는 유쾌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소재는 술. 강력한 왕권 확립기로 엄격한 금주령이 시행된 제21대 영조 통치기로 추정되는 배경에서, 금란방에서 마시는 술은 단지 알코올이 아닌 금기에 대한 저항처럼 읽힌다. 조선 시대의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인 금란방에서 술을 마신 이들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자신의 본성 또는 속 안에 있는 것들을 시원하게 털어놓게 된다.

금란방은 조선시대 어지러움을 규제하던 관리직 이름. 금란(禁亂)은 법을 어겨 어지럽게 구는 것을 막아 금지함을 가리킨다. 박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이 단어의 의미를 비틀었다. 어지러운 세상을 멈추게 하는 것은 규제가 아닌, '나이스하면서도 판타지한 공간'인 금란방 안에서 술을 마시며 함께 즐기고 솔직해지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시끌벅적한 한바탕 소동으로 빚어지는데, 기존 제도와 기득권층의 허례의식과 허위의식을 자연스럽게 까발리고 비트는 수단이 된다.
[뉴시스 리뷰]서울예술단과 '금란방'은 당연히 올드하리라는 선입견

역시 전기수가 등장하는 뮤지컬로 배우와 관객이 함께 노닐면서 자연스럽게 풍자를 이끌어낸 뒤 희망까지 이야기한 '판'으로 호평을 들은 변정주 연출은 이전작의 비장함을 다소 덜어내고 발랄, 도발로 좀 더 무게추를 옮긴다.
 
가변형 극장인 블랙박스 시어터의 장점을 살려 자유소극장을 은밀한 아지트로 변신시킨 점도 탁월했다. 고급 공연장으로 통하는 예술의전당 내 고급 연극의 성지 '자유소극장'이 '힙플레이스' 클럽으로 변신했다. 손에 팔찌를 두른 관객은 클럽통로처럼 꾸민 미로를 지나, 진짜 클럽 같은 극장으로 입장하게 된다. 공연 시작 전 EDM이 관객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고 무대 위 객석은 실제 클럽에 앉아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라흐마니노프' '붉은정원'의 이진욱 작곡가 곡들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역시 귀에 척척 감기는 듣는 즐거움, 의상 디자이너 안현주의 발랄하고 멋스런 한복들은 보는 재미를 안긴다.

연말 공연에는 한 해를 정리하겠다는 완결성,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즐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축제성이 편집증적으로 공존한다. '금란방'은 이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를 실현한다. 창단 30주년을 넘긴데다 가무극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예스럽다는 인상을 주는 서울예술단은 사실 이렇게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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