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인 만주망명 110주년] ②그들은 어떻게 망명했나
등록 2021.04.01 06:00:00
석주 이상용 선생, 망명 과정 '서사록'에 남겨
만주망명 결심 이유와 전답 처분 과정도 서술
백하 김대락 선생도 '서정록'에 망명생활 기록

국역 석주유고 (사진=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문전옥답을 버리고 매서운 한파를 뚫으면서 길을 재촉했다.
1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당시 망명길에 대한 내용은 일기와 회고록 등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자료로 고성이씨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 선생의 '서사록(西徙錄)'이 있다.
'서사록'은 음력 1911년 1월 4일부터 4월 13일까지의 망명 과정을 담고 있는 자료이다.
만주망명을 결심하게 된 이유와 전답 등을 처분하고 짐을 꾸리는 준비과정 등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지금 나의 이 길을 어떤 이는 난리를 피해 삶을 도모하려는 것이라 지목할 것이니 어찌 괴이하게 여기랴. 그러나 만일 오로지 내 한 몸을 온전히 하고 집안을 보전하려 한다면 고향이 객지보다 나을 것임은 천만 틀림없을 뿐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번 길을 작정해 전답과 가택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일가친척을 길가는 사람처럼 아무 상관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신산(辛酸)한 흉회를 억지로 참고 스스로 궁벽하고 황폐한 간도 땅에 투신하려고 하는가?"
"아아, 나는 구차히 목숨을 훔치려는 부류가 아니다. 을사년(1905년) 겨울에 가야산으로 가서 암혈에서 거의 모병하였는데 수년 만에 1만5000금의 자산을 소비했다. 기유년(1909년) 봄에는 경무서에서 곤욕을 당하며 구금돼 지낸 것이 수십일이었다."
"이 7척 단신을 돌아보니 다시 도모할 만한 일이 없는데 아직 결행하지 못한 것은 다만 한 번의 죽음일 뿐이다. 어떤 경우에든 '바른 길을 택한다'는 것은 예로부터 우리 유가에서 날마다 외다시피 해온 말이다."

국역 백하일기 (사진=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망명길에 나선 이상용 선생의 고뇌와 결의가 곳곳에 묻어 있다.
백하 김대락 선생이 쓴 '서정록(西征錄)'도 만주망명을 위해 서울에서 의주행 기차에 올라타는 내용부터 만주에 도착해 정착해가는 초기 망명생활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상룡 선생의 '서사록'과 김대락 선생의 '서정록'을 보면 당시 만주 망명길에 오른 일행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안동에서 추풍령역까지는 도보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대전을 거쳐 서울로 이동한 뒤 경의선을 통해 서울-평양-의주-신의주로 갔다.
이어 매서운 한파에 얼어붙은 압록강을 도보로 건너 서간도 환인현과 유하현 등지로 들어가 본격적인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정녕 백 번 꺾이더라도 굽히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석주 이상룡 선생이 '서사록' 서문에 쓴 말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암울했던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내던진 숭고한 정신을 드러내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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