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 울린 '검은 그림'…최병소 '무제' 숭고미[박현주 아트클럽]
40년 간 볼펜+연필로 '긋기 작업'
득도하듯 나온 작품 RM· 유아인도 소장
우손갤러리 서울서 개인전 24일 개막

최병소, Untitled 0241204 2024 Ballpoint pen and pencil on newspaper, photography 54.5 x 80 x 1 cm detail shot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모나미(365)볼펜이 무기다. 불확실한 세상으로부터의 자발적 고립은 무심의 경지로 나아갔다. 긁고 긁고 또 긁어 암흑 천지가 되기까지 몽당연필도 가세했다. 볼펜의 경계를 쌓고 메운 연필과의 협업은 어둠의 세계를 비추는 한줄기 빛이다. 연필심(흑연)이 내는 광택은 아우라를 발산한다. 40년 간 '긋는 행위'를 멈추지 않은 그는 예술의 세계에 도달했다.
어릴 적 화가였던 아버지를 자랑하지도 못했다. 늘 신문지를 볼펜으로 긁기만 하던 아버지. 그렇게 나온 검은 그림을 보고 친구들은 "김이야?"라고 묻기도 했다.
"이젠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17일 '볼펜 작가'로 불리는 최병소(82)화백의 개인전을 앞두고 만난 큰 딸과 둘째 딸은 '아버지'라는 단어만 내놓고도 울컥했다.
"커서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항상 고독하게 마음을 누르면서 작업하는 게 보이니까…그 감정들이 와 닿더라고요."
아버지의 작업을 도와주며 매니저처럼 일한다는 둘째 딸 최윤정씨는 "아버지는 볼펜으로 긁기 작업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치유한 것 같다"면서 "여전히 재미있고 편안하게 볼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오는 24일 서울 성북동 우손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는 최병소 화백은 최근 거동이 불편해져 공식 석상에 나오기 힘든 상태라고 한다. 두 딸이 대신 기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신문지에 볼펜 긁기로 작업하는 최병소 화백. *재판매 및 DB 금지

최병소 화백 작업하는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최병소, 사진과 볼펜그림을 합친 작품. Untitled 0241203 2024 Ballpoint pen and pencil on newspaper, photography 54.5 x 80 x 1 cm *재판매 및 DB 금지
'어떤 작가냐'는 물음에 "고독한 작가이고 작품을 열심히 하는 작가"라고 답했다면서 아버지는 "많은 생각들과 모든 사심들을 지워나가는 힘든 노동이지만 볼펜 긁는 소리에 희열감을 느낀다고 했다"는 것.
맨날 긋고 긁는 남편을 위해 어머니가 생계를 맡았다. 미싱 공장을 운영하면서도 2녀 1남을 키우고 아버지의 예술을 추켜세웠다. 1990년대 어느 날 아버지 전시회가 떠들썩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데리고 사위가 그린 그림을 보러 전시장에 나온 외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림이 어디 있는데, 이 뭐꼬?" 하는 친구들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Untitled 0161011 2016 Ballpoint pen and pencil on newspaper 54.5 x 80 x 1 cm *재판매 및 DB 금지

Untitled 0240205 2024 Ballpoint pen and pencil on newspaper 160 x 120 x 1 cm detail shot 1 *재판매 및 DB 금지

갤러리우손 서울 최병소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최병소 '무제' *재판매 및 DB 금지
'검은 그림'. 아무것도 없는 그림의 반란은 2000년대 이후 시작됐다. 볼펜이라는 재료와 무심한 작업 과정에 놀란 파리의 한 갤러리가 초대전을 연 데 이어 2015년 아트바젤홍콩에서 작품이 팔리면서 알려졌다. 특히 국내 미술시장에 단색화 붐이 일면서 '검은 그림'도 꿈틀대며 대박을 치기 시작했다.
최 화백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와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70년대 후반 대구 현대미술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회화의 조형성과 의미 구조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지속해 왔고, 신문, 잡지, 인쇄물 등 대중매체를 활용한 ‘지우기와 긋기’행위를 통해 작업의 방법론을 정립했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평면 작업을 넘어서, 언어 구조와 권위의 해체, 이미지 생산 메커니즘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적 개입으로 작동한다.
득도하듯 나온 그림은 배우 유아인, 방탄소년단 RM이 소장해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최 화백은 2010년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했다. 2024년 미국에 진출,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의 ‘서베이(Survey)’ 섹터에 소개되며 '수행의 그림'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이스턴 미시간 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Untitled 0220518_now 2022 Ballpoint pen silkscreen on paper 54.5 x 39.6 x 1 cm detail shot *재판매 및 DB 금지

영어 글자를 긁어 만든 작품. 최병소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우손갤러리 서울에서 여는 '최병소의 무제'전은 6m의 검은 빛을 내는 '볼펜 그림'을 비롯해 검은 바탕에 영어로 'NOW', 'HERE'를 긁어낸 글자 회화와 손가락 길이의 종이 박스 작품도 선보인다. 얽매임을 벗은 검은 화면, 그 안에 쌓인 시간과 사유의 흔적이 '아름다움'의 개념을 조용하고도 묵직하게 흔든다. 전시는 6월 21일까지.
![두 딸 울린 '검은 그림'…최병소 '무제' 숭고미[박현주 아트클럽]](https://img1.newsis.com/2025/04/17/NISI20250417_0001820719_web.jpg?rnd=2025041716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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