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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묭을 듣지 않아…30대 시작에 내한해줘서 고마워

등록 2025.04.20 06:56:47수정 2025.04.20 21: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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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9일 고양 킨텍스서 데뷔 10년 만에 첫 내한공연

2시간20분 동안 20여곡 들려주며 빈틈 없는 라이브

능숙한 한국어 실력 …"작년 5월부터 화상으로 배워"

20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공연…1만6천명 규모

[고양=뉴시스] 일본 스타 싱어송라이터 아이묭(あいみょん)이 19~20일 경기 고양 킨텍스 9홀에서 '돌핀·아파트 인 서울'을 펼쳤다. 그녀는 데뷔 10년 만에 첫 내한공연했다. (사진 = MPMG 제공) 2025.04.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고양=뉴시스] 일본 스타 싱어송라이터 아이묭(あいみょん)이 19~20일 경기 고양 킨텍스 9홀에서 '돌핀·아파트 인 서울'을 펼쳤다. 그녀는 데뷔 10년 만에 첫 내한공연했다. (사진 = MPMG 제공) 2025.04.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고양=뉴시스]이재훈 기자 = 일본 톱 스타 싱어송라이터 아이묭(30·あいみょん·모리이 아이미)을 이제 우리는 듣지 않는다.

아이묭이 데뷔 10년 만인 19일 오후 경기 고양 킨텍스 9홀에서 펼친 첫 내한공연 '아이묭 투어 2024-25 '돌핀·아파트(Dolphin Apartment) 인 서울'을 기점으로, 한국 팬들 역시 그녀의 노래를 듣는 걸 넘어 체험하고 같은 보폭으로 본격적인 동반을 하게 됐다.

초조해하지 말고 언젠가 꽃다발이 돼 달라고 노래하는 '봄날'(ハルノヒ)은 봄날을 세차게 뒤흔들 것 같은 날씨 혹은 삶을 뚫고 온 이들에게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됐다. 

자신의 모든 걸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자기 모습까지 싫어하기는 힘들다. 아이묭은 그렇게 자기 혐오의 세상 속에서, 언제나 청춘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공감 가는 노랫말로 자기 긍정을 건네준다.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증거를 가슴에 품고 싶다고 외치는 이날 첫 곡 '어차피 죽는다면(どうせ死ぬなら)'부터 한 대상에게 불현듯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묭은 깨닫게 했다.

"도오세 시누나라 / 니도네데 시니타이와"(어차피 죽는다면, 한 번 깼다가 다시 잠들고 싶어)라고 첫 대목을 무반주로 시작하는 순간, 아이묭을 그저 영상으로 보고 음원으로 듣기만 했던 삶과 지금부터 인생은 불가역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직감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콘서트에 가는 이유다.
[고양=뉴시스] 일본 스타 싱어송라이터 아이묭(あいみょん)이 19~20일 경기 고양 킨텍스 9홀에서 '돌핀·아파트 인 서울'을 펼쳤다. 그녀는 데뷔 10년 만에 첫 내한공연했다. (사진 = MPMG 제공) 2025.04.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고양=뉴시스] 일본 스타 싱어송라이터 아이묭(あいみょん)이 19~20일 경기 고양 킨텍스 9홀에서 '돌핀·아파트 인 서울'을 펼쳤다. 그녀는 데뷔 10년 만에 첫 내한공연했다. (사진 = MPMG 제공) 2025.04.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아이묭은 두 번째 곡 '러키컬러(ラッキーカラー)'부터 런웨이 형식의 돌출 무대로 달려나와, 돌핀 아파트 입주민들이 된 한국 팬들의 손을 물리적으로 잡아줬다.

여러 K팝 아이돌들이 커버하기도 한 대표곡 중 하나인 '마리골드(マリーゴールド)'를 부르고 나선 우리말로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분명히 말했다.

아이묭은 이날 한국어를 1년 동안 공부해왔다고 처음 밝혔다. 밴드 멤버들, 스태프들에게 비밀로 해오며 처음 알린 사실이었다. 한국인 선생님과 1주일에 2번씩 화상 연결로 공부했다는 그녀는 본인의 한국어 실력을 논하기엔 아직 멀었다고 겸손했지만 발음도 꽤 분명했고 화법에도 능숙했다. "한국어, 혼토니 어려워요데시타"라며 일본어, 한국어를 오가는 변주도 자유로웠다. 큰 환호엔 "대박"이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오늘 한국어 선생님이 오셔서 긴장했다"고 너스레도 떨었다.

버스킹으로 시작해 차곡차곡 성장해온 아이묭의 노래 실력엔 당연히 빈틈이 없었다. 장르에 따라 팔색조로 변하는 색깔은 물론 고음은 청아했고 저음은 믿음직스러웠다. 무엇보다 공연 내내 한 번도 제대로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약점 없이 내달리는 에너지와 역동성이 일품이었다. '염요일(炎曜日)'과 '마트료시카(マトリョーシカ)'에서 들려준 묵직한 밴드 사운드는, 아이묭 밴드의 실력을 증거했다.

'마트료시카' 막판에 아이묭이 가사 일부분을 부르지 못했는데, 그녀가 바로 사과하는 장면은 너무 인간적이었다. 무엇보다 팬 서비스도 대단했다. 무대 도중 가지고 나온 쌍안경으로 뒤편 관객들을 클로즈업해 보며 적극 소통했다. 명동, 제주도, 광주, 대구, 춘천, 부산 등 한국 지역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이들 지역에서 온 팬들을 찾기도 했다.
[고양=뉴시스] 일본 스타 싱어송라이터 아이묭(あいみょん)이 19~20일 경기 고양 킨텍스 9홀에서 '돌핀·아파트 인 서울'을 펼쳤다. 그녀는 데뷔 10년 만에 첫 내한공연했다. (사진 = MPMG 제공) 2025.04.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고양=뉴시스] 일본 스타 싱어송라이터 아이묭(あいみょん)이 19~20일 경기 고양 킨텍스 9홀에서 '돌핀·아파트 인 서울'을 펼쳤다. 그녀는 데뷔 10년 만에 첫 내한공연했다. (사진 = MPMG 제공) 2025.04.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유머감각도 탁월했다. '봄날'은 국내엔 '짱구'로 알려진 애니메이션 '크레용 신짱'의 '극장판 27기 신혼여행 허리케인~ 잃어버린 히로시!' 주제곡인데, 아이묭은 한국어로 '짱구'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다.

화룡점정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히트곡 퍼레이드 순간이었다. '사랑을 전하고 싶다든가'(愛伝いたいだとか) '스케치(スケッチ), '너는 록을 듣지 않아'(君はロックを聴かない)가 3연타 아니 3홈런을 때리는 대목에서 공연장에 운집한 8000명이 빠짐없이 떼창하는 에너지는 가슴 벅찬 무엇이었다. '너는 록을 듣지 않아'의 합창이 폭발하는 순간, 조명이 객석을 환하게 비췄는데 모두가 동시에 손을 앞뒤로 흔드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무대 중간 중간 드론이 무대 위 아이묭을 촬영해 스크린에 비추는 순간은 역동적인 공연 연출 중 하나였다.

이번 콘서트 타이틀에 '아파트'가 포함된 것을 상기시키며 아이묭은 K팝 간판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의 글로벌 히트곡 '아파트' 속 "아파트 아파트"를 짧게 여러 번 위트 있게 불렀다. 막판엔 '아파트'의 일부 대목을 반주 없이 30초가량 불러줬는데, 이 역시 아이묭 색깔이 제대로 묻어 나왔다.

애초 이번 공연 러닝타임은 90분가량으로 알려졌다. 아이묭은 그런데 2시간20분을 꽉 채우며 만족감을 드높였다. '너는 록을 듣지 않아' 이후에도 '링 딩(RING DING)', '꿈을 좇는 벵갈(夢を追いベンガル)', '당신해부순애가~죽어~(貴方解剖純愛歌 ~死ね~)', '살아왔던 거겠지(生きてたんだよな)', '벌거벗은 마음'(裸の心), '접시꽃'(葵)를 불러 아이묭의 대표곡들이 상당수 망라됐다.
[고양=뉴시스] 일본 스타 싱어송라이터 아이묭(あいみょん)이 19~20일 경기 고양 킨텍스 9홀에서 '돌핀·아파트 인 서울'을 펼쳤다. 그녀는 데뷔 10년 만에 첫 내한공연했다. (사진 = MPMG 제공) 2025.04.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고양=뉴시스] 일본 스타 싱어송라이터 아이묭(あいみょん)이 19~20일 경기 고양 킨텍스 9홀에서 '돌핀·아파트 인 서울'을 펼쳤다. 그녀는 데뷔 10년 만에 첫 내한공연했다. (사진 = MPMG 제공) 2025.04.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날 아이묭은 들려오는 환호로 관객 연령조사를 직접하기도 했다. 20~30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40대, 50대는 물론 60대 관객이 있을 정도로, 한국 팬들엔 남녀노소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 여기서 국내 몇 년 전부터 다시 불기 시작한 J-팝 신드롬의 확장을 본다. 이제 J-팝이 오타쿠 문화를 넘어서 더 많은 음악 팬들이 함께 공감하고, 부르는 노래가 된 것이다. 아이묭이 2017년 발표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든가'는 2023년부터 꾸준히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 톱100 순위권을 들락날락했다.

3월6일이 생일인 아이묭은 지난 2월 오사카성에서 20대 마지막 콘서트를 열었다. 대만을 거쳐 한국에서 30대의 콘서트 시작을 열었다. 20대 아이묭을 국내에서 못 봐서 아쉽지만 30대 시작을 이렇게 봐서 다행이다.

물론 아이묭 노래들은 청춘의 기미를 포착해 정곡을 언제나 찌르니, 사실 나이대는 크게 상관 없다.

젊음의 그림자를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면서 '벌거벗은 마음'을 과장하지 않고 묵묵히 품을 수 있는 뭉근한 용기. 그것이 아이묭의 정서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지나온 청춘을 긍정하게 만드는 입구가 된다. 아이묭의 노래를 땔감으로 삼아 우리는 남은 세계와 맞설 준비가 됐다. 
                             
아이묭은 20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콘서트를 이어간다. 양일 1만6000석 규모로, 티켓 예매 오픈 즉시 매진됐다. 이후에도 아이묭 콘서트 표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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