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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선 게으름도 괜찮아"…세화마을서 찾은 관계인구 성공공식[르포]

등록 2025.09.08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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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마을회관, 주민 477명이 모여 복합거점으로 개발

워케이션 재방문율 38%…유엔관광청 최우수 마을 선정

정부, '농촌재생 거점마을' 사업 추진…김제·고창·밀양 선장

[제주=뉴시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질그랭이 거점센터의 워케이션 공간의 모습. (사진 = 세화마을 제공) 2025.09.04.

[제주=뉴시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질그랭이 거점센터의 워케이션 공간의 모습. (사진 = 세화마을 제공) 2025.09.04.


[제주=뉴시스]임하은 기자 =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바닷가, 한때 폐허로 방치되던 마을 복지센터가 지금은 주요 기업들의 워케이션 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 '질그랭이 거점센터'는 옛 제주어로 '게으르다'는 뜻의 '질그랭이'를 이름으로 삼았다. 세화에서만큼은 나태해도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에 선정되며 시작된 센터는 2021년 문을 열었다. 현재 카페 477, 워케이션 오피스, 숙소를 갖춘 마을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양군모 세화마을협동조합 마을 PD는 당시 폐허가 된 복지타운을 보며 '우리가 직접 바꾸자'는 마음을 먹었다. 1000만원짜리 제주시 사업으로 컨설팅을 진행하고, 이후 농식품부의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으로 선정돼 7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농식품부 사업이 마중물이 되자 해수부 '세화항 어촌뉴딜300', 국토부의 도시재생사업(272억원 규모)으로 확장됐다. 이렇게 마을의 잠재능력을 키우면서 2022년 농식품부 '삶의 질' 우수사례, 2023년 행안부 로컬브랜딩 우수사례에 선정됐다. 같은해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최우수 관광마을'에도 선정되면서 국제 행사에서 제주도와 세화마을을 홍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을사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던 핵심은 마을 모든 주민이 참여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양 PD는 "이장·임원 10명만의 사업이 아니라 마을 모두의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6개 구역을 순회 설명했고, 초기 조합원 477명을 모았다. 카페 이름 '477'의 유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현재 조합원은 494명, 직원은 7명으로 센터가 운영된다.

질그랭이 센터의 진짜 가치는 워케이션을 통한 '관계인구' 창출에 있다. LG전자 고객센터 운영사 하이텔레서비스, 현대중공업, 대상, 이지스자산운용 등 기업 4곳이 매년 수백 명씩 워케이션 센터를 찾는다. 재방문율은 38% 정도다.
[제주=뉴시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세화마을에서 진행 중인 해녀 관련 프로그램. (사진 = 세화마을 제공) 2025.09.04.

[제주=뉴시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세화마을에서 진행 중인 해녀 관련 프로그램. (사진 = 세화마을 제공) 2025.09.04.


양 PD는 "매출 5~6억원 중 순이익은 1억5000만원 수준이고, 수익은 주로 숙박·체험·카페에서 난다. 워케이션 자체로 큰 수익이 나는 구조는 아니지만 대신 워케이션은 '관계인구'를 키우는 엔진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오고 싶은 마을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체험들을 설계했다. 마을 투어, 해녀 투어, 해녀 물질 체험, 해녀와 바당식탁, 다랑쉬 오름 웰니스 트레킹 등을 운영한다. 동네 식당·상점에는 '맛집 엽서'를 비치해 방문객이 직접 메시지를 남기면 사이다를 주는 작은 이벤트로 지역 상권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세화마을은 고도지구로 20m 이상 건물을 올릴 수 없다. 워케이션 방문객을 위한 객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펜션 대표들과 협업해 마을호텔을 운영 주이다.

"워케이션 방문객 1인이 한 주 45만~50만원을 소비한다고 추계합니다. 주 20명 기준이면 주당 800만~1000만원의 지역 소비가 발생하죠."

센터의 운영 원칙은 '마을 주민 한 사람도 속상해 떠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양 PD는 "외부의 인정을 안 받아도 좋다. 이 사업으로 공동체가 갈라질 바엔 예산을 반납하자는 게 우리의 기준이었다"고 말했다. 수익의 일정 비율을 마을 기금으로 환류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장기적으로는 30%까지 기금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제주=뉴시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세화마을에서 진행 중인 다랑쉬 오름 웰니스 투어 프로그램. (사진 = 세화마을 제공) 2025.09.04.

[제주=뉴시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세화마을에서 진행 중인 다랑쉬 오름 웰니스 투어 프로그램. (사진 = 세화마을 제공) 2025.09.04.


세화와 같은 사례를 늘려가기 위해 정부도 팔을 걷고 나섰다. 농촌의 특화된 자원을 활용해 생활인구와 귀농귀촌인을 늘리는 '농촌재생 거점마을' 사업이다. 일자리·창업·관광·체류 기능을 갖춘 곳으로 전환하겠다는 거다.

시범사업으로 전북 김제·고창, 경남 밀양 3개 시·군이 선정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된다. 2030년까지 일반농산어촌지역 111개 시·군별로 1곳 조성을 목표로 한다.

전북 김제 죽산면에는 폐양조장을 리모델링한 로컬창업공간과 청년 창업거리를 조성한다. 총사업비는 120억원이다. 경남 밀양 하남읍에는 캠핑장·영농체험·경관특화를 묶은 체험관광 벨트를 만들고, 전북 고창 흥덕·성내 일원에는 생태자원을 활용한 런케이션 센터와 체류형 복합단지를 구축한다. 밀양과 고창의 사업비는 각각 300억원 규모다.
 
[제주=뉴시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세화마을에서 진행 중인 해녀 관련 프로그램. (사진 = 세화마을 제공) 2025.09.04.

[제주=뉴시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세화마을에서 진행 중인 해녀 관련 프로그램. (사진 = 세화마을 제공) 2025.09.04.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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