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파리 강화회의, 실패만은 아니었다…'파리 1919'
![[서울=뉴시스] 파리 1919 (사진=책과함께 제공) 2025.11.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27/NISI20251127_0002004778_web.jpg?rnd=20251127175130)
[서울=뉴시스] 파리 1919 (사진=책과함께 제공) 2025.11.2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19년 열린 파리 강화회의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막중한 과제가 논의된 자리였다. 파리는 반년 가까이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말 그대로 '세계의 수도'였다.
승전국을 대표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이탈리아 총리 비토리오 오를란도 등 '거두 4'는 새로운 국제 질서와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파리의 회의장은 세계의 모든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파리에서 논의되는 거대한 이상과는 달리, 각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전장에서 싸우고 생존을 위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소아시아와 코카서스 등 철도·도로·항구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는 군사력이 있어도 병력 이동이 힘들었다. 신기술이었던 비행기도 전쟁·분쟁 공백을 메우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미 철도가 갖춰진 유럽에서도 전후 혼란으로 기관차와 화물차가 있어도 연료가 부족해 기능하기 어려웠다.
회의장 '파리'와 전쟁터 '현장'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현실이 공존했다.
역사학자 마거릿 맥밀런은 책 '파리 1919'(책과함께)에서 당시 파리를 "전무후무한 세계의 수도"라 규정한다.
그는 강화회의의 진행 과정과 지역별 주요 쟁점, 그리고 세계 질서를 좌우했던 4대 거두의 개인사와 발언을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논의를 따라가면서도, 사안을 지역별로 나눠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특히 책 후반부에서는 강화회의 핵심 사안이었던 독일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독일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있지만, 저자는 파리 강화회의가 그저 실패한 협상으로만 평가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치열했고, 이후 세계 질서 형성과 국제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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