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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외교 개척자'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별세

등록 2026.01.26 16: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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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15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한국핵정책학회-아태핵비확산군축리더십네트워크(APLN) 공동 주최로 열린 '트럼프 행정부 비확산정책과 한반도' 공동학술회의에서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축사하고 있다. 2017.02.15.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15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한국핵정책학회-아태핵비확산군축리더십네트워크(APLN) 공동 주최로 열린 '트럼프 행정부 비확산정책과 한반도' 공동학술회의에서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축사하고 있다. 2017.02.1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한국 현대 외교사의 고비마다 결정적 이정표를 세웠던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이 25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32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8년 외무부(현 외교부)에 몸담았다. 이후 동북아과장, 아주국장 등 요직을 거치며 30여 년간 외교 현장을 지켰다.

고인은 특히 한국 외교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힌 '북방외교'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남북 교차 승인과 대중·대소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정책적 토대를 마련했다. 1990년 초대 주소련 대사로서 한·소 수교를 성사시켰고, 소련 해체 전후의 격변기에 주러시아 대사를 지내며 국익을 수호했다.

교착됐던 한중 관계의 물꼬를 튼 것도 고인의 주요 업적이다. 1983년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 당시 외무부 정무차관보로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1949년 중국 정권 수립 이후 최초의 양국 정부 간 공식 접촉을 끌어냈다. 이 사건은 훗날 1992년 한중 수교로 이어지는 결정적 도약대가 됐다.

고인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 실무자로 참여하며 한일 외교의 기틀을 잡는 데 일조했다. 이후 주일 대사를 거쳐 제25대 외무부 장관(1994~1996년)을 역임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남북핵통제공동위원장으로서 대북 핵 협상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공직 은퇴 후에도 고인은 동아시아재단과 세종재단 이사장, 한일포럼 회장 등을 맡아 민간 외교와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외교부는 고인의 공로를 기려 2024년 국립외교원에 '공로명 세미나실'을 헌정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조문은 27일부터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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