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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헤매는 자들의 눈부신 고독…이소라, '봄의 미로'가 벼려낸 명징한 슬픔

등록 2026.05.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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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경희대 평화의전당 '2026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 봄의 미로' 리뷰

"10년 넘게 침체돼…작년부터 변화가 찾아와"

"유튜브 하면서 많이 힘든데 많이 안정 돼"

"올해는 안 해본 일들 많이 해봐…좀 밝은 사람 됐으면"

[서울=뉴시스]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 공연. (사진 = NHN링크 제공) 2026.05.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 공연. (사진 = NHN링크 제공) 2026.05.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미로(迷路)란 본디 길을 잃기 위해 고안된 공간이다. 우리는 완벽한 출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헤매고 부딪히며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고독과 마주하기 위해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타인이라는 거대한 세계로 진입하는 일 역시 하나의 미로를 탐험하는 과정과 같다. 가닿았다고 믿은 순간 거대한 벽에 가로막히고, 온전히 소유했다고 여긴 순간 아득히 멀어지는 타자성의 한계. 그럼에도 우리가 끊임없이 타인에게 손을 뻗는 이유는, 그 지독한 헤맴의 궤적 자체가 곧 살아있음의 증명이자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 이소라가 지난 2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펼친 '2026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 봄의 미로'는 완벽한 이해라는 기만을 버리고 기꺼이 서로의 길 잃음이 돼 주기를 자처한 이들의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자리였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압도한 것은 구불구불한 미로 정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무대 연출이었다. 16인조 스트링과 5인조 밴드(피아노 이승환, 어쿠스틱 기타 홍준호, 일렉 기타 라영석, 베이스 장승호, 드럼 이상민)가 이 야외 정원 같은 미로 곳곳에 절묘하게 배치돼 있었다.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이토록 명징하고 완벽한 해상도의 사운드를 잡아낸 공연은 드물었다. 타협을 모르는 이소라의 지독한 완벽주의가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어둠 속에서 '바라 봄'으로 조심스레 미로의 문을 연 이소라는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금 박수 많이 쳐주시고 좀 환호해주시고 그래야 될 텐데… 이따가는 그럴 시간이 거의 없을 거예요. 제가 슬픈 노래들 막 네다섯 곡씩 이어서 하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는 없어질 겁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서울=뉴시스]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 공연. (사진 = NHN링크 제공) 2026.05.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 공연. (사진 = NHN링크 제공) 2026.05.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소라는 그동안 쭉 침체돼 있었다고 털어놨다. 꽤 오랜 시간, 10년이 넘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자신한테 변화가 찾아 왔다고 했다. "제가 막 너무 집에만 있고 그러니까, 이제 나이가 점점 드니까 집에만 있는 것도 몸이 견디질 못하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해도 버텼었는데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가지고. 25년도 초에 병원도 가고, 뭐 나름대로 제가 몸을 좀 건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고, 또 제 생각도 좀 바뀌고 밖으로 나갈 기회도 생기고 그러면서 많이 변했어요. 제가 그래서 이번에 공연도 다시 찾게 됐다"는 것이다. "오늘 이 공연이 여러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시간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2023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30주년 콘서트 당시 10곡 내내 눈을 감고 노래하며 심연으로 침잠했던 그녀는, 이번엔 미로의 벽을 짚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왔다. 타자의 마음을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절망과 무모함을 토해낸 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을 이어갔다.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김동률 씨가 작사 작곡한 노래예요. 김동률 씨 앨범에 있는 노래들로 숨 쉴 데가 하나도 없어요, 정말. 아, 근데 오늘 뭐 이렇게 떨리는지. 저 지금 굉장히 떨리고 있거든요. 평소 하던 호흡의 반밖에 지금 안 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동률이는 숨을 안 쉬고 노래를 만드는지. 하하."

이소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얘기도 했다. 평소 대외 활동이 극히 드물었던 그녀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것 자체가 가요계와 팬들 사이에선 큰 화제가 됐다.
[서울=뉴시스]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 공연. (사진 = NHN링크 제공) 2026.05.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 공연. (사진 = NHN링크 제공) 2026.05.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제가 유튜브 하면서, 어떤 초대 손님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공연할 때 말도 잘 안 하고 그냥 노래만 할 것 같다는 얘기요. 그때 '내가 와주신 분께 내 할 일을 다 하지 못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냥 노래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 말하는 목소리를 또 좋아하시는 분도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생각을 달리했어요. 지금도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유튜브 하면서 많이 힘든데 많이 안정이 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에너지를 받고, 오늘은 또 이렇게 여러분에게서 힘을 받아요. 여러분, 오늘 제가 하는 모든 것에 대한 그런 좋은 기분을 다 받아가시길 바랄게요."

이어진 무대는 시각적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특히 '트랙 11'에서는 쏟아지는 별빛 조명이 객석을 뒤덮으며 실내 공연장을 순식간에 광활한 야외의 우주로 탈바꿈시켰다. 이소라의 앨범 제목이기도 한 '눈썹달'이 떠오르고, 천장에서 실제 꽃이 비처럼 내려오는 몽환적인 연출도 이어졌다.

이 황홀경 속에서 이소라는 수줍게 자신의 변화를 털어놓았다.

"시간이 흐르네요. 하나하나 숙제하듯이 하고 있어요. 아, 28살 때는 진짜 기가 막히게 했었었는데. 쉬지도 않고. 20대가 지나니까… 그래도 여러분 때문에 노래를 아직까지 사랑해요. 공연장을 꽉 메워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아무도 없는 공연장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는데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겠어요?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제가 노래할 수 있는 거죠. 약간 분위기 띄울게요. 제가 이제 밖에 나가다 보니까 입술에 색도 좀 입히고. 노래하느라 다 지워졌겠지만 지금 바르고 왔어요. 오늘 구두도 빨간색 구두 한번 신어봤어요. 제가 오랫동안 진짜 제 몸에 색을 입히지 않았었거든요. 그냥 검정색, 아주 가끔 하얀색. 그리고 똑같은 옷을 여러 벌 사서 깨끗하게만 입고 다니는 거예요. 디자인이나 색 그런 거 아무 상관없이. 늦지 않게 나가려고, 그런 거에 신경 쓰다 보면 지각할까 봐 모든 일에 그런 게 굉장히 오래됐었거든요. 근데 올해는 정말 제가 안 해본 많은 일들을 해보고 있어요. 오랫동안 안 해왔던 일들을. 안 해본 건 아니었겠죠. 이런 일들이 새로 나온 제 노래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길 바라요. 좀 밝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설레이는 사람."
[서울=뉴시스]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 공연. (사진 = NHN링크 제공) 2026.05.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 공연. (사진 = NHN링크 제공) 2026.05.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소라의 공연장엔 흥미로운 도시전설 같은 현상이 있다. 바로 "화장실에서 남성 관객들이 그 어느 곳보다 꼼꼼하게 손을 씻는다"는 사실이다. 공연 기간 소셜 미디어에서 내내 이 같은 현상이 화제가 됐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와 타자의 경계를 섬세하게 짚어내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자성의 한계를 존중할 줄 아는 음악을 향유하는 이들이다. 어떤 것을 보고 듣고 읽느냐의 취향은 결국 타인을 대하는 일상의 태도와 매너로 직결된다. 손을 깨끗이 씻는 이 정결한 관객들은, 무대 위 완벽을 기하는 아티스트와 똑 닮아있었다.

"아, 참 웬만하면 칠 수 없는 일이… 오늘 귀가 너무 먹먹하고 뭔가 굉장히 떨리고 있어요. 이거 참 뭐죠? 뭐죠 이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제가 누굴 만나고 있지 않거든요. 가족 외에는. 와, 진짜 너무 가슴이 콩닥거리는데요."

이소라는 '트랙 3'를 공연 때마다 꼭 부른다. "사랑이 그대 마음에 / 차지 않을 땐 / 속상해 하지말아요"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곡이다. 그는 "한 번도 안 빼고. 어느 때부턴가 불러왔던 것 같아요. 우리 팀이랑 다 같이 부르거든요. 몇 마디씩 나눴어요. 내 마음속에 사랑이 항상 있는데 잘 못 느끼는 것 같아요. 평소에는. 저희 다 같이 노래하면서 여러분께 '내 마음속에 그런 게 있었구나' 느끼게 해드리려고. 들어보면 아실 거예요. 너무… 우리 팀 노래 들어보시면 아실 거예요. 약간 웃음 나올 수도 있어요. 정성껏 해볼게요. '트랙 3'."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미로는 서늘한 고립과 상실의 풍경으로 변해갔다. '티어스', '난 행복해', '처음 느낌 그대로', '믿음'으로 이어지는 세트리스트는 관객들의 숨통을 조일 만큼 묵직했다. 마침내 마지막 인사의 시간, 이소라는 오래된 팬 얘기를 꺼냈다.
[서울=뉴시스]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 공연. (사진 = NHN링크 제공) 2026.05.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소라 여덟 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 공연. (사진 = NHN링크 제공) 2026.05.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끝도 없이 정말 힘들고 슬픈 노래 네 곡을 끊임없이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까지 노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근데 제가 이 얘기를 오래 하면 노래가, 이 두 곡은 정말 어떻게 부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정도로 지금 힘이 많이 들 것 같은데 끝 인사라서 드려야 하긴 합니다.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제가 편지를 하나 받았어요. '디어 소라 언니, 여덟 번째 봄 공연 축하해요. 응원의 마음과 힘을 듬뿍 담아 꽃을 보냅니다. 오늘과 내일 공연 파이팅이에요. 저기 객석에서 잘 보고 있을게요.' 제가 유튜브에서 발레리나 슈즈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선물을 준 친구예요. 제 원래 꿈이 발레리나였거든요. 절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던 그런 친구였는데 한동안 소식이 없는 거예요. 내가 지금 노래하는 방향이 잘못됐나까지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봤겠죠. 이후에 (팬이 유튜브 영상을) 봤나 봐요. 오늘 꽃다발을 가지고. '봄의 미로' 오늘 공연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우리 스태프 여러분들, 공연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바람이 분다', 그리고 '순수의 시절' 들려드리며 오늘 공연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철학적 정점인 '바람이 분다'를 지나 마침내 피날레인 '순수의 시절'에 다다른 순간, 사납고 거친 세상의 미로 앞에 홀로 선 감정이 벅차오른 이소라는 미처 노래의 흐름을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렸다. 노래가 끝났지만 그녀는 이내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미로의 출구에서 팬들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웠던 그녀는, 예정된 세트리스트에 없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앙코르로 토해냈다.

'순수의 시절'의 가사처럼 내게 다가오는 '불안한 삶의 표적(標的)'은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는 파괴의 목적지가 아니다. 누군가의 '표적'이 돼 준다는 것은, 길 잃은 미로 속에서 빗나가는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가장 무방비한 환대와 응시의 목적지가 돼주겠다는 선언이다. "네가 던지는 서툰 마음이 내 어디를 찌르든, 도망치지 않고 여기 서 있겠다"는 용기. 이소라는 이 지독하게 외로운 봄의 미로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들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아름다운 표적이 돼 줬다.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고 있는 관객들 휴대폰엔 이런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2026 5 봄의 미로 함께 했던 시간, 우리 잊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소라" 해당 공연은 3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열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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