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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수아비' 제작진 "사이다 대신 현실의 무게를"

등록 2026.05.3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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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허수아비’ 박준우 감독·이지현 작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배경…진범 밝혀진 이후 조명

박준우 감독 "판타지보다 현실 반영하고 싶었다"

[서울=뉴시스] 왼쪽부터 이지현 작가, 박준우 감독. (사진=스튜디오 안자일렌 제공) 2026.05.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왼쪽부터 이지현 작가, 박준우 감독. (사진=스튜디오 안자일렌 제공) 2026.05.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강주희 기자 = 1980년대 경기 화성시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은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경찰은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리고, 200만 명이 넘는 인력을 투입했지만, 진범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그리고 33년이 지난 2019년, 진범이 잡히면서 영구 미제의 상징이었던 이 비극은 비로소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재명명됐다.

지난 26일 종영한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는 이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가상의 마을 강성을 배경으로,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쫓는 형사 강태주(박해수)가 학창 시절 원수인 차시영(이희준)을 담당 검사로 만나 뜻밖의 공조를 벌이는 이야기다. 드라마는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비극을 마주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30년에 걸쳐 조명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준우 감독과 이지현 작가는 실제 사건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방송 편성을 받으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거절을 많이 당했다"고 회상했다. 이 작가도 "실화를 다루는 것이 부담스러워 6개월 정도 거절했다"며 "드라마가 끝나고 보니 그때의 저를 포기하지 않고 작가로 참여하게 해준 감독님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의 기획은 피해자들로부터 출발했다. 박 감독은 2021년 SBS 드라마 '모범택시' 시즌 1을 만들며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 윤성여 씨와 고(故) 김용복 씨를 만났다고 했다. 윤성여 씨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인물이고, 김용복 씨는 이춘재에게 희생되고도 경찰의 시신 은폐로 오랫동안 실종 처리된 고 김현정 양의 아버지다.

박 감독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짧은 다큐멘터리로 만들며 '범죄 사건으로 시대를 보여주는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모범택시'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아쉬움도 있었어요. '현실은 전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데, 판타지만 주고 허구로 사건을 이용하는 것 같다'는 기사를 보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죠. 좀 더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시원함은 없지만 그 나름대로 볼만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뉴시스]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속 장면. (사진=KT스튜디오지니 제공) 2026.05.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속 장면. (사진=KT스튜디오지니 제공) 2026.05.2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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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허수아비'는 속 시원한 단죄나 복수와 거리가 멀다. 실제 사건을 다루는 만큼 제작 과정 내내 조심스러웠다. 박 감독은 "드라마 후반부는 거의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잘못된 수사의 회고록처럼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무조건 처음과 끝이 현재 시점이어야 한다고 당부 드렸고, 석만 사건과 혜진 사건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사에서 '제발 사이다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저나 작가님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며 "이 사건은 피해자가 여러 분이 계시고 돌아가신 분도 계신다. 현실에서 사이다 응징이 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고, 다행히 방송사도 그걸 충분히 받아주셨다"고 밝혔다.

다만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주인공 강태주만큼은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인물로 설정했다. 극 중 강태주는 임석만(진석찬)이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는데 일조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는 진실을 되찾기 위해 싸움을 이어간다. 이 작가는 "태주를 통해 누구나 옳은 선택을 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며 "태주는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두고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시대의 태주처럼 더 이상 허수아비로 남지 않고, '인간으로서 내가 해야 할 선택을 해야겠다'고 할 사람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제목 '허수아비'에도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처음에는 범인이 허수아비처럼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존재라면, 7부부터는 또 다른 허수아비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그 시대에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공권력이 허수아비일 수도 있고, 범인도 찾지 못하고 피해자도 구하지 못한 태주가 허수아비일 수도 있고. 상사의 얘기를 듣고 아이를 묻은 대호가 허수아비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뉴시스] 왼쪽부터 이지현 작가, 박준우 감독. (사진=스튜디오 안자일렌 제공) 2026.05.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왼쪽부터 이지현 작가, 박준우 감독. (사진=스튜디오 안자일렌 제공) 2026.05.2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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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는 다층적 서사만큼 박해수, 이희준, 곽선영 등 배우들의 호연으로도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첫 회 2.9%로 출발한 시청률은 8.1%라는 자체 최고 기록을 세웠다. 박 감독은 "박해수는 처음부터 원픽이었다"며 "정문성 배우는 개인적 인연이 없지만 일찍부터 마음을 정했고, 이희준 배우도 합류하게 됐다. 곽선영 배우는 분위기 메이커로 중심을 잡아줘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고 전했다.

특히 연쇄살인범 이용우를 연기한 정문성에 대해 "하차 이야기를 할 정도로 부담을 느꼈다"며 "강태주와 이용우의 갈등 장면은 이틀에 걸쳐 찍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두 사람의 연기 대결을 흥미롭게 봤다"고 전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허수아비'는 마지막 회까지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임석만은 30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지만, 진실을 숨긴 차시영은 끝까지 거짓 증언을 택했고, 불법 구금과 강압 수사를 했던 가해자들은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받지 않는다. 늘 악몽을 꾸던 강태주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단잠에 빠지는데, 꿈 속에는 마을을 뒤흔들었던 연쇄살인 사건이 없다.

이 작가는 결말에 대해 "이춘재 사건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며 "드라마를 쓰면서 그 사건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소소하고 온전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식으로든 평화로운 마을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웃을 수 있는 평범한 하루를 그리고 싶었다"며 "사건만 없었다면 차시영도 이용우도 계속 보지 않았을까"라고 전했다.

박 감독은 '허수아비'처럼 범죄 사건이나 실화를 모티브로 1990~2000년대 대한민국 사회를 되돌아보는 3부작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이춘재 사건에는 윤성여 선생님이나 김용복 선생님 같은 피해자들이 많이 계세요. 저희 딴엔 노력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그분들이 이 작품에 만족하실지는 모르겠어요. 이 작품이 연쇄살인마 이춘재 때문에 피해를 보신 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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