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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왜장 일본서 죽었다?…학계 "왜장 집안문서는 위조"

등록 2026.06.29 10:03:05수정 2026.06.29 10: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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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문화연구소, 왜장 가문서 찾아보니…

[울산=뉴시스] 일본 왜장 육개가 일본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가문서 마지막에 62세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사진=한일문화연구소 제공) 2026.06.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일본 왜장 육개가 일본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가문서 마지막에 62세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사진=한일문화연구소 제공) 2026.06.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조현철 기자 = 임진왜란 때 의기(義妓) 논개는 왜장 로꾸스게(六介)를 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져 함께 죽었다는 게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이와는 달리 육개와 논개(論介)가 일본에서 죽었다는 육개의 가문서(家文書)도 발견됐다.

29일 한일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찾아낸 육개의 가문서(家文書)에는 육개와 논개는 진주에서 죽지 않았다. 육개는 일본으로 살아 돌아와서 62세 나이로 죽었다는 가문서를 후손들이 서고에서 찾아냈다.
 
현재 후쿠오카 게야 촌(毛谷村)에선 왜장 육개와 논개 무덤을 두고 후손들이 매년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부산외대 명예교수)은 "왜장 후손들은 남강물이 얼마나 깊고 물결이 강한지 모르지만 우리 선조 육개는 키가 6척이나 되고 세도오하시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다니는 인물이었다. 남강에서 죽지 않았고 논개마저 데리고 와서 한평생을 살았다. 우리가 13대 자손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육개의 가문서에 따르면 육개 가문은 사무라이는 물론 장군도 아니었다. 일본 동북(東北) 지방에서 게야 촌으로 쫓겨온 낭인(浪人)이다. 낭인은 그 당시 리닝(非人)에 속한 민족이다. 우리나라 백정(白丁)과 같은 신분이다. 다만 키가 6척이나 되고 힘이 센 장사여서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파견됐다.
[울산=뉴시스] 일본 후쿠오카 게야촌에 있는 논개의 무덤과 이웃한 왜장 육개 무덤(六介와 六助는 동음동자). (사진=한일문화연구소 제공) 2026.06.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일본 후쿠오카 게야촌에 있는 논개의 무덤과 이웃한 왜장 육개 무덤(六介와 六助는 동음동자). (사진=한일문화연구소 제공) 2026.06.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김 소장에 따르면 키가 큰 사람은 육개라 하고 눈이 큰 사람은 목개(目介), 말 잘하는 능변가는 논개(論介)라고 칭했다.

육개 후손들은 논개라는 이름은 자기네 선조가 붙여줬다고 주장한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거의 육개라 했다. 코와 귀를 잘라간 왜장의 이름도 육개이다. 육개가 너무 많다가 보니 논개와 함께 살아온 육개는 자기 동네 이름을 따서 게야 촌에서 태어난 육개라하고 코와 귀를 잘라간 육개는 커가도 촌(香登村) 육개라고 불렀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군사가 부족해지자 여러 지역 농민을 출병시켰다. 힘이 센 용장은 이름을 붙여 파견했다.

역사학계에선 왜장 육개의 가문서에 대해 위조문서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편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에 있는 논개 무덤에 대해 향토사 학계에선 진위 논란을 빚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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