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질병·장애수당 700만명 받는다…복지비, 국방비보다 많아
등록 2026.10.12 18:48:18
근로연령 수급자 6년새 60% 넘게 증가…정신질환 관련 청구 8년새 4배
올해 지출 1000억파운드 돌파 전망…복지개혁 반발 속 재정 부담 확대

【런던=AP/뉴시스】런던에서 30일 24시간 파업에 돌입한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그의 지지자들이 노동시간 연장과 긴축조치 등에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펼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간) 영국 정부 통계와 현지 취재를 토대로 질병·장애 복지급여의 급격한 증가가 영국 재정과 노동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의료비를 제외한 관련 복지 지출은 올해 1000억 파운드(176조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근로연령층에서 수급자가 빠르게 늘었다. 관련 급여를 받는 사람은 2019년 290만명에서 470만명으로 60% 넘게 증가했다. 전체 수급자 약 700만명에는 고령층도 포함된다. 관련 지출은 최근 4년 동안 약 25% 증가했으며, 정부 전망에 따르면 앞으로 4년 뒤에는 연간 1300억 파운드(229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울증이나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를 이유로 장애급여를 신청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었다.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암을 이유로 한 장애급여 청구는 약 2배 증가했지만, 우울증과 불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포함한 정신질환 관련 청구는 4배로 늘었다. 정신건강 문제로 일상생활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는 신체장애보다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WSJ은 설명했다.
질병이나 장애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개인독립수당(PIP)이다. PIP는 장애나 질병 때문에 일상생활과 이동에 추가로 드는 비용을 지원하며, 소득이나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받을 수 있다. 다만 질환을 진단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연금부가 일상생활 수행 능력 등을 평가해 수급 자격을 심사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약 1000명이 새로 PIP 수급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장애급여를 부정하게 받은 사례도 확인됐다. WSJ은 정서적 트라우마로 외출하거나 씻는 일조차 어렵다고 신고해 월 약 700파운드의 장애급여를 받은 캐서린 윌랜드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나 윌랜드가 미용실과 식당을 방문하고 멕시코 칸쿤에서 집라인과 사륜 오토바이를 즐긴 사실 등이 드러났다. 윌랜드는 올해 복지급여를 부정하게 받은 사실을 인정했으며 약 2만3000파운드를 반환해야 한다.
![[런던=AP/뉴시스] 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총리 관저 앞에서 카야 마르라는 화가가 정부의 재정 상태를 풍자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날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이 의회에서 2024년 봄 예산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2024.03.06.](https://img1.newsis.com/2024/03/06/NISI20240306_0000920449_web.jpg?rnd=20240306194606)
[런던=AP/뉴시스] 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총리 관저 앞에서 카야 마르라는 화가가 정부의 재정 상태를 풍자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날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이 의회에서 2024년 봄 예산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2024.03.06.
복지급여의 총수령액이 근로소득을 웃돌 수 있다는 점도 쟁점이다. WSJ이 제시한 사례에 따르면 런던 밖에 거주하는 청년이 실업·주거급여로 월 약 900파운드를 받고, 건강 문제로 일하기 어렵다고 인정받아 근로능력 제한에 따른 급여와 PIP까지 받으면 비과세 급여가 월 약 2000파운드에 이를 수 있다. 반면 최저임금을 받고 주 40시간 일하는 근로자의 세후 월소득은 약 1880파운드다.
복지급여에 대한 의존이 커진 데에는 일자리 부족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 북서부의 항만도시 리버풀은 1980~1990년대 제조업과 항만산업이 쇠퇴하면서 대규모 실업을 겪었다. 당시 실업자들의 생계를 지원하던 복지급여에 대한 의존은 지역경제가 회복된 뒤에도 이어졌다. 빈곤지역인 월튼에서는 약 절반의 가구가 복지급여를 받고 있으며, 근로연령 주민 5명 중 1명가량이 PIP를 받는다.
청년층의 노동시장 이탈도 문제다. 영국에서는 학교에도 다니지 않고, 일하거나 직업훈련을 받지도 않는 청년이 약 100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유럽 국가 가운데 이러한 청년의 비율이 영국보다 높은 나라는 루마니아뿐이었다. 장애급여 수급자의 취업 상태를 보여주는 통계도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신규 PIP 수급자의 약 40%는 일을 하고 있지만 수급 2년 뒤에는 취업자 비율이 25%로 낮아진다. 다만 이 수치만으로 복지급여 수급이 취업 중단을 초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복지급여 수급을 단순히 취업을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는 없다. 복지급여는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 복지단체들은 식료품과 난방비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급여 삭감이 취약계층의 생활고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0년대 보수당 정부가 실업급여를 줄였을 때도 일부 사람들이 장애급여를 신청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셰필드=AP/뉴시스]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2026년 7월31일(현지시간) 영국 셰필드의 한 가족지원센터를 방문하고 있다. 2026.07.31.](https://img1.newsis.com/2026/08/02/NISI20260802_0002201970_web.jpg?rnd=20260802024603)
[셰필드=AP/뉴시스]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2026년 7월31일(현지시간) 영국 셰필드의 한 가족지원센터를 방문하고 있다. 2026.07.31.
지난 7월 취임한 앤디 버넘 총리 역시 복지제도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무차별적인 삭감에는 반대하고 있다. 이달 말 발표할 첫 예산안에는 추가 증세가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WSJ은 증세가 재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경제성장을 더 둔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지출을 줄이기도, 세금을 더 걷기도 쉽지 않은 가운데 국채 이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영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연초 약 4.5%에서 최근 5.5%까지 올라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새로 국채를 발행하거나 기존 국채의 만기가 돌아와 다시 돈을 빌릴 때 부담하는 이자 비용도 커지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지출과 국방비 부담도 커져 재정 운용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복지급여 지출을 줄이는 방안과 함께 수급자의 취업을 돕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직업훈련뿐 아니라 일자리와 치료 지원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리버풀의 복지단체 세인트앤드루스 커뮤니티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토니 셰퍼드는 정신건강 치료를 받기 위한 대기 기간이 길고 일자리도 부족하다며, 복지급여를 신청하고 받는 절차는 잘 갖춰져 있지만 수급자가 다시 일하도록 돕는 지원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제도를 "임시 땜질"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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