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했지만 할 건 했다”…시위도 못 꺾은 파리 미술계의 저력
등록 2026.10.26 10:06:50수정 2026.10.26 10:56:26
[아트바젤 파리 2026 가보니]
대규모 시위에 아트바젤 파리 조기 폐막·미술관 휴관
VIP 프리뷰서 고가 작품 거래…시장 열기 이어져
비바람 속 부러진 우산 들고 미술관 앞 장사진
브렉시트 이후 유럽 미술 허브로 부상한 파리의 저력

화이트 큐브가 파리 건축문화재단지 앞 인권 광장에 선보인 트레이시 에민의 공공미술 작품.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뉴시스]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 = 지난 21일 ‘아트바젤 파리 2026(Art Basel Paris 2026)’을 보기 위해 찾은 파리는 긴장과 활기가 뒤섞여 있었다.
24일 예고된 대규모 시위로 당초 25일까지 열릴 예정이던 아트페어는 23일 조기 폐막했다. 24~25일 행사가 취소됐고, 루브르와 오르세를 비롯한 파리 주요 미술관들도 이틀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셧다운 사태에도 파리의 미술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생활고와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과격한 충돌로 번진 것은 이미 그 전주에 전 세계로 보도된 바 있다. 바로 그 다음 주가 ‘바젤 위크’였고, 다시 주말 2차 대규모 시위가 예고되었으니 페어장 안팎에는 당연히 긴장감이 감돌았다.
원래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릴 예정이던 아트페어는 결국 금요일 저녁 서둘러 막을 내렸다. 이미 목요일 늦은 오후부터 메인 전시장인 그랑 팔레(Grand Palais) 앞마당에서는 야외에 설치되었던 대형 공공미술 조형물들을 긴급 철거하는 분주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트바젤 파리 기간중인 10월22일에 전시장인 그랑팔레 앞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을 조기 철거하고 있다.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2026년 10월 파리에서 열린 '아트바젤 파리' 전시장 전경. 아트바젤 제공 Courtesy of Art Basel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폭풍전야의 불안감도 바젤 위크를 관통하는 미술 시장의 열기까지 잠재우지는 못했다. 특히 일반 오픈일(10월 23일)보다 앞서 열린 VIP 프리뷰 ‘퍼스트 초이스(First Choice, 10월 21~22일)’에서 이미 팔릴 작품은 다 팔렸다는 소식이 부스마다 들려왔다.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작가는 올해 작고한 독일 신표현주의의 거장 게오르그 바셀리츠(Georg Baselitz)였다. 그의 전속 화랑인 타데우스 로팍(Galerie Thaddaeus Ropac) 부스 메인에 걸린 대형 유화는 VIP 오픈 첫날 130만~165만 달러(약 18억~23억 원) 선에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생의 후반부를 프랑스 베퇴유(Vétheuil)에서 보내며 파리와 깊은 예술적 인연을 맺었던 추상표현주의 여성 거장 조안 미첼(Joan Mitchell)의 작품도 이번 페어에 다수 등장했다. 데이비드 즈워너 등 메가 갤러리가 내놓은 미첼의 1960~70년대 대형 캔버스 작품들은 1,000만~1,400만 달러(약 140억~195억 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대에 거래되었다는 후문이다.

아트바젤 파리에서 게오르그 바셀리츠 작품이 걸려있는 타데우스 로팍 부스의 모습.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랑도 파인아트(Landau Fine Art) 부스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작품. 페이스·디 도나·슈레이더 갤러리가 공동 출품했고, 2,500만 달러(약 350억 원)의 높은 호가로 알려져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되었었다. 사진=아트바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답게 유럽 근대미술 대가들의 미술관급 작품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약 2,500만 달러(약 350억 원) 수준의 높은 호가로 알려져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랑도 파인아트(Landau Fine Art) 부스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누드화는 공식적인 판매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명작을 직접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관람객들로 부스 앞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갤러리 관계자들은 주말 소요를 예상해 판매된 작품을 미리 포장해 운송 준비를 서둘렀고, 소품은 구매자들의 호텔로 일찌감치 배달했다고 전했다.
파리의 긴장감은 금요일에 정점을 찍었다. 파리 경찰청 지침으로 그랑 팔레, 루브르, 오르세, 마르모탕, 오랑주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 루이비통 재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등 주요 미술관들이 주말 동안 전면 휴관한다는 공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말에 미술관이 전부 닫는다는 소식이 퍼지자, 바젤 위크를 맞아 파리에 찾아온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은 남은 금요일 하루 동안 미술관으로 일제히 몰려들었다.
이들 미술관은 사전 시간제 예약이 필수인데, 주말 티켓을 예매한 사람들에게는 일괄 예약 취소 메일이 발송되었다. 취소된 주말 티켓을 들고 금요일에 무작정 미술관들을 찾아가 봤다. 대부분 입장을 허용해 주었지만, 끝내 들어가지 못한 곳도 있었다. 모네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린 오랑주리(Orangerie) 미술관이었다.
주말 관람이 좌절된 인파가 몰리면서 야외 가든에서 2시간 이상을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금요일 파리의 날씨는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멀쩡하던 우산이 순식간에 뒤집히고 살이 부러져 나갈 만큼 궂었다. 나와 일행은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궂은 날씨 속에서도 망가진 우산을 부여잡고 묵묵히 줄 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트바젤 위크 기간 중에 파리에서 열린 한지 전시 ‘코리언 포제션(Korean Possessions)’전시 전경.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대형 페어의 열기 속에서, 파리 시내 한편에서는 우리 전통 소재인 한지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려 현지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10월 20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코리언 포제션(Korean Possessions)’전이었다. 사단법인 미래에서온종이협회(Mirae Hanji Association)의 후원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국가무형유산 한지장 보유자인 안치용 괴산한지체험박물관 관장이 뜬 전통 한지에 프랑스 현지 디자이너들의 감각을 덧입혀 테이블, 조명 등 현대적인 생활 디자인 오브제로 재해석한 자리였다.
이 한지전에는 오프닝 당일에만 500명이 넘는 현지 문화예술 관계자들과 관람객이 몰렸다. 전시를 찾은 프랑스 종이 장인 안드레 두헝(André Durant)은 “한지는 고운 색감과 촉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직물 못지않게 질긴 내구성을 갖춰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이처럼 매력적인 한지의 다양한 면을 보게 되어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바젤 위크’는 시위와 악천후 속에 열렸지만,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파리가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축으로서 얼마나 단단한 생명력을 지녔는지를 보여주었다.

2026년 10월 그랑 팔레에서 열린 '아트바젤 파리' 전시장 외부 모습. 아트바젤 제공 Courtesy of Art Basel *재판매 및 DB 금지
브렉시트(Brexit) 이후 런던이 미술품 거래에 따른 세제 혜택과 물류 편의를 잃어가자, EU 회원국의 이점을 지닌 파리는 런던을 대체하는 유럽 최고의 아트 허브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글로벌 럭셔리 자본이 구축한 현대미술 인프라가 파리의 입지를 완성했다.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과 ‘부르스 드 코메르스 - 피노 컬렉션(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에 이어, 작년 10월 루브르 박물관 맞은편 팔레 루아얄 광장에 확장 이전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까지 가세해 강력한 미술 벨트를 구축했다.

까르띠에 재단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브라힘 마하마, 수확의 계절(Ibrahim Mahama, The Harvest Season)' 전시 전경.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 — 피노 컬렉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바바라 크루거의 '눈물의 역사(The History of Tears)' 전시 전경.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의 입지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아트바젤/UBS 글로벌 아트 마켓 보고서 2026’에 따르면, 2025년 프랑스의 미술 시장 매출은 45억 달러(약 6조 2,000억 원)에 달하며 전 세계 시장의 8%를 점유했다. 미국(44%), 영국(18%), 중국(14%)에 이은 세계 4위이자, 금액 기준으로는 EU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홀로 차지하는 규모다.
사상 초유의 혼란이 파리 시내를 뒤흔든 한 주였지만, 파리가 왜 다시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축으로 확고히 서게 되었는지, 파리의 ‘바젤 위크’는 그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글=이규현 이앤아트 대표([email protected]). 한국작가들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아트마케터이자 전시기획자다. 특히 중동지역에서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 국제미술제인 ‘포에버 이즈 나우’의 큐레이터이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 ‘그림쇼핑’ ‘미술경매이야기’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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