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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3년 만에 새 앨범 가수 정미조 "바람도 탄식할
 '드라마틱'한
 삶 살아냈다"

"저 바람같이 자유로운 날을 살다 / 어느 날 문득 바람같이 떠나가게 / 나 바라는 것 없이 남기고 갈 것도 없이 / 어떤 후회도 미련 하나 없이" 가수 정미조(71)의 '바람 같은 날을 살다가'를 듣다가 깨달았다. '바람에도 나이가 있다'는 걸. 그녀의 삶을 바람처럼 노래한 곡이다. 색소폰 연주자 겸 프로듀서인 손성제가 멜로디를 만들고, 작사가인 이주엽 JNH뮤직 대표가 노랫말을 붙였다. 이 대표가 정미조를 떠올리면서 가사를 써내려갔다. 최근 서초동 작업실에서 만난 정미조는 "열심히 살아 후회가 없어요. 참 감사한 인생입니다. 벌써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님이 제 마음의 심정을 잘 표현해 주셨어요. 엄숙함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해온 것에 대한 마무리 마음을 잘 담아주셨죠." 3년 만인 최근 새 앨범 '바람같은 날을 살다가'를 발표한 정미조는, 바람도 탄식할 만한 드라마틱 삶을 살아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2년 '개여울'로 데뷔했다. 이후 '휘파람을 부세요', '그리운 생각', '불꽃' 등의 히트곡을 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화가의 꿈을 위해 모든 성공을 뒤로 하고 프랑스 유학 길에 올랐다. 1979년 TBC TV '쇼쇼쇼' 고별무대를 끝으로 노래를 멈췄다. 37년의 시간이 지난 2016년 새 앨범 '37년'과 함께 돌아왔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라는 '37년'의 타이틀곡 '귀로'의 노랫말은 정미조의 마음을 온전히 대변했다. '귀로'의 노랫말도 지은 이 대표는 "정 선생님이 영화 같은 화려한 삶을 사셨지만, 그와 똑같은 퍼센트로 고통을 가지고 살아오셨다. 특별한 삶이 아니었다"고 했다. 실제 37년 만인 2016년 컴백 당시 정미조는 우려가 많았다. "37년 동안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혔을까 걱정했어요. 신인처럼 활동하려고 마음먹었죠. (이주엽 대표님이) 음반 제작을 하시느라 괜히 헛돈을 쓰시는 건 아닌지 걱정됐죠." 하지만 기우였다. 음악 평론가들은 호평했고, 후배 뮤지션들의 극찬도 이어졌다. 싱어송라이터 김동률은 소셜 미디어에 존중심을 표했고, 아이유는 해당 음반을 끼고 다녔다고 했다. 아이유는 정미조의 데뷔곡 '개여울'을 리메이크해 부르기 전 대선배에게 먼저 연락을 취해 자신이 녹음한 '개여울'을 들어봐 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올해 초 MBC TV 음악 프로그램 '배철수의 잼(jam)'에서는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귀로' 무대를 재연해 음악팬들의 호평을 들었다. 정미조는 2016년 컴백과 함께 LG아트센터에서 처음 열었던 단독 콘서트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CD에 사인을 받기 위한 줄이 로비에서 계단까지 이어졌어요. 거의 사인 줄이 끝나갈 무렵, 스무살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청년이 있어서 '어떻게 왔는지 궁금'했는데, 제 음악을 듣고 너무 좋아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기뻤고, 감사했습니다." 정미조의 음악계 복귀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보기 중 하나다. 이번 음반 '바람같은 날을 살다가'는 정미조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가수임을 증명한다. 무엇보다 트로트에 편중된 '성인 가요'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의 참여가 방증한다. 손성제가 다시 프로듀서를 맡았다. 재즈 아티스트 그는 지난 정미조의 컴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에도 프로듀싱뿐 아니라 대부분의 곡을 작곡하고 편곡했다. 이주엽 대표가 앨범에 실린 12곡 중 10곡의 가사를 썼다. 개성 넘치는 싱어송라이터 이규호와 전진희가 나란히 곡을 선사했으며, 송영주 윤석철(키보드) 황호규(베이스) 이도헌(드럼) 박윤우(기타) 등 내로라 하는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이 정미조를 위해 힘을 합쳤다.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인 임헌일도 기꺼이 기타 세션을 자처했다. 작곡자 전진희는 앨범의 피아노 연주도 도맡아 했다. 정미조를 위해 '한 번 더'를 만든 신예 싱어송라이터 유현곤은 20대의 감각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삶의 회한을 풀어냈다. 이번 앨범 녹음을 시작한 첫날 손성제는 정미조를 향해 "목소리가 더 좋아졌다"며 놀라워했다. 정미조는 "사실 녹음 전에 연습을 또 하고 또 해서 목소리가 엉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녹음하면서 초반에는 30분간 헤맸는데, 조금만 소리를 질러도 목이 아파져 '과부하'가 걸린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죠. 이빈후과에 갔더니 다행히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미조는 13년 간 파리 유학을 마치고 1992년 귀국했다. 몽마르뜨 등 파리 야경을 그리다, 미대 교수와 미술 작가로 살면서 서울의 야경을 그렸다. 정미조는 파리 유학 생활에 대해 "심리적으로 지독하게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특히 박사 학위를 쓰느라 아파트에 갇혀 있을 때는 너무 답답했다고 했다. 서울에서 그림을 그리며, 또 노래를 하며 치유가 됐다. 원래 꿈은 무용가였다. '한국 발레 거목' 임성남이 운영하는 발레 무용 연구소에 찾아가기도 했다. 다른 무용수들을 좇아가기 힘들다고 판단, 이후 미술로 방향을 틀었지만 여전히 몸은 유연하다. 정미조의 무대를 본 이들이라면, 노래와 그에 맞는 구도의 몸짓을 볼 수 있다. 음악, 무용, 그림 등 정미조가 힘겹게 끌어 안아온 것들의 총합이다. "어떻게 해야 관객을 집중시킬 수 있을 지, 손짓 하나 모두 고민하죠. 얼른 코로나19가 끝나서 많은 분들을 직접 뵙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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